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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파르크 Oct 14. 2017

주원장, 자수성가의 끝판왕(하)

[명나라 내실을 탄탄하게!]

 홍무제는 다른 군벌을 제압해 남경에서 황제가 되었지만, 아직 반쪽짜리였습니다. 북경에 원나라 황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습니다. 홍무제는 바로 군사를 휘몰아 폭풍처럼 북경으로 진격했습니다. 그 파죽지세에 원나라 순제는 만리장성 이북으로 도망칩니다. 이제 만리장성 이남의 모든 중국이 홍무제의 명나라 영토가 됩니다.     



 외부 적들을 모두 처리한 홍무제. 이제 갓 태어난 명나라의 내실을 다져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크게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첫째로, 몽골 지배로 남아 있던 유목민 풍습을 없애고, 한족 문화를 부흥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틈틈이 학자들과 공부한 덕에 전통과 유교를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몽골의 언어와 풍습을 모두 금지시킵니다. 통치 매뉴얼인 법도 재정비해야겠죠. 과거 당나라의 법이었던 당률(唐律)을 현재 상황에 맞게 업그레이드시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대명률(大明律)입니다. 대명률을 새로이 반포하고, 기존 몽골의 법은 모두 폐기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유교식 문화를 퍼뜨리기 위해 육유(六諭)를 직접 만듭니다. 육유란 “부모에게 효도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며, 마을 사람들과 화목하고, 자식을 잘 교육시키며, 저마다 현재에 만족하고, 비리를 행하지 말라”는 6개 조항으로 유교의 기본 이념을 담고 있습니다.     


 정력적인 홍무제 덕에 중국 대륙에 다시 한족 문화가 융성하기 시작합니다.       



   

둘째로, 수탈, 자연재해, 반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농촌을 복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각종 재해와 오랜 전쟁으로 논과 밭이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던 농민들은 가난에 시달립니다. 농업 생산력은 곤두박질칩니다. 


 영락제는 대규모 황무지 개간 사업을 진행하고, 황하강과 양자강에 제방을 쌓아 장마에도 범람하지 않도록 물을 다스렸습니다. 각종 저수지와 보를 만들어,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받아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점점, 일반 백성들의 삶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로, 국가 통치력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세금 수취로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해야 했습니다.

 홍무제는 작은 농촌 곳곳까지 확실히 통치하기 위해 이갑제를 고안합니다. 당시는 통치를 위한 교통과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도 않았고, 수많은 관리를 뽑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갑제라는 제도를 만들어 농촌의 자치적인 행정조직을 구성하게 했습니다. 110여 가구가 공동체를 이뤄, 함께 힘을 모아 세금을 납부하고 치안을 유지했습니다. 국가의 손이 닿기 어려운 오지 시골에도 세금납부시스템과 치안시스템이 생겨난 것입니다. 자율적인 국세청과 경찰청이라고나 할까요. 덕분에 홍무제는 넓은 중국 대륙에 강력하고 효율적인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더하여, 어린도책과 부역황책을 만듭니다. 

 어린도책은 물고기 비늘 모양의 그림책이라는 뜻입니다.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땅을 그리고, 면적, 모양, 세금납부액, 소유자를 꼼꼼하게 표기했습니다. 부역황책은 일종의 호적이었습니다. 이 두 장부로 세금을 꼼꼼하게 걷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국가 재정도 탄탄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거지에서 황제가 된 입지전적인 자수성가의 아이콘, 홍무제. 단순히 최고권력자가 되었다고 마냥 그를 칭송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삶의 궤적이 모두 아름다웠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때론 비정하고, 혹독해야했습니다.          


 홍무제는 말년에 측근들을 숙청하고, 또 많은 사람을 학살했습니다. 특히 함께 동고동락했던 개국공신들과 건국에 물심양면 협조했던 지주들 수만 명이 죽습니다. 자신이 죽고 나서, 아들이 황제가 되었을 때 위험할 수 있는 인물을 미리 제거한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힘겹게 만든 명나라고, 어떻게 올라온 황제 자리인데 애착이 강했을 것입니다. 오래오래 자신의 후손들이 황제 자리와 명나라를 보전하길 바랐던 것이겠죠.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도 백련교와 홍건적을 배신하고 지주와 결탁하거나, 경쟁자를 암살하는 등 뒷말이 많았지만 말년의 어마어마한 학살에 비하면 애교였습니다. 아무 죄 없던 신하에게 누명을 씌워, 일가친척은 물론 친지 모두를 한 순간에 죽였습니다.     



 명나라의 황제 자리를 성취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비록 잔혹하지만, 홍무제가 대단한 인물임엔 틀림없습니다. 비천한 출신에서 개인의 역량만으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자기계발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계속 공부하며, 명나라가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대규모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새로운 통치 시스템도 고안해냈습니다.     


 명과 암이 너무도 선명한 홍무제의 족적. 당신은 홍무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자수성가의 아이콘인가요, 비정한 학살자인가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역사를 걷는 밤>을 즐겨보세요:)

  http://www.podbbang.com/ch/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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