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담파르크 Oct 14. 2017

마테오리치, 교류의 물꼬를 튼 언어천재(상)

 외국어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참 대단합니다. 신통방통해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언어 천재들은 방송에 소개될 정도죠. 그런 외국어 중에서도 까다로운 것이 중국어입니다. 수많은 한자는 기본으로 외워야하고, 성조까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한자문화권이지만,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더더욱 배우기 힘들 겁니다.    

 

 그런 중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 이탈리아 사람이 있습니다. 한자 수만 자를 술술 외워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어로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웬만한 중국인보다 한자와 중국어를 더 잘 했던 것이죠.    

 

 이 사람은 바로 명나라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였습니다. 그는 만리타국 이탈리아에서 명나라까지 왜 온 것일까요? 또 중국어는 왜 마스터한 것일까요?      


 마테오리치의 인생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가톨릭의 예수회명나라를 Knock~Knock~]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마테오리치가 어쩌다 명나라까지 가게 된 것일까요? 당시 시대 상황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이 명나라 말기로 치닫던 때,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맞이합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선두로 세계 곳곳으로 진출합니다. 포르투갈은 특히 아시아 쪽으로 활발하게 진출합니다. 인도와 동남아를 지나 1517년엔 중국에 도달합니다. 1557년엔 마카오를 거류지로 받아 상업 활동의 거점으로 삼죠. 마카오에 둥지를 트고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무역을 시작합니다. 중국은 비단, 도자기, 차가 유명했죠. 포르투갈은 이 중국의 상품들을 일본과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은과 바꾸고, 유럽에다 가져다가 비싸게 팔았습니다. 엄청난 이익을 남겼죠. 이익을 쫓아 무역선이 활발히 중국을 오갔습니다.  

   

 이 무역선에 상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선교사들도 동승하죠. 특히 예수회 선교사가 많았습니다. 예수회는 정통 가톨릭을 혁신하고, 가톨릭의 교세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던 단체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의 여파로 루터와 칼뱅이 부패한 가톨릭을 거부하고 개신교를 만들었습니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이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넘어갑니다. 가톨릭의 교세가 반 토막 났지요. 가톨릭을 지키기 위해 반성하고 혁신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수도사 로욜라는 엄격한 규율을 지켜 개인의 인격완성을 추구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이웃에게 나눠주는 선교와 교육 사업에 힘쓰는 예수회를 만듭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을 오가는 포르투갈 무역선을 눈여겨봤습니다. 만 리 너머 대국 명나라를 가톨릭을 전파할 기회의 땅으로 본 것이죠. 이들은 발전하던 유럽의 최신 학문과 기술로 무장하고, 가톨릭 선교의 사명감을 가지고 명나라로 가는 무역선에 탑승합니다. 그 중 한명이 바로 마테오리치였습니다.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역사를 걷는 밤>을 즐겨보세요:)

  http://www.podbbang.com/ch/14711


매거진의 이전글 주원장, 자수성가의 끝판왕(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