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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파르크 Oct 15. 2017

마테오리치, 교류의 물꼬를 튼 언어천재(중)

[뼛속까지 명나라 사람이 된 마테오리치]

 마테오리치는 1552년 교황령이었던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마체라타에서 태어납니다. 이곳은 교황이 다스리던 가톨릭의 중심부였습니다. 이곳에서 마테오리치는 교육에 힘쓰던 예수회의 학교를 다니며 독실한 신자이자 성실한 학생으로 자라납니다. 그리곤 자연스레 예수회에 가입합니다. 예수회가 학문과 인격 수양을 강조했기에, 마테오리치도 신학, 법학, 철학은 물론 천문, 수학, 과학, 지리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합니다.      



 어느덧 마테오리치는 어엿한 예수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해외로 파견됩니다. 1578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떠나 인도의 무역거점이었던 고아로 향합니다. 고아에서 남은 신학공부를 모두 끝내고, 가톨릭의 사제가 됩니다. 이곳에서 마테오리치는 언어 능력이 특출해 예수회 간부들의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예수회는 선교의 최전방이었던 중국 명나라에 보낼 선교사를 찾던 중 마테오리치를 적임자로 점찍습니다.         

      


 1582년 마카오에 마테오리치가 도착합니다. 거대한 명나라의 가톨릭 선교를 담당하게 된 젊은 사제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을까요. 설렘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거대한 장벽이 있었으니 바로 한자였습니다. 그는 선교를 위해 수 만 개의 표의문자를 외워야했습니다.     

 

 마테오리치는 단순히 한자를 외우는 것보다 더 원대한 목표를 세웁니다. 중국을 이해하고, 배우는 것을 넘어 아예 중국인이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저는 중국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복장이나 얼굴도 인사법도 겉모습도 완전한 중국인입니다. 올해에는 말과 글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 1585년 마테오리치가 쓴 한 편지     



 마테오리치는 복장과 행동 모두 중국인을 따라했습니다. 이름도 만듭니다. 중국식으로 성과 이름 순서를 바꾸면, 리치 마테오가 되죠. 이를 음역해 리마더우, 이마두(利瑪竇)라고 지었지요.  

   

 마테오리치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열정을 불태우며 점점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익숙해져갑니다. 유교의 사서오경도 꾸준히 공부해 마스터합니다. 마테오리치는 유교의 매력에 빠져 심취합니다. 인간의 수양과 양심을 강조하는 유교와 가톨릭이 닮아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허연 코쟁이가 중국옷을 입고, 중국예절을 지키며, 중국말을 하며, 유교경전을 달달 외우고 잇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기특했을까요. 명나라에선 마테오리치에 대한 호감과 함께 가톨릭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져만 갑니다.     



 특히 명나라의 지식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예수회는 ‘위로부터의 전도’라는 선교 전략이 있었습니다. 선교 국가의 상류층이나 지식인에게 먼저 접근한 것이죠. 마테오리치도 명나라의 고위관료, 지식인과 교류합니다. 예수회 학교에서 배웠던 수학, 천문, 지리 등을 소개하며 이목을 끕니다. 그리곤 유교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가톨릭과 연결지어 설명해 줬습니다. 중국 지식인들이 마테오리치와 대화를 나누곤 가톨릭으로 안 넘어갈 수가 없겠지요. 서광계, 이지조 등이 마테오리치와 깊게 교류하고, 가톨릭에도 심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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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odbbang.com/ch/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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