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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파르크 Oct 16. 2017

무측천, 유일무이한 여황제(상)

 이천년 동안 황제가 다스렸던, 황제의 나라 중국. 수백, 수천명의 황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중국에 여자황제는 없었을까요. 우리나라는 신라에 선덕, 진덕, 진성여왕이 있었죠. 중국엔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정말 다행히도 딱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무측천입니다. 측천무후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측천무후라는 호칭은 황제의 칭호가 아닌 황후를 뜻합니다. 무측천이 당나라 고종의 황후일 때의 호칭이죠.      


 무측천은 황후이기도 했지만 엄밀히 15년 동안 ‘황제’였습니다. 당나라의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황제 자리에도 올랐죠. 그래서, 무측천, 측천제, 측천여제 등으로 부릅니다. 중국에선 무측천(武則天)이라고 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중국의 여황제, 무측천. 이천년간 어느 여성도 오르지 못했던 황제자리에 어떻게 올랐던 것일까요. 그녀의 족적을 쫓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당돌한 후궁 무조황후가 되다]

 무측천의 본래 이름은 무조(武照)입니다. 당나라 건국공신이었던 무사확의 둘째딸로 태어났죠. 어릴 적부터 출중한 미모로 유명했습니다. 금수저 집안에 얼굴까지 아름다웠으니 금방 눈에 띄었을 수밖에요. 아름다운 소녀는 14살이 되던 해, 당 태종의 후궁으로 뽑혀갑니다.     


 무조는 얼굴만 예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쟁취하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요. 바로 비정한 결단력입니다. 인정이 넘치거나, 마음 씀씀이가 헤프거나, 우유부단하면 권력으로 가는 길에 금방 무너지고 말겠죠.     


10대의 어린 소녀 무조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차가 없던 시절, 말은 남자의 로망이었습니다. 당 태종도 진귀한 명마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죠. 어느 날 새로 얻은 사나운 명마를 길들이려고 태종이 쩔쩔매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찌나 말이 사나운지 전쟁터에서 뼈가 익은 당 태종도 진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태종은 잠시 쉬며 주변 신하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작은 소녀 무조가 나서며 말했습니다.     


“세 가지 물건만 있으면 제가 말을 길들일 수 있습니다.”     

당 태종은 때 아닌 후궁의 등장에 놀랐습니다. 그 세 가지가 무엇인지 물어보자 무조가 답합니다.     

“채찍과 추, 그리고 비수입니다.”     

당 태종은 그녀가 세 가지 물건을 어떻게 사용할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합니다.     

“말이 처음에 명령을 안 들으면 채찍으로 때립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추로 머리를 내려칩니다. 그래도 길들여지지 않으면 비수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당 태종은 어린 소녀의 당돌함에 크게 놀랍니다. 궁궐 전체에 이 에피소드가 퍼집니다. 무조라는 후궁이 참 대단하다고 칭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다른 후궁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기도 하죠. 

    


 시간이 흘러 당 태종이 눈을 감게 됩니다. 당시엔 모시던 황제가 죽으면 후궁과 궁녀들은 비구니가 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황제의 여자였기 때문에 남은 생애도 정절을 지키며 살라는 것입니다. 비구니가 되어 평생을 모신 황제를 위해 공양 드려야했습니다. 무조도 감업사라는 절의 비구니가 됩니다. 하지만 무조는 절에서 평생을 불공을 드리며 조용히 살아갈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태종을 이어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고종은 후궁 중에 소숙비를 특히 총애합니다. 황후는 찬밥신세가 되어 소숙비를 시기합니다. 그녀를 견제하려 꾀를 쓰던 중 무조를 떠올립니다. 당찬 무조를 자기편으로 구워삶은 후, 남편의 후궁으로 들여 함께 소숙비를 제거하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황후는 무조를 비구니에서 일반인으로 환속시킵니다. 절에서 답답하게 살던 무조는 황후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황후의 권세를 뒤에 업고 자신의 세력을 쌓아갑니다. 친화력을 발휘해 인적 네트워크를 쌓습니다. 미모를 십분 활용해 고종의 총애도 얻어냅니다. 그리고 황후와 힘을 합쳐 소숙비를 궁궐에서 쫓아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무조가 멈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무조의 표적이 된 것은, 다름 아닌 황후였습니다. 황후 입장에선 사냥개가 사냥이 끝나자 주인을 문 꼴이었습니다.   

  

 고종은 황후를 폐위시킬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조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위해선 비정한 행동도 과감히 할 수 있는 위인이었습니다. 


 무조가 고종의 딸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황후가 무조의 방에 찾아옵니다. 황후가 방을 나서자, 무조는 갓난 딸을 이불로 질식시켜 죽입니다. 그리곤 고종에게 황후가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일러바칩니다. 고종은 크게 진노해 황후를 폐하고 655년 무조를 황후에 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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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odbbang.com/ch/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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