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폴 발레리의 말이자, 인기 있는 책 제목이기도 하다.
참 생각하기 싫은 곳이 있다. 바로 군대다. 찬란한 대학 생활을 뒤로 하고 들어간 군대는, 일어나는 시간부터 밥 먹는 시간, 심지어 쉬는 시간까지 철저히 짜여 있다.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똥도 마음대로 쌀 수가 없었다.
영혼과 생각이 실종되었던 군대에서, 나의 창의력을 폭발시킨 적이 있다.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 때 만든 군베이어벨트다. 군베이어벨트 덕에, 회색빛 군대생활이 그래도 조금은 색색깔로 색칠되어 기억에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신병교육대 조교의 말년에는 식당 배식을 담당한다. 식당 배식은, 말 그대로 식당 담당이다. 훈련병들 20여 명을 데리고, 취사장에서 식당으로 밥과 국을 나르고, 적당량을 나눠준다. 마지막 설거지를 처리하면 끝. 첫 날만 훈련병들을 가르치고 나면, 나머지 때엔 식당에 앉아 쉬면된다. 가끔 오는 후임들과 수다를 떨면 식사시간이 금방 끝난다.
평화로운 나의 일상을 괴롭히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군대에선 설거지를 직접 한다. 200여 명의 훈련병들이 설거지를 하다 보니, 세척장이 미어터지는 것. 조교들이 빨리 나오라고 밖에서 성질을 내니, 설거지도 대충할 수밖에. 이 악순환은 내가 입대할 때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사는 대로만 생각하는 군인 박이담은 그저 바라만 봤을 게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개선하고 싶었다. 전역을 앞두고, 부대에 공적이라도 좀 남기고 싶었는지 고민이 시작됐다.
‘식판을 검사하는 애를, 운동선수 출신의 험상궂은 훈련병으로 할까? 그러면 무서워서 깨끗이 씻겠지?’
‘식판 하나에 반찬을 가득 담아서, 같은 테이블 6명이 함께 먹으라고 할까? 그럼 훈련병들은 밥만 퍼가니까, 설거지하기 쉽겠네?’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좀 잔혹했다. 위협을 가해 편하게 식사하지 못하게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다, 미디어학부 수업에서 봤던,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컨베이어벨트. 모던타임즈는 컨베이어벨트를 비판한 영화였건만, 내겐 영감을 줬다. 우리 20명의 배식담당 훈련병들 가운데 10명이 컨베이어벨트 방식으로 설거지를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뤄, 잔반 제거 및 수분 공급 – 퐁퐁1 – 헹구기1 – 퐁퐁2 – 헹구기2 순서로 분업한다. 무려 두 번이나 세척이 이뤄지는 것이다. 집단제 수공업의 위대함과 내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행정보급관님께 달려갔다. 나의 계획을 마구 설명하는데, 잘 듣지도 않으시곤 그냥 해보란다.
식사시간만을 기다려 배식조 훈련병들에게 달려갔다. 내 모자에 새겨진 네 줄의 병장 마크와, 본인들이 그리도 무서워하는 조교들이 내게 연달아 충성을 해대는 것을 목격한 친구들이다. 경외심에 가득 차 있다. 대학에서 동기들이나 후배들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말해봤자, 욕만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날 믿고 따르는 훈련병이었다. 나는 한 명씩 불러, 차근차근 지시를 내렸다.
“자, 넌 여기 서서, 애들 식판을 받아서 건더기들을 제거하고 물을 묻혀”
“너는 그걸 받아서, 퐁퐁질을 해”
“너는 수압이 강한 물로 재빨리 퐁퐁거품을 행궈”
배식조 교육을 끝내고, 일반 훈련병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훈련병들, 오늘부터, 설거지를 안 해도 좋다. 밥만 깔끔하게 먹도록-”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했다. 하지만, 세척장에 들어가서 환호를 질렀다. 설거지를 할 필요가 없었기에. 세척조 다섯 명은 완벽한 하모니를 선보였다. 식판은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더니, 반짝반짝 빛을 뿜어냈다. 분업의 위대함을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식당 이용 효율화시키고 교육시간을 충분히 확보시켰다. 컨베이어벨트 도입은 엄청난 업적이었다. 나에겐 사는 대로만 있었던 군대에서, 생각대로 살아본 아름다운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