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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파르크 Oct 20. 2017

강희제, 천년에 한 번 나올 황제(하)

                                

 [청나라의 문화, 경제적 융성]

 명나라, 청나라의 지배계급을 신사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보통 지주층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유교적 교양과 학식을 가진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영향력이 강하고, 여론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들 신사들은 이민왕조 청나라에 반감이 강했습니다. 일자무식으로 말과 소나 돌보던 유목민 것들이 학식 있는 자신들을 지배한다는 것이 못마땅했겠죠. 삼번의 난을 통해, 청나라의 힘을 확인하곤 실제 행동으로 청에 반발하진 못했지만 마음속으론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강희제는 이런 신사들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각 지방을 물리적으로 정복하긴 했지만, 문화적으로 완벽히 통치하기 위해선 신사들의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특별 과거 시험을 열어 신사들에게 관료 자리를 열어줍니다. 멋진 관직을 주고, 청을 위해 일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학식이 높았던 이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대규모 학술 사업도 진행합니다. 전 왕조 명나라의 역사를 정리하여 명사(明史)로 엮어냅니다.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이라는 백과사전도 편찬합니다. 고금도서집성이란 예전부터 현재까지의 책들을 모아 묶었다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중국의 모든 학문 분야의 성과를 한데 정리한 것이죠. 신사층들은 깜짝 놀랍니다. 만주족 황제가 학술적으로 대단한 일을 해내니 말이죠. 신사들은 이런 엄청난 작업에 발 벗고 참여하며, 강희제를 칭송합니다.     



 하지만 신사층에게 당근만 준 것은 아닙니다. 호의를 베풀지만, 황제와 청나라를 무시하지 않고 말을 고분고분 따르게 해야 했습니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거나, 국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가혹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신사층이 청을 만만히 보지 않고, 황제와 청나라를 따르게 됩니다. 나라의 령이 서고, 재정도 풍족해집니다. 문자의 옥이란 숙청도 단행합니다. 황제나 청 조정을 비방하는 글을 쓴 사람을 색출해 철저히 처벌한 것이죠.

         



 강희제는 나라살림은 물론 백성의 살림도 알뜰살뜰 챙겼습니다. 자신부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낡은 옷을 기워 입기까지 합니다. 한 나라의 황제가 말이죠. 명나라 때 수 만 명이었던 환관과 궁녀도 400명으로 줄입니다. 만주족 실력자, 고위 관료가 백성을 함부로 수탈하지 못하게도 합니다. 팔기군의 땅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소작농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나라가 커지고, 인구가 늘어갔습니다. 황제가 돈을 아끼고, 농민을 보호하니 세금이 마구마구 걷혔습니다. 나라 곳간이 차고 넘치자, 세금이 더 필요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1711년엔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던 일이 벌어집니다. 1712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에겐 인두세를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있던 사람 수만큼만 내면 되는 것이죠. 세금액수가 고정된 것입니다.           



         

 [통치의 모범, 강희제]

 후대 역사가들은 강희제를 두고 “놀라운 통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합니다. 청을 세울 때 만주족은 불과 100만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문화수준도 낮은 유목민이었죠. 이런 100만 명이 1억이 넘는 한족을 통치한 것입니다. 대단한 통치술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강희제는 이런 통치술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또한 강희제는 나라를 위협하는 내외부의 세력을 정리했습니다. 문화적으로 한족 지배계층 신사층의 마음을 사고, 엄격할 땐 엄격하게 대해 나라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게 합니다. 경제적으론 한족 농민들을 보살펴 생활을 안정시키고, 나라 재정도 충분히 확보합니다.      


 원나라는 몽골인 제일주의를 펴며, 한족을 억압했습니다. 강희제는 원나라의 실패를 보고, 능력 있는 한족 신사층을 적극적으로 포섭해 통치의 파트너로 삼습니다. 명나라는 환관과 외척이 국정을 농단하며 무너졌습니다. 강희제는 환관과 외척을 철저히 정치에서 배제시킵니다. 황제의 명령이 바로 관료에게 전달되게 합니다. 이렇게 강희제는 전 왕조의 실책을 정확히 인식하고, 개선해나갑니다.      



 역사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던 강희제. 그가 보여준 통치의 모범은, 아들 옹정제, 손자 건륭제에게로 이어져 130년 동안의 태평성세로 이어집니다. 강희제는 천년에 한 번 나오는 황제, 천고일제(千古一帝)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은 대단한 황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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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odbbang.com/ch/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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