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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파르크 Oct 23. 2017

홍수전, 태평천국을 꿈꾸다(상)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이다.”     


 태평천국운동을 이끈 홍수전의 주장입니다. 황당무계한 말 같지만, 수많은 중국의 농민이 이 홍수전의 말을 믿고 따랐습니다. 홍수전이 비전으로 내세운 모두가 ‘평등한 지상의 기독교 왕국’은 무너져가는 청나라 아래서 신음하던 농민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홍수전을 추종하게 했지요.      


 중국의 유교와 서양의 기독교를 절묘하게 혼합해 종교 교단을 만들고, 나아가 지상의 태평천국이란 국가까지 만들었던 홍수전.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이후 황제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여러 혁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신의 아들이라는 장난 같은 말로 요약되는 홍수전의 짧고 강렬했던 삶. 홍수전과 그가 꿈꾼 태평천국 이야기를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어지러운 청나라, 침체의 늪에 빠진 광동]

 청나라는 전성기를 이끈 건륭제가 죽자, 나라 이곳저곳에 균열이 생깁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해 국가 기강이 무너지고, 관료와 지주들은 자신의 잇속만 챙기며 일반 백성을 쥐어짜 수탈합니다. 참지 못한 농민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특히, 원나라 말기 때처럼 미륵불을 믿는 백련교가 기승을 부립니다. 중앙군은 지방 지주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백련교를 진압합니다. 청나라는 백련교 제압을 위해 돈은 돈대로 써, 국고가 바닥나게 됩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닌데, 나라 밖에서도 청나라에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바로 서구열강들입니다. 특히, 영국은 청과의 무역에서 자꾸 적자를 보자 마약 아편을 몰래 파는 악질적인 행동을 합니다. 청나라 황제가 계속 아편을 금지하지만 영국을 들은 채도 안합니다. 결국, 청 조정은 임칙서를 보내 영국 배에 실려 있던 아편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그러자 영국은 아예 청나라에 싸움을 걸어옵니다. 이것이 바로 아편전쟁입니다. 산업화를 마친 영국의 강력한 함선과 대포를 청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은 청의 굴욕적인 패배로 결론납니다. 청나라 조정의 권위가 땅으로 곤두박질칩니다.          



 특히, 남쪽의 광동은 불만이 더 컸습니다.      


 청나라는 본디 해외 무역항을 광동으로만 한정 지었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등 서구 열강들은 청나라와 무역하려면 광동에서만 할 수 있었죠. 상해나, 청도같은 다른 항구에선 상업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편전쟁 이후 상황이 달라집니다. 영국이 청나라와 남경조약을 맺으며 승리의 대가로 상해에서도 무역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패배한 청나라가 하는 수가 있나요, 상해를 열어줍니다.   

  

 그러자, 새로운 개항지 상해로 무역의 중심지가 이동합니다. 광동의 경기가 촥 가라앉습니다. 항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돈도 마르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광동은 한족과 객가의 갈등이 심한 곳이었습니다. 객가(客家)란 중국 다른 지역에서 광동으로 이주한 한족을 말합니다. 같은 한족이긴 했지만, 광동사람들에게는 타지 사람이었죠. 객가들은 자기들만의 관습과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광동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에게 배척당합니다. 광동은 가뜩이나 경기도 어려워졌는데, 한족과 객가의 갈등으로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이 광동의 혼란 속에 홍수전이 등장합니다.     





[홍수전, 태평천국을 열다]

 홍수전은 객가 출신으로 광동성의 평범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홍수전은 아들들 중에 그나마 가장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모양입니다. 집안의 도움을 받아 유교공부를 시작합니다. 아버지와 형들이 홍수전만 밀어준 것이죠.      


 자연스레 과거시험에 응시합니다. 하지만, 학문에 그렇게 특출한 재능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과거에 여러 번이나 낙방하며 크게 낙심합니다. 공부만 하던 백면서생은 다른 재능도 없었기에, 계속 과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하고 계속 고시에만 목매는 고시낭인이 된 것이죠. 홍수전은 자신을 위해 희생해준 아버지와 형들을 볼 낯이 없어집니다.          



 오랜 공부로 몸이 약해진 홍수전은 열병을 앓게 됩니다. 그러다 오랜 잠에 빠져 특이한 꿈을 꾸게 됩니다.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지원해줄 터이니 올바른 신앙을 전파해 세상을 구하라”고 합니다. 때로는 꿈에 중년의 사내도 등장했습니다. 그는 홍수전이 앞으로 무엇을 하면 되는지 일러주고, 백성을 구하기 위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홍수전은 그 노인을 하느님, 중년의 사내를 예수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동생이라고 선전합니다. 자신이 새로운 구세주라고요.    



           

 광동은 오랫동안 유일한 해외무역항으로 유럽의 기독교가 유입되는 통로였습죠. 아마 홍수전에게 기독교에 관한 많은 정보가 있었을 겁니다. 홍수전은 자신의 꿈과 기독교의 교리를 교묘하게 연결시켜 자신이 구세주라는 교묘한 스토리를 만들어냅니다.     


 홍수전은 자신이 구세주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는 이제 제대로 된 종교를 기획합니다. 바로 배상제교(拜上帝敎)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상제(上帝)’를 경‘배’하는 ‘교’라는 뜻입니다. 이 배상제교를 통해 기존 중국의 유교, 불교, 도교를 비판하며 민중의 열렬한 호응을 받습니다.

    

 그 논리는 이렇습니다. 상제는 유일신으로, 상제를 제외하곤 다른 어떤 우상도 있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유교, 불교, 도교 등 중국 전통신앙과 관련된 모든 우상을 배격합니다. 홍수전은 상제는 인간을 모두 평등하게 여긴다고 주장하며,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유교, 불교, 도교에 있다고 합니다. 억압받던 민중의 마음을 매료시킵니다.        


 교세가 폭발적으로 늘어간 데는 친구 풍운산의 공이 혁혁했습니다. 풍운산 또한 객가 출신으로 홍수전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풍운산은 특히 객가들에게 집중적으로 배상제교를 전파합니다. 객가들은 광동의 토박이 한족들과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 기존 한족들을 미워하다보니, 이들이 따르는 전통적인 관습이었던 유교조차 싫어하게 됩니다. 그래서 홍수전의 배상제교에 더욱 열광했죠.     



 배상제교는 개인의 종교적 구원에 치중했습니다. 살인, 절도, 간음, 음주, 아편 등을 금지합니다. 성실하게 종교를 믿으며, 삶의 평안을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객가 뿐 아니라 소외받던 사람들이 배상제교에 관심을 보입니다. 가난한 원주민, 광산 노동자, 소수민족뿐만 아니라 광동의 수많은 실업자들까지 합류합니다.



 홍수전의 무리는 그 규모가 계속 커집니다. 2만 명의 군대까지 생겨납니다. 홍수전은 1851년에 자신의 생일 1월 11일을 맞추어 ‘태평천국을 세워 종교적 천국을 지상에도 세우겠다’고 선언하며 왕위에 오릅니다. 더 이상 배상제교 무리는 단순한 종교집단이 아니었습니다. 태평천국이란 하나의 국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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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odbbang.com/ch/1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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