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미리 염두할 것들
2년 전에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미국에 온 것은, 석사학위 하나 더 받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미국이라는 '빅리그'에 진출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지만, 이것저것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았을 때 '해볼 만하다'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에 과감히 올 수 있었다. (사실 시뮬레이션 돌리는 건 쉽다.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운 거지...) 이곳에서의 하루하루 생활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질 수도 있고 좁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하루도 헛되게 보낼 수 없는- 지금도 긴장의 연속이다.
이제 어느덧 뉴욕에 온지 2년이 다 되어가고, 감사하게도 졸업하기 전에 몇 군데에서 Full-time offer를 받았다. 작년 인턴십을 준비했을 때와는 사뭇 달랐던 나의 Full-time 도전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해외에서 취업을 꿈꾸는 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사실 모든 여건은 분야마다 다르고 회사마다 다르다. 내 경우에는 IT industry에 UX / Product designer로 지원했으니 참고하시길)
그들이 보는 한국인
이것저것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그들(내가 원하는 회사의 employer)이 보는 아시아인, 한국인의 모습이다. 이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일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걸 잘 이용하면 이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아시아인,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일을 잘한다'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하면 "너 굉장히 hard-working 했겠구나"라는 인식이 기본으로 깔린다. 나 역시 국내 S사에서 8년 반 정도 일했던 경험이 있다고 하면, 일에 대한 professional skill은 논외로 치더라도 '일은 잘하겠네', '성실하겠네'라고 하는 기본 기대치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이견을 갖는 외국인들을 아직 주변에서 보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의문을 갖는 것은 '의사소통 능력'이다. 업무적인 능력만큼이나 의사소통 능력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한국에서는 일 잘하는 것을 좀 더 쳐주는 분위기지만, 여기서는 의사소통 능력도 업무적으로 무척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많은 경우에 서로의 의견을 기본적으로 묻고 답하고 경청하면서 프로젝트가 흘러가다 보니, 의사소통능력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국에 있는 외국인들 중에 영어를 가장 못하는 사람들이 아시아인. 그 아시아인 중에서 가장 영어 못하는 나라가 한국인이다 (얼마나 못하는가, 왜 못하는가에 대한 내용은 이곳의 내용을 참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본인이 갖고 있는 업무적인 스킬은 기본이고, 영어 능력을 쌓아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그동안 여러 동양인들의 (한국인 포함) 포트폴리오들을 쭈욱 봐왔는데, 작업의 내용은 다 다르더라도 하나같이 이미지 위주로 작업물을 포스팅한 걸 볼 수 있었다. 물론 효과적인 이미지 하나가 열 마디의 설명을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 일변도의 포트폴리오 구성은 본인 스스로 '나 영어 잘 못함'이라고 시인하는 꼴이 된다. 최소한의 설명으로 어떤 프로젝트인지, 본인의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흘렀는지, 팀 과제였다면 본인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즉문즉답도 아니고 시간을 내어 적는 내용인데 이마저도 어렵다고 못한다면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할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낫겠다.
하고 싶은 말 vs 듣고 싶은 말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본디 굉장히 visual 해서, 작업물을 시각적으로 효과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적절한 설명은 기본이고. 하지만 내가 작업했던 것들을 상세히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많이들 실수하는 것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채우는 점이다.
Hiring process는 대화다. 사람과 대화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반대로 상대방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들로, 내 눈높이에 맞추어 말을 해주면 기분이 어떨까? 마찬가지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로 꽉 채운 내용보다는, 상대방(Recruiter or interviewer)이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추어서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 시각으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준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간결해질 것이다.
발목 잡는 경력?
이곳에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의 많은 경우가 기존에 갖고 있는 경력을 계속 이어 나가려고 하기 보다는, 기존의 경력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방향을 조금 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함께 공부하는 친구 중에 Y라는 학생이 있는데, 약 7년간의 Branding과 Graphic design 경력이 있다. 하지만 Y는 앞으로 UX 디자인 쪽으로 여름방학 동안 인턴을 구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Y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그녀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작업물들이 -Branding과 Marketing 관련- 가득 차 있었다. 본인은 '브랜딩과 마케팅을 잘 이해하는 UX 디자이너'로 본인을 어필하고 싶어 했지만, 리쿠르터가 보기에는 '브랜딩과 마케터'로밖에 안 보인다. 물론 리쿠르터가 UX 디자이너 포지션에 마케터를 뽑을 일은 만무하다. 그래서 내가 Y에게 해준 조언은- 지금 당장은 포트폴리오에 올릴만한 작업이 적겠지만 UX 디자이너로 성장할만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들 위주로 구성하고, 예전의 경력들은 최고의 퀄리티를 보여 주는 것들로만 소량 선택해서 보여주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포트폴리오의 내용을 고친 이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Y는 실리콘밸리의 큰 대기업으로 인턴십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때로는 기존의 경력을 적당히 죽여야, 앞으로의 기회들이 열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