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경력 회고록
나는 구제할 수 없는 길치에 기계치이다. 내 이름으로 등록되었던 네 대의 차 중 두대를 폐차시킨 경력이 있다. 주위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에 둔하고,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에 약하다. 그래서 수많은 자동차들과 속도를 맞추면서 낯선 길을 찾아가는 것에 공포가 있다. 모르는 길 찾아 나섰다가 그 길이 황천길이 될 뻔 한 몇 번의 실수 후, 새로운 곳을 꼭 운전해서 가야 한다면 미리 누군가와 함께 연습을 하고 길을 외운 다음 확실해질 때 가는 편이다.
첫 번째 차는 미국에서 샀다. 초록색 중고 액센트였다.
첫 사고는 이 차로 운전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났다. 한 달이면 내가 운전에 감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친구 집을 찾아가려고 했을 뿐이다. A street에서 좌회전을 한다는 것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었다. A street은 생각보다 빨리 보였고, 그 사인을 보자마자 머리에 입력한 대로 무작정 급 좌회전을 했다. 내가 2차선 직진차선에서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1차선에서 달려오던 차가 내쪽으로 부딪혔다.
차는 그 한 번의 충돌로 깔끔히 폐차되었다.
두 번째 차도 역시 미국에서 샀다. 교통사고의 악몽이 조금 나아질 때까지 1년 정도를 기다렸다.
역시 초록색 중고 지오 메트로. 액센트 보다도 작은 차였다.
이 차에 기름을 가득 넣으면 7불 정도 나왔다. 내가 가진 것이 정말 차인가, 오토바이 만들면서 껍데기만 차 모양을 씌운 건 아닐까 기름을 넣을 때마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곤 했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 붕붕이처럼 (조금만 젊어도 모름 주의) 기름 말고 꽃향기 정도로도 달릴 수 있을 만큼 보잘것없는 차였지만, 이 차는 별 사고 없이 귀국할 때까지 나의 붕붕이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
가끔 내 차 뒷좌석에 탔던 이들은, 내가 차를 빼며 일단 기둥부터 박았지만 별다른 동요 없이 다시 출발하는 모습에 식겁하기도 했고, 갑자기 그들이 탄 차가 역주행을 하고 있는 걸 깨닫고 한마음 다해 나에게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그냥 그 정도뿐이다.
세 번째 차는 귀국해서였다. 사자마자 일주일도 안되어 문을 긁으며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10년은 무난하게 탔다. 그러나 이 차의 최후는 전혀 무난하지 않았다.
너무 바빴던 아침, 차를 세우고 건물로 뛰어 들어가 정신없이 학생들 리허설을 지도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그러고 있을 동안, 파킹도 다 제대로 못해서 중립에 놓여있던 차는 살짝 비탈져있던 주차장에서부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주차장과 연결된 내리막길을 뒤로 굴러갔다. 뒤로 굴러 언덕을 내려가며 붙은 가속도 그대로 대로변을 건넜고, 내가 연락을 받고 나가봤을 때에는 대로 맞은편에 있는 배롱나무 한그루를 부러뜨린 후 엉망진창으로 잔디밭에 처박혀 있었다. 차 혼자 뒤로 굴러 길을 건너는 동안 거기에 부딪친 차나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정말 천운이었으나, 차는 또 폐차되었다.
지금 내가 타는 차는 다섯 번째로, 남편이 오래 타던 차이다. 높고 큰 차가 더 안전하다는 남편의 주장대로 그런 차를 내 것으로 구입했지만, 도저히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아 남편이 타던 오래된 차를 탄다.
보통의 사람들은 차고문을 열고 차를 꺼내고 차고 문을 닫는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과 같은 순서이다. 그 간단한 것조차 몸에 익지 않았을 무렵, 차고 문을 열고 차를 빼는 도중 차고 문을 닫았다. 일부러 그렇게 해보자고 해도 부자연스러울 일을, 도대체 왜? 그러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냈다. 아직 차고에서 다 못 나간 나의 차는, 내려오던 차고 문에 눌려 짓이겨졌다. 그래서 내 차는 지금 브레이크 등 주위가 너덜너덜하다.
세상은 언제나 앞뒤 안 맞는 일 투성이라, 이런 내가 최근 생애 최초로 투자를 한 것이 하필이면 자동차다. 무려 태양광으로 달리는, 번쩍이는 딱정벌레처럼 생긴 과도한 미래지향형 디자인의 차로, 연말쯤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타는 순간 바로 눈에 띌 것이다. 엉겁결에 역주행이라도 하는 날엔, 그 다음날 지역 신문에 실릴 수도 있겠다. 선택적 소심증을 가진 내가 그 차를 사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해도, 구입 여부와 상관없이 이제는 운전 연습을 해야 될 것 같다. 미국에서 살면서 운전을 안하고 살 방법은 없다. 모르는 도로에 나갔을 때 서늘하게 밀려오는 그 공포를 언제쯤 극복할 수 있을까. 아직도 극복할 것 투성이인 나의 부실함이 참 성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