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예선에서 1, 2위로 뽑히면 주 단위 본선으로 가는 콩쿨에 학생을 세명 내보냈다. 레벨이 아홉 개로 나뉘어 있고 연주 이외에도 시창청음, 초견, 이론 등 여러 가지를 평가하며, 이 기초 분야에서 75점 미만을 받으면 연주에서 1.2위로 뽑혀도 본선 진출은 취소된다. 이런 형식의 콩쿨이 한국에도 있던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신선하다. 그리고 그 필요성에 공감도 된다.
나는 이런 musicianship을 평가하는 한 방에서 학생들을 채점했다. 그간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대학생들만 보다가, 아장아장 들어오는 학생부터 건들건들 들어오는 학생까지 연령차를 보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고 흥미롭다. 대부분의 학생이 망설임 없이 답을 한다. 그것도 신기하다. 우리나라에서 7세 아이에게 C에서 장 2도 위를 물으면 2초 만에 건반 위에서 D를 짚어 낼 수 있을까? 아직 전공생이 아닌 초 4에게 화성, 가락, 자연 단음계를 귀로 구분하라 하면 다들 이렇게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런 유아기, 아동기의 음감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인데도,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많은 연주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것이 어쩌면 더 신기한 일일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내심 감탄하고 있는 동안, 내 학생 세명은 열심히 다른 방에서 시험을 보고 자기 차례에 연주를 했다. 세명의 학생 중 두 명이 각 레벨에서 지역예선 1위, 2위로 선택되어 주 본선으로 진출을 했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성과이고 보람이다.
그러고 나니 가장 마음이 쓰이는 학생, 세명 중 주 본선에 가지 못한 한 아이. 열 살이다.
콩쿨은 처음으로 도전하는 아이. 실수할까 봐 절대로 안 하겠다고 버티던 아이를 엄마가 설득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초중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신선한 것 중 또 하나가, 이 아이들은 부모와 상의해 가며 과정을 함께 점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의 부모는 민원이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만날 일이 없고, 그 민원이라는 것도 내 불행한 경험상으로는 거의 상식 밖의 것이었다. 교재 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 또는 우리 딸이 시험을 안 보긴 했지만 왜 F냐 가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지나고 나서야 웃는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혼자 상을 못 탔으니 아이가 풀이 죽었을까 싶어 그다음 주 레슨 시간에 한껏 위로를 했다. "나는 너를 가르치는 게 너무 즐거워", "그래서 매주 네가 오는 게 기다려져",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몰라", "그러니 실망할 것 없어" 등등의 말을 늘어놓다가 "나는 네가 제일 자랑스러워"라는 말로 위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려고 했다.
그러자 수더분하지만 맑은 눈을 가진 이 아이가 그 눈빛만큼이나 맑게 예상 밖 질문을 한다.
"오...그렇다면...누가 두 번째로 자랑스러웠나요?"
잘 나가고 있던 나의 위로 잔치에 잠시 제동이 걸렸다.
"응? 뭐라고..?"
"그러니까 Dr. Park 학생들 중에서 내가 제일 자랑스러웠으니까 두 번째로 자랑스러운 학생은 누구였나요?"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 내가 또 한국인답게 순번을 정해서 네가 '제일' 자랑스럽다고 했구나.
이런 천진한 질문에 능숙하게 대답을 하기에는, 나는 아직 어린아이에 대한 경험이 한참 부족하다.
대답을 했다기보다는 얼버무리게 되었다. 어떻게 대답했어야 좋았을까? 아직도 모르겠는 게 자꾸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다음에도 콩쿨이 있나요?" 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나도 아직 여기가 처음이고, 몇 개의 콩쿨이 언제 열리는지 잘 모른단다. 그러나 아직 4월이니 뭐라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럼!' 하고 답했다.
"다음에도 꼭 또 하고 싶어요!" 한다. 그 후 적당히 수줍게 이어지는 말, "Dr. Park 은 내가 음악적이라고 했지요. 엄마도 그렇대요. 나도 혹시 그런가 싶어요"
여기서 또 나는 이 아이에게 심쿵하며 격하게 동의해 주었다.
1.2등을 한 것도 분명 성과이지만, 나에게는 상을 못 탔지만 다음 콩쿨이 하고 싶다는 이 말도 기쁜 성과이다. 실수가 두려워 안하고 싶던 콩쿨을 열심히 준비했고, 정말 실수를 했고, 그래서 떨어졌지만 그 다음에도 하고 싶은 마음. 나는 이 아이가 그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마음이 사랑스럽다.
네가 '제일' 자랑스러웠다는 위로는 처음부터 아마 이 아이에게 필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콩쿨에 떨어진 것이 음악에 대한 흥미나 본인에 대한 자신감, 자존감에 해를 입히지 않았다. 멋진 아이다.
한 곡을 잘 치게 되기까지 앉아서 연습하는 것 외에는 빨리 가는 지름길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고,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것을 발견하고, 결국에는 성장하게 되는 이 정상적이고 귀한 여정에 관여하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란 어린 아이들이 세상을 대하는 정상적인 자세를 가지는 데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비정상의 범람을 보며 정상을 역설적으로만 배우지 말고, 정상의 과정을 체험하며 정상의 가치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 결과와 물질만이 전부가 되어가는 걱정되는 이 빠른 세상에, 그 이외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항변할 수 있는 어른으로 크는데 내가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가 두번째로 자랑스러웠는지에 대해 아직도 곰곰히 생각중이다.
어떤 답이 정답이었는지 아직 잘 모른다 해도, 내가 하는 일의 의미가 점점 더 선명해 지는 것이 작은 동력이 되어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