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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었던 마음

이루어진 소망

by 소담

이 글은 십 수년 전 가장 친했던 남사친과 결혼하던 나의 마음을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이때의 이 갓 나온 수제비 같던 야들야들한 마음은 행방이 묘연하다 해도, 마지막 줄, '이 선택이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것이라 믿게 되기를' 이라던 소망은 완전히 이루어졌다. 나는, 내 인생에 아쉽고 슬픈 대부분의 것들을, 이때의 선택 하나로 대부분 퉁칠 수 있다.



결혼한다.

10년을 서로 좋은 마음으로 지켜봐 온 내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을 한다.

식장을 잡고, 반지를 맞추고, 드레스를 고르고, 허니문 스케줄을 받아본다.

멀리 계시는 그의 부모님께 좋은 딸이 되고 싶다는 이메일을 쓰고, 그분들에게서 너를 딸로 맞게 되어 기쁘다는 답장을 받는다.

그 친구는 나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차 안에서 이미 온 근육이 독주회 이틀 전만큼이나 굳어버렸고, 온 셔츠가 흠뻑 젖었다. 혹시 자기가 내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되는 건 아닌지 정말 진지하게 물어본다. 농담인가.. 2초 빤히 쳐다보았는데 정말인가 보다. 식사를 하는 동안, 누가 봐도 지금 얘가 자기가 뭘 먹는지 전혀 모르는구나 싶게 긴장을 했다. 나중에 자기도 그랬다. 한식집에서 맥도널드 줘도 몰랐을 거라고.


그 애를 처음 본 1999년이 기억난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나는 아직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어중 띈 상태의 동기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음대로 같이 들어가고 있었고, 그는 청순한 인상을 가진 그 당시의 여자친구와 반대쪽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와 같이 가던 무리 중 한 언니가 이미 이전 학교에서부터 그들 커플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 관해 잠시 짧은 설명을 들었다.

그는 그 당시 우리 무리를 못 봤을 거다. 그가 자주 얘기하는 '처음 본 너'라는 것은 반주법 교수의 연구실 옆 커다란 녹색 카우치에 구겨져 앉아 레슨을 기다리고 있는 동양 여자아이였단다. 늦은 오후 텅 빈 복도에, 조그만 것이 넘나 구겨져 있었나 보다. 레슨 끝나고 나와 지나가던 그는 나에게 말을 걸었고, 우리는 반주 선생님 방 옆이어서 그랬는지, 딱히 할 얘기가 없어서 그랬는지, 한 5분간 줄곧 반주얘기만 했었다.


아.. 단 몇 줄이라도 해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의 10년을 어떻게라도 표현해보려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듯하다. 살면서 가끔씩 그러고 싶은 마음이 일면 그때그때 우리의 결혼 전 10년 - 학창 시절을 돌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친구로서는 그에게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나는 항상 그 애가 더 잘되고, 더 인정받기를 바라줬다. 그 애의 단점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충고할 때마다 그 애는 내 말을 집중해서 들어줬다. 그 애가 좋은 성취를 이뤄냈을 때마다 같이 기뻐했었다. 그 애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이, 언젠가 그 애의 인생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쓰이기를 바라왔다. 그리고 그 애도 나에 대해 그랬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로서는 서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그와 결혼하게 될 사람으로서는 매우 미안하다.

그 애는 오래 기다렸다. 그는 내가 굳건히 믿어왔던 우리 우정 위에 다른 종류의 마음을 쌓고 있었다는 말을 내가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오기 두 달 전에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 없었지만, 어렸던 나에게 우리 우정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괜한 화를 불러일으켰기에, 그 쓸데없는 사람들에 대해 잠시 항변했던 내 마음의 잔해들이, 우리 둘이 완전히 싱글이 된 이후에도 그와의 관계를 더 발전시킬만한 여지 자체를 차단해 버린 것 같다. 나는 이미 그가 너무 편했다.

생각해 보면 어색해질 수 있는 타이밍이었지만, 나는 미안하고 당황한 마음에 한판 심하게 울고 난 후, 6년을 쌓아온 아까운 우정을 잃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도 동의해 줬다. 친구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도, 친구를 잃지 않게 해 준 그에게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우리는 말하자면 연애기간이 없었다.

오랜 시간 많은 착오들을 겪은 후에야, 나는 드디어 내가 필요한 사람은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는 갑자기 친구에서 약혼자가 되어버렸다. 약간의 혼선이 있을 것 같다. 나는 걱정이 된다. 너무나도 잘 아는, 알아서 병인 그 애의 장점들과 단점들. 친구로서 바라보고 있을 때와 약혼자로서 바라보고 있을 때의 느낌이 이미 많이 다르다.

10년을 친구였던 그 애를 갑자기 너무나 열렬히 사랑하거나, 너무 그리워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지금까지처럼 서로 많이 이해하면서 의지하고, 많이 웃고 싶다. 우리는 서로 정말 많이 웃는다. 그 애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다. 그리고 이것들은 결혼의 이유로 나에게는 너무나도 충분하다.


결혼한다.

여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나에게 먼저 관심을 가져주고,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준, 내 오랜 친구와.

얼마 전 그가 말했다.

지난 8년 동안 나는 그에게 정말 좋은 친구였고, 너무나 복잡하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사람이었다고.

평생을 통해 나를 더 알고 싶다고.


그 애를 친구로 갖은 건 이미 행운이었다고 여긴다.

아직은 입에 붙지도 않게 어색한 단어지만, '아내'로서 그 애와 평생 함께 하기로 한 것이, 내가 한 선택중 가장 잘한 것이었다고 믿게 되기를, 그 애와 한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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