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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와 아기 강아지

by Story J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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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친구나 친적이 오고, 그들이 머물다 가는 것에 점점 익숙해진다. 같이 자고 먹으면서 낮밤을 몇 번 보내다 보면, 대낮에 제대로 옷 입고 밖에서 만나서 하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하게 되기도 하고, 일부러 관찰하지 않아도 그들의 소소한 손동작, 몸동작 그런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가끔은 그들이 사는 방식을 보게 될 때도 있다.


아버님의 사촌여동생의 셋째 딸, 남편의 먼 친척 누나 히나코가 아들 츠요시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13살, 중2 츠요시 군은 첫날 소바를 보고 황급히 의자 위에 올라갔다. 생전 동물 곁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도 아직 5개월 아기인 주제에 저를 무서워하는 중2를 얕잡아 본 소바는 의기양양 왕왕 짖어대며 가정교육 못 시킨 에미를 부끄럽게 했다. "소바! 그만해!"  "츠요시! 미안해!"를 외치며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생각의 방으로 소바를 옮기려던 나를 히나코가 부드럽게 제지했다. "츠요시는 동물과 같이 있는 법도 배워야 돼요, 그냥 둬도 돼요." 츠요시는 분명 무서워했지만, 호들갑도 유난도 떨지 않는 엄마 히나코의  '괜찮다'는 가이드를 따라 소바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먹이도 던져보고 장난감 인형도 던져보고 하더니 이틀 뒤에는 나 밥 먹는 동안 어색하게 소바의 산책을 대신해 줄 정도가 되었다. 소바는 그때쯤 츠요시에게 완전히 배를 뒤집으며 드러누웠다.


움직이는 털뭉치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으면서도, 츠요시는 공항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소바를 조심조심 만져주고 몇 번이고 인사를 나눴다. 며칠간 긴장한 듯 결연한 눈빛으로 소바를 살짝살짝 만져보며 극복해 가던 소년과 그것을 조용히 도와주던 엄마 히나코. 히나코는 마지막 날에 츠요시가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했다며 웃었다.


별일도 아닌 이 일이 깨끗한 종이에 연하고 맑은 빛의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마음에 남았다. 귀한 아들에게 짖어대는 초면의 강아지를 경계하지도 않고, 당황한 아들을 필요이상으로 위로하거나 극복하라고 다그치지도 않고, 안절부절 못하는 내 팔을 잡고 말리며 “괜찮아요” 하던 히나코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의 삶도 평온할 수만은 없을 테니, 들끓고 언성 높이는 일상도 당연히 그들의 삶에 존재하겠지만, 내가 우연히 본 것은 엿보고 나니 닮고 싶어진 그런 순간들이었다.

어떤 좋은 이의 삶이 평범하고 조용하게 흐르는 걸 가만히 보는 것은 치유적이다. 조용하고 평범한 것이 진부하거나 지루한 것만은 아니다.

왠지 머리가 맑아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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