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 앞에서 만난 뜻 밖의 사람
별 검색 없이 별 거 모르고 짧게 떠나는 무계획 여행을 더 좋아한다.
일상이 검색인 것도 피곤하고, 심지어 온라인에서 본 사진이 실제 경관보다 낫다 싶을 때 그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실망을 몇 번 겪은 후 더 그렇게 되었다. 사진 기술이 발달한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무계획으로 경주에 왔다.
나는 고 1 수학여행 이후 처음이고, 남편은 생전 처음이다.
왕릉과 첨성대 주변을 산책하다, 첨성대가 이렇게 작았었나 의아해 중얼거리고 있는데 남편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린다. “나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하며 갑자기 반대편으로 급히 걷는 남편. '여보, 당신은 외국인이고 여기는 경주라고. 그럴 리는 없어'라는 마음으로 쫓아가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앤?” 하는 남편의 우렁찬 외마디 소리에 정말로 돌아보는 한 사람.
그 쪽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외침, “와!!! 정말 너야?”
한발짝 떨어져 보고 있던 나, '뭐야..이 영화같은 장면은?'
무척 흥분한 두 사람은 한 30분간 선 채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녀는, 속해있는 심포니 내한 공연으로 한국 여러 지역에서 공연을 마친 후 남은 하루를 경주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방학마다 경주에 와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남편 안식년을 맞아 드디어 실행한 여행이었다.
둘다 처음 와본 경주에서 25년 만에 우연히 만난 그들의 허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각자의 일행과 저녁을 먹고 다시 보기로 했다.
그녀는 나에게 과하지 않은 다정한 톤으로 말했다. "부부 여행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데 미안해요"
"별말씀을요, 좀 있다 또 봐요"
그저 옛 친구이려니 했는데, 내 쪽으로 돌아선 남편이 빨리 말해버리자는 듯 고백한다.
남편의 첫사랑, 첫 여자친구였다고.
내가 그래도 신분이 와이프인데 혹시 이건 나에게 너무한 상황은 아닌가 2초 고민하려다가 실없어 내려놓는다. 그녀의 첫인상은 나에게도 매우 좋았고, 첫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몇 번 들었기에 좀 궁금하기도 했다. "나나 되니까" 남편이 첫사랑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목격하고도 그 여인과 같이 나가 차를 마신다는 것을 나중에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걸로, 그렇게 빠르게 정리했다.
그녀의 동행 한명과 우리 부부까지 네명.
카페가 문닫을 때까지, 그러고도 한참 황리단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푸는 걸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내 추억이 아닌데도 재밌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건 기억하는지, 이건 기억하는지.
서로 알아봐줘서 고맙다, 이걸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캐나다에 오면, 미국에 오면, 한국에 오면, 또 연락해라. 오가는 모든 말이 아이 같은 흥분으로 가득하다.
잠시 만났던 좋은 인연, 완전히 잊고 살다가 생각지도 못한 곳을 여행하며 25년만에 만났을 때, 바로 알아볼 수 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고 들어주며, 조심히 가라 마음 다해 안아주고 헤어지는 일을, 나는 살면서 겪어볼 수 있을까?
계획한다고 일어날 리 없는 일을 여행 중 겪고 나니, 무계획 여행이 더 좋아졌다.
그들이 부르던 목소리, 표정, 서로 알아봐줘 고맙다며 전하던 기쁨, 남편 뿐 아니라 내 기억에도 오래 남을 듯 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구절을 눈으로 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