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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 J Aug 06. 2022

윗집 꼬마 밤톨

2017년 가을 아침 일기

아침 출근길이 보통보다 조금 늦어지는 날엔, 내가 사는 702동 게이트 앞에서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꼬마들을 두세명 본다.

14층 밤톨이도 유치원 유니폼을 입고 유치원 가방을 메고, 엄마와 함께 버스를 기다린다. 밤톨이와 정확히 같은 차림을 한 하얀 여자아이 두 명, 그리고 이 아이들의 동생들을 안거나 업은 젊은 엄마 둘. 꽤 붐빈다.  


며칠 전 아침, 오랜만에 밤톨을 만났다. 몇 달 전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날, “이모는 결혼 했어요?” “이모는 13층 아저씨랑 결혼해서 13층에 사는 거에요?” 창조성 돋보이는 질문을 용감하게 던지던 밤톨이가 갑자기 다른 아이인 양 부끄러워하며 엄마 뒤로 숨는다.

아이의 눈 맞춘 인사를 받고 싶어 자꾸 말을 거는 사이, 밤톨의 여동생은 겨우겨우 걸어와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돌멩이를 수줍게 들이밀고, 밤톨 옆에 있던 하얀 여자아이는 “이모! 내 이름은 박 아기 아무개예요!” 안 물어봤는데 소개를 해대는 통에 그날 아침은 차를 타기도 전에 뭔가에 홀린 듯한 상태가 되었었다.


오늘도 약간 늦었다

이쯤이면 또 유치원 버스 그룹을 보겠구나 살짝 기대도 된다.

잠시 주저앉아 “안녕 밤톨아?” 하자마자 지난번과 또 달라진 아이는 갑자기 잘 안 돌아가는 발음으로 바쁜 일이라도 있는 듯 빠르게 말한다.

“이모는 언제 13층에 왔어요?”

“나는 다섯 살이에요”

“우리 윗집은 15층인데 거기 사는 누나는 엄청 쿵쿵쿵 걸어 다녀요”

옆에서 엄마가 거든다. “얘가 집에서 준비 많이 하고 이모 만나려고 기다렸어요”

까까머리를 쓰다듬고 한번 꽉 안아주고 싶은데, 혹시 엄마가 싫어할 수도 있으려나 싶어 간신히 참았다.

나를 보자마자 또 바닥을 헤매며 흙먼지를 주워 가져다 주는 밤톨의 여동생을 뒤로 하고, 밤톨은 내 손을 이끌어 단지 안 수풀로 데려가더니 잎 하나를 똑 떼어 선물한다. "이모, 이거 내가 따줄게요"

심쿵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출근하여 연구실 책상 시간표 위에 고이 눌러놓았다.


아침 가을볕에 가을바람에 버스를 기다리며 아장거리는 아기들과 엄마들이 그림 같다. 그녀들이 아이들과 마구 섞여 있는 모습이, 내 오래된 책 속 삽화처럼 정겹다.


그나저나 밤톨이가 나를 기다린다니.

'혹 만날지 모르니 예쁘게 하고 나가야겠다’는, 해 본 지 못돼도 20년은 넘은 결심을 해 본다.

피곤함을 발목쯤에 질질 끌고 나가던 출근길이 가끔 이렇게 즐거워질 수도 있구나.


인생은 가끔, 아니 항상, 참 음악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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