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비평 2. 회색인

에고의 자기 정립과 한국 정신의 전개

by 박제원

1. 서론

해방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사회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은 끊임없이 벌어졌다. 전쟁, 시위와 진압, 납치와 고문, 테러리즘.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에서 그 어떤 가치도 이념보다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세계는 개인을 규정하고 억압한다.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우리 반도인들은 그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깊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인훈은 그 누구보다도 주목해야 하는 작가임에 분명하다.


최인훈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직격한 역사의 흐름 속 개인 내면의 의식을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사유한 작가다. 그의 목적은 역사적, 정치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대신 그는 이 시대 조건에서 개인의 사고와 선택에 대한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대에게 비하당한 인간 조건과 규정당한 인간 관념을 향한 탐구를 수행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광장』은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이질적인 작품이다. 그는 사건들의 직접적인 언급을 꺼려하는 성향이었다. 정 다루고자 하면 한국을 애로크, 일본을 나파유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피해서 서술하는 편이다. (각각 Korea와 Japan의 애너그램) 반면 광장은 명준을 시대의 흐름 속에 직접 투입 - 작가 본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잠수 - 시켰다. 체제의 대립이 개인에게 남긴 상흔과 황폐화된 정신을 조망했다. 이 문제의식은 의식과 관념의 흐름을 포착하고 탐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이 문제의식이 가장 밀도 있게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회색인』이다. 미시적으로는 개인의 내면과 에고를, 거시적으로는 한국 사회와 역사에 가진 성찰을 보여준다. 독고준이라는 인물의 에고의 성장은 그가 바라는 한국의 의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알레고리다. 작품의 초반, 독고준은 현실의 문제에 가진 해결방법은 혁명이 아닌 ‘사랑과 시간’에 있음을 강조한다. 본 보고서의 목적은 이런 결론이 도출되는 전개과정을 소설론적 접근을 통하여 살펴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회색인』이 분단 이후 한국 사회와 개인의 정신을 성찰함으로써 거둔 성과를 살펴보고, 나아가 해당 성찰이 현대 한국인들의 의식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확인하고자 한다.



2. 본론

2.1. 에고와 세계의 대립

오르한 파묵은 소설의 진짜 주제란 인물이 아닌 세계의 속성이라고 정의했다. ‘캐릭터’란 상상에서 비롯된 인위적인 개념이며, 소설 예술의 주 목표는 ‘정확한 삶’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설은 배경과 사건이 정해진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며, 그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자면, ‘소설 예술에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소설 주인공들의 개성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소설 속 세계가 그들 눈에 어떻게 보이냐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등장인물마저 세계의 일부로서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다. 최인훈의 목표는 불멸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었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전후 황폐화된 작은 국가인 한국이 취해야 할 자세, 혹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억압하는 구조에서 투쟁하는 개인의 치열한 사유, 이런 것들을 그려내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서 아예 새로운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관념과 사상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물을, 행동보다는 방황하는 인물을 그는 그려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인물의 몰개성과 플롯의 우월성만을 주장하는 인물은 절대 아님은 분명하다. 플롯과 인물의 대비는 마치 체제와 인물의 대비와 비슷하게도 보인다. 세상에의 복속은 곧 자유로운 사고를 단념하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문학의 속성이란 체제에 의해 수렴당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자 신념이다. 그의 인물이 아예 새롭지는 않을지언정, 작품 전반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상 - 고독하게 사유하는 지식인 - 이 있음은, 그리고 그것이 작가 본인의 반영(행보부터 생각까지), 즉 페르소나임은 거기서 나왔을 테다. 즉 그의 작품의 인물은 작품 내에서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플롯에 완전히 복속된 부자유한 존재까지도 아니다. 작가 자신의 관념과 사상의 편린으로서, 행위적으로는 부자유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세계에서 분화된 작가의 페르소나를 도식화하자면, 시대의 억압과 폭력을 시각화하는 인물로 『광장』의 이명준으로, 치열한 사유로 하여금 관념과 에고의 성장을 나타내는 인물로 『회색인』의 독고준으로, 내면성과 환상성의 흐름에서 존재론적 불안과 고립을 보여주는 인물로 『구운몽』의 독고민으로 형상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은 최인훈의 등단작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에서부터 시작하여 『광장』, 『회색인』 등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주요한 문제이다. 『회색인』에서는 이 갈등이 각각 에고와 집단을 의미하는 두 명의 등장인물, ‘독고준’과 ‘김학’으로 표상된다.


등장인물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배경부터 설명할 필요성이 있다. 작품의 배경은 1958년에서 1959년 사이, 4.19 직전의 한국이다. 한국에는 신화가 없다는 말이 줄곧 언급된다. 단군과 같은 우리의 의식과 거리가 먼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바로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정치체제를 위하여 피 흘려 투쟁한 기억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4.19 혁명이 바로 우리의 신화로서 자리매김했기에, 작가는 일부러 혁명의 직전으로 배경을 설정하였다. 그런가 하면 심리적인 배경은 독고준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그리고 자취방에서 매부의 집으로 이동하며 변화한다. 북한의 기억은 자아비판의 트라우마로, 자취방의 기억은 가난에서 비롯되는 현실의 투쟁으로, 매부의 집은 투쟁을 저버리고 순종해 버리는 정신의 굴종으로 이어진다. “금방 베스를 쫓던 목소리가 퍼뜩 생각나면서 준은 개가 되었다.”


비록 주인공은 독고준이지만 편의상 그와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등장인물인 김학을 소개해야 될 듯싶다. 그는 정치학도다. 그는 현실을 향한 해결책으로 ‘행동’을 제시한다. 공허한 한국의 사상적 상황과 정치적 상황을 행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현실을 인간의 의지로 돌파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아와 세계는 합일될 수 있다고 믿는다. “혁명이 가능했던 시대라는 건 어디도 없었어. 그래서 혁명이 일어났던 거야. 이런 역설의 논리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만 뚫렸어. 그 의지의 발동을 망설이는 것을 나는 비겁이라고 부르는 수밖에는 없어.”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독고준을 비겁이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행동하기에 그의 사상은 빈곤하다.

그의 사상적 당착은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 점차 해결된다. 그의 형은 해군 장교 시절의 어느 일화를 소개해준다. 요코하마 항구를 향해 함포를 쏘고 싶다는 욕망을 내비치던 그의 동료 이야기다. 전체자로서의 민족이 사라졌음에도 우리는 민족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노라는 형의 말이다. 민족이란 세계이다.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었음에도 우리는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부조리한 감정을 아직 가지고 있노라는 말이다. 우리는 아무리 현실이 얼룩졌어도 국가와 고향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의 형은 말한다. 여기에 더하여, 김학은 황 선생이라는 인물과 만난다. 황 선생은 역사와 현실, 전통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세계는 얼룩졌을지언정 공허하지 않으며 서양이 기독교를 가진 것처럼 우리에게는 불교가 있노라고 말한다. 이로서 그는 사상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혁명론에서 세계와 조화를 추구하는 개혁론으로 성장한다.


드디어 주인공 독고준을 소개할 차례다. 그는 어린 시절을 북한에서 보내다가 전쟁 때 배를 타고 월남하여, 소설가를 지망하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그의 가족은 일찍이 월남한 아버지와 한때는 열렬 당원이었다가 누나를 배반하고 월남한 매부, 그리고 누나와 어머니로 구성됐다. 그의 가족과 당 체제와의 갈등은 명약관화이다. 그는 자아비판, 당과 가족 사이의 대립을 겪으며 고뇌하고 소외되며, 이는 훗날 매부에의 복속 혹은 징벌 사이의 갈등, 종교와 관념을 의미하는 김순임과 지성과 현실을 의미하는 이유정 사이의 선택에 대한 고뇌에서 더 심화된다. 그는 전쟁 당시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홀로 월남하는 것에 성공한다. 월남 이후 가난하게 살다가 누이를 버린 매부를 향한 복수를 위하여, 이미 성공한 그를 다시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위하여 매부의 당증을 가져가지만, 거래 끝에 그는 복수를 포기하고 매부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 혹은 이북에 두고 온 -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하여 조부와 먼 조상들이 있다던 어느 시골 마을로 향하지만 거기서도 그는 실패한다.


그의 행보는 유년 시절부터 연이은 실패와 회피의 연속이다. 그러나 오직 한 번,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 바로 유년 시절, 방공호에서 어떤 이름 모를 여인과의 뜨거운 포옹이다. “폭음, 더운 공기, 더운 뺨, 더운 살, 폭음”은 그의 사유에서 연이어 등장한다. 매부와의 거래와 뿌리 찾기, 그리고 김순임과의 만남 모두 이 어린 시절의 승리를 다시금 되찾기 위한 시도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연이어 실패하고 회피한다. 그의 사고는 외부로 뿌리치기보다는 오히려 자폐적으로 파고들기만 한다. 독고준에게 시간성은 거의 없고 오로지 공간성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는 자유로워진다. 시간이란 곧 역사를 의미한다. 역사란 곧 이데올로기를, 국가를 의미한다. 헤겔을 연상시키는 이 논리로 하여금 독고준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진다. 가족, 고향, 족보와 같은 모든 시간적 요소를 배제하면 그에게는 오로지 자기 자신, 에고만이 남는다. “가족이 없다, 그러므로 자유다. 이것이 우리들의 근대선언이다.” 이로서 그는 자신의 에고를 독보적인 위치로까지 올려놓고 자기 자신을 선언한다.


자기 자신을 선언한 그는 비로소 자신의 에고를 ‘재정립’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매부의 당증으로 거래를 한 자신의 행보에 대하여 생각한다. “왜 그 당증을 예금 통장으로만 생각했을까. 알 수 없는 어떤 것. 내가 넘어서기를 주저한 어떤 곳으로부터 보내온 초대장이라고 생각하자. 초대자의 이름은 어떻든 좋다. 문제는 초대되었다는 데 있다. 이 초대에 응하기로 하자. 초대자의 이름을 알기 전에는 벨을 누르지 않겠다는 것이 비겁한 일이라면.” 이런 독백을 남기고 그는 이유정의 방으로 들어간다. 종교와 관념을 의미하는 김순임이 아닌, 지성과 현실을 의미하는 이유정의 방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 비겁이라던 작 초반의 김학의 말을 반영하는 듯 그의 에고의 방향은 현실로 향한다. 정립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포기했던 시간을 에고는 향한다. 사랑을 위하여.


이렇듯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닌 의식이다. 작품은 의식의 투쟁을 통하여 전개된다. 독고준이 자아 정립을 하는 과정까지 시간보다는 공간이 더 부각된다. 방공호와 국경과 매부의 집. 뿌리를 찾아 나서는 서유기의 과정. 관념에서 깨어나 현실로 향하며 내려간 이유정의 방. 내려가는 행위는 많은 것을 암시한다. 앞서 말했듯 공간적 배경은 에고의 전개와 독고준의 심리에서 거부할 수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에 반해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부각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회상을 제외하면 작품의 시간은 1년 남짓 흘렀으며, 그동안 시간이 인물들에게 부여한 사건은 각각 독고준은 매부와의 거래, 이학은 형과 황 선생의 만남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어린 시절마저도 시간보다는 방공호나 자아비판을 당한 학교와 같이 공간적 요소가 더욱 부각된다.



2.2. 언어와 문화와 이데올로기

전술했듯, 최인훈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모두 작가가 가진 관념들의 파편이다. 모든 관념, 사건, 행위들은 작가가 겪거나 관념 속에서 생성되어 이리저리 해체와 재결합을 거친 편린들이다. 독고준이 이북에서 자아비판을 한 사건, 전쟁 중 월남한 사건, 군 시절 초소에서 사유한 사건... 이들은 모두 최인훈이 직접 겪었던 사건들이며 『광장』, 『하늘의 다리』, 혹은 기타 단편들에서 이리저리 재구성되며 반복된다. 결국 남는 것은 언어와 관념뿐이다.

그는 띄어쓰기를 사용하지 않거나 관념을 마구 늘어놓는 언어 해체를 여러 작품에서 선보이며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 정치의 얼굴. 새로운 인간. 새로운 종교. U.S.A. 점묘법. 추상. 카프카의 불알. 최소한의 인간. 영화의 계기성. ...”, “... 나는 모른다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서 대답을 들을 때까지 너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 “아닙니다선생님마스터베이션을너무해서그렇습니다선생님은안그러셨어요?목쉰음성그대없이는이세상없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의식의 심연에 한 층 더 접근한다.


그는 애초에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김학과 독고준의 토론을 보아도 작가의 생각이 그대로 나온다. 라틴어를 기반으로 한 서양의 언어는 표어문자이기 때문에 언어가 어디까지나 수단의 성격을 띠는 반면, 한자를 기반으로 한 동양의 문자는 표의문자이므로 언어가 목적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 언어의 존재가 승격이 되어버리면 그만큼 역사성은 가라앉아버리기 때문에, 서양이 시를 쓰고 있을 때 동양은 서예를 하고 있었으며 영국의 Elizabeth와 한국의 선화공주는 그 역사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언어는 무의식을 지배하므로 동양과 서양의 의식 수준에서 다른 점이 있음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언어만이 아니다. 문화와 사건도 무의식을 지배한다. 정치체제에서 그랬듯이 문화 역시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설프게 서양의 사조를 따라가려는 흐름은 결국 무책임한 에피고넨에 그친다. 낭만주의도 고전주의도 없이 주어진 모더니즘과 허공에 대한 전위는 정립이 없는 반정립에 그친다.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그리스도를 인생의 심벌로 착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심리는 잘 쳐줘야 번역극 언저리다. 외국물 먹은 예술가들은 한국을 위한 봉사가 아닌 서양 문화의 선전원 격으로 귀국했다. 한국 문화는 서양 문화를 몰아세울 수 없고, 춘향이는 파마를 한 채 이몽룡과의 사랑에 ‘권태기’를 맞을 것이다.


사건은 보다 직접적으로 무의식에 관여한다. 가령 방공호의 여인은 독고준의 노스탤지어로서 끊임없이 되돌아가고자 하는 어떠한 승리의 지점이며, 혹독한 자아비판의 경험은 독고준의 우유부단한 행보의 뿌리가 된다. 개인에게 벌어진 사건은, 국가로 치면 역사다. 국가 역시 무의식에 지배당한다. 줄곧 무시하던 섬나라 일본한테 지배당한 기억이나, 자주독립을 실패한 기억, 더 이전으로 돌아가면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중혁명인 동학을 외세의 힘으로 진압한 기억 등등이 우리의 패배의 기억이요 무의식이라는 말이다. 식민지 시절 지식인들은 광복의 그날까지 순수한 어린양이 되어 우리의 몫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으며 초기 내각을 잡은 이 박사는 친일파의 단죄를 행하지 않으면서 권선징악의 신화를 내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내셔널리즘에는 오로지 부정만이 남게 되었다.


같은 논리로, 일본이 서양에 참패한 이유에는 물론 다른 요소들이 컸지만 정신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고 황 선생의 입을 빌려 말한다. 모름지기 제국이 팽창하려면 점령지인들의 육체와 정신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통치방식과 문화를 골라야 한다. 따라서 일본은 유화정책과 서양의 기독교 정신에 대치되는 동양의 정신을 내세워야만 했는데, 제국의 팽창에 있어 가장 못된 방법인 제국주의와 공포정치를 고른 것도 모자라서 제국을 받치는 종교로 오로지 일본인들에게만 통하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택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서양끼리는 같은 유럽에 대하여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 피지배국의 정신은 일본에 복속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일본을 주축으로 한 보편제국의 탄생은 그 시작부터 명확한 한계를 지녔다고 말한다.


신화를 지니지 못한 것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김학은 상해임시정부가 아닌 미군정의 주도 하에 이승만의 정권이 들어선 게 패착이라고 주장한다. 임정이 들어섰으면 정부 그 자체가 우리의 신화로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들은 애국자들을 모시는 서낭당을 방방곡곡에 세웠을 것이다. 하얼빈 역두의 영웅, 청산리의 기사, 서울 역전의 돈키호테, 천안의 잔 다르크... 별같이 빛나는 부족의 영웅들이 푸짐한 제상을 즐기며 허공에서의 방랑을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결국 우리의 정치체제는 서방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진다. 권선징악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무의식은 오염됐다.


오염된 무의식의 극복과 에고의 자기 정립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부정에서 탈피해야 한다. 독고준의 방황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2.3. 방황과 자기 정립

독고준이 행하는 에고의 방황은 곧 한국 정신의 표상이다. 그는 패배주의와 기성윤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방황한다. 이는 한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하여 치러야 할 고난이다.


김학과 독고준은 그 해결책만 다를 뿐 현실에 가진 인식은 같다. 그들의 주된 논지는 우리의 모든 정치와 사유체제는 서양에게 일방적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 흘리며 혁명한 적이 없으니 선거권을 막걸리 한 잔에 파는 게 아니겠냐고 말한다. “정치학만 해도 저쪽의 경우는 정치사라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경우에는 하루아침에 신탁처럼 주어졌어.” 그런즉 우리에게는 회의懷疑할 시간이 없었고 다만 우리의 내셔널리즘에는 오로지 일본에 대한 반항이라는 부정적 키워드만이 남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독고준은 정신마저 서양의 문학 인물들에 자아의탁한다. 이북에 있던 시절에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코르차긴에게 그러했다. 이 습관은 성년이 되어서도 계속 남는다. 그의 매부에 대한 복수계획을 짤 때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자신에게 투영한다. 자유로운 판단과 윤리로서 주체적 행동을 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독고준 자신은 자유로운 판단도 하지 못하는 비범인이지 않느냐는 조바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 집필에서 카프카를 떠올린다. 카프카 역시 신이 사라진 이 시대에서 주체적 진리를 창조한 인물로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문학의 세계는 ‘선취득권’이 인정되어야 하는 세계로서, 카프카와 같은 세계는 자신이 만들 수도 없으며 만들더라도 자신은 아류에 불과하다는 한계에 부닥친다. 마지막으로 드라큘라가 있다. 드라큘라는 마치 『악령』의 키릴로프처럼 스스로가 신이 되고자 한 인물로 규정한다. 자신의 행동이 곧 법이며 윤리라는 주체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드라큘라는 기독교의 역전이자 가족주의의 역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식민성과 자아 의탁은 작품 말미로, 그리고 현실로 나오며 깨어진다. 우선 극 초반의 김학과 독고준의 문제의식은 앞서 말한 김학과 그의 주변 인물의 사유로 반박된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린 적 없느냐는 문제의식은 현실에서 해결됐다. 이 작품이 쓰이고 반세기 동안의 숱한 희생과 투쟁 속에서 결국 민주주의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 독고준의 처량한 자아 의탁 역시 그의 처절한 사유의 끝에서 해결된다. “유다나 드라큘라의 이름이 아니고 너의 이름으로 하라. 파우스트를 끌어대지 말고 너 독고준의 이름으로 서명하라.” 그의 에고는 서양의 것을 따지 않고,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재정립되었다.


독고준의 서양 문화와 문학을 따오는 행위에는 오로지 공간성밖에 없다. 그 캐릭터들은 보편적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수백 년이 흘러도 여전히 주체적 도덕을 가진 신화와 같은 인물일 것이다. 드라큘라는 수백 년이 흘러도 여전히 스스로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반항적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독고준은 이 우상들을 버렸다.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하고, 현실을 향하여 문을 열었다. 이 말은 그가 시간을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현실은 시간성과 동시대성을 의미한다. 그는 자폐적 사유와 끝없는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로 뛰어들었다.


작품 초반, 김학과 독고준의 토론에서 김학이 혁명을 우리 사회의 해결책으로 제시했을 때, 독고준은 ‘사랑과 시간’을 우리 사회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식민지는 무한한 수요와 공급의 원천인데, 이에 버금가는 무한한 자원이 바로 사랑과 시간이라는 말이다. 최인훈이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닌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정서적 해결책이다. 독고준이 월남하며 겪은 일 중에는 이런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아직 어린 그가 시내로 가기 위해 군용 트럭에 탔을 때, 같이 탄 국군이 논에 거꾸러진 채 죽은 북한군을 향해 사과를 던지며 조롱했다. 군가를 부르던 국군들 사이에서 어린 독고준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웃었다. 이데올로기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생명의 존엄성이야 무의미해진다. 이런 냉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은 멀다. 작품이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폭력과 극단주의가 그럴지언정 우리는 사랑을 위해 부단히도 싸워야 한다. 비겁을 거부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며, 재정립된 그의 에고와 우리 사회는 언젠가 만날 사랑을 위하여 인내하며 시간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3. 결론

이로써 서론에서 예고했던 대로, 독고준의 에고가 자기 정립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하여 ‘사랑과 시간’이 도출되는 흐름을 살펴보았다. 한국이 지닌 식민성과 문화적 한계, 신화의 부재 등의 지적과, 여기에서 이어지는 ‘뿌리 찾기’와 사대주의, 그리고 기성 윤리의 제거가 이루어짐으로써 우리의 에고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근현대사의 수많은 신화적 사건들과 식민성 제거에의 노력, 그리고 현대의 놀라운 문화적 성과가 이루어지며 어찌 되었든 한국인의 정신은 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렇듯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개선되었음에도 우리의 정신은 한없이 빈곤하기만 하다. 이데올로기 투쟁도 극단화도, 멈추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사망이나 국가적 재난은 그저 정치권의 이권을 위하여 이용당하기만 하는 오늘이다. 그는 틀렸는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우리의 의식은 무수한 정립과 반정립 사이에서 투쟁하는 중이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텍스트란 인식과 해석 자체라고 말했다. 저자는 죽었고,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의식이 그만큼 변화했으니 텍스트도 고리타분한 것으로서 단순한 역사로서만 기능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바르트가 말했듯 텍스트는 귀속에서 풀려나 다시 인식되어야 한다. 텍스트는 고정된 메시지가 아닌, 읽는 이가 새롭게 구성하는 언어이다. 문학은 독자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의식적 투쟁과 자기 정립의 서사는 여전히 유효하고, 다만 우리에게 알맞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에는 여전히 수많은 문제와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죽었다. 위대한 정신은 이미 떠나갔다. 이제 사유는 우리의 문제다. 그가 명준을 잠수부로서 내려보내고 독고준의 정신을 성장시켰듯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잠수하고 우리의 정신으로 사유해야 한다. 여지껏 우리의 주변에 남아있던 천박하고 구시대적인 가치로부터 벗어나 다시금 에고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순간이다. 모든 시대가 그러하였듯 우리의 시대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인훈이 제시한 ‘사랑과 시간’이라는 메시지는 우리의 정신 속 풍화침식 없는 영원한 모뉴먼트로서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멋모르고 국문학 수업을 들었다가 큰 피를 봤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교수님이 수업에서 이끌어내고자 하는 방향이 너무 달라서 이도저도 안 됐다. 상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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