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고대철학도 요즘에 와서는 많이 주목받는 것 같다. 특히 자기 계발서 쪽으로 스토아 열풍이 확 분 시기가 있었던 걸로 안다. 그만큼 고전의 힘이란 어마무시한 것이다.
1) 쾌락주의
그는 물리학에서 신에 대한 관념을 제거했다. 이는 원자론자들의 영향으로, 신은 없거나, 있어도 물리학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은 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신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정은 선악의 척도이며, 이러한 감정은 쾌락을 추구하므로 쾌락은 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쾌락이 섹스나 과식 이딴 거는 아니고 마음의 평정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들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시민사회의 기능은 고통을 주는 자를 막는 것이다.
2) 스토아주의
우리는 삶을 통제할 수 없고, 그저 자세만 조정 가능할 뿐이다. 세계는 질서대로 흐르며 신이 질서를 통제한다. 따라서 사건을 피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외부 대상이 사유를 만들며 사유는 단어에 담긴다. 따라서 사유는 감관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물질이 아닌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계에 존재하는 능동적 힘은 불이다. 신은 만물에 내재하며, 그 자체에 이성의 원리가 있다. 모든 사물은 배열된 그대로 행위한다. 즉, 숙명론이다. 모든 사물과 사람들은 로고스, 즉 신의 통제 하에 있다. 신은 인간에도 내재하며 따라서 영혼은 이성에 뿌리를 둔다. 자연과 질서에 인간 본성은 참여한다. 인간은 배우일 뿐이고, 결정은 신이 한다. 따라서 우리는 태도와 감정만 통제할 수 있으므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생에 무관심해져야 한다. 그래도 태도만은 우리의 통제에 달려있으므로 좋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지식에 따라 행동하며, 묵묵히 따르면 행복하다. 운명이라는 같은 공동체 안에 우리는 세계시민이다. 따라서 같은 이성과 정의를 공유하고 절제와 행복, 이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메멘토 모리. 불가능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세네카의 경우는 돈이 들어오는 걸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대부분 아우렐리우스와 세네카를 참조해서 헬레니즘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거시기하기는 한데 귀찮아서 걍 뭉뚱그렸다. 헬레니즘 시기에 생긴 거는 맞으니께. 또, 스토아라는 이름은 아테네의 회랑으로, 일반 시민들에게도 많이 열려있는 학파였다.
3) 회의주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독단론자다. 진리는 절대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묵묵히 탐구해야 한다. 회의주의자는 묵묵히 탐구하는 자들이다. 그렇다고 형상이나 경험을 부정하진 않는다. ‘설명’이 문제다. 지식은 감관에 기초하는데, 감관은 기만적이므로 진실은 알 수 없다. 도덕률은 속견인지라 절대적인 참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성 없이도 도덕률은 가능하며 추론과 개연성 만으로도 분별 있는 삶이 가능하다. 이들은 훗날 몽테뉴나 데카르트 등에게도 영향을 준다.
4) 견유학파
이들은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도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한 디오게네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덕이란 지식이 아닌 생활태도였으며 부끄러움 역시 사회가 주입한 인위적 감정이다. 이들 역시 세계시민주의였다. 아무래도 국가같은 것에 얽매일 사람들은 아니니까.
읽은 책
새뮤얼 이녹 스텀프,『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열린책들 (200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현대지성 (2018)
세네카,『세네카의 행복론』, 메이트북스 (2019)
세네카,『세네카의 인생론』, 메이트북스 (2019)
세네카,『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메이트북스 (2019)
세네카,『세네카 희곡선』, 범우사 (2015)
에피쿠로스,『쾌락』, 현대지성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