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6. 르네 데카르트

by 박제원

데카르트의 의의는 서양 사상의 흐름에서 인식의 대상을 사유의 주체, 즉 자기 자신에게로 돌린 데 있다. 이데아를 찾은 플라톤, 제일원리를 찾은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신의 존재에 참척해 있던 숱한 중세 철학자들의 경우 진리의 중심에는 늘 다른 존재가 있었다. 그러나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 코기토를 제안하고, 나아가 기계론적 세계관을 주창함으로써 세계의 중심을 우리에게로 돌리고 자연을 정복 가능한 대상으로 돌려놓은 것에 그의 업적이 있다.


1. 코기토

그는 벽난로에서 어떤 꿈을 꾼 이후 감각에 대한 불신과 악신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된다. 물론 감각에 대한 불신과 회의주의를 데카르트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고, 섹스투스와 피론의 회의주의 주장 이후 몽테뉴의 등장이나 종교 전쟁으로 인한 진리에 대한 회의 등 그의 시대는 회의주의가 만연해 있던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회의주의에서 멈추지 않고 회의에 대한 회의를 행함으로써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이른바 '방법론적 회의'이다.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기본적으로 감각은 믿을 수 없다. 이미 경험적으로도 감각의 오류는 많이들 경험한 바가 있다. 또한, 우리의 활동과 육체가 진실인지도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무척 생생한 꿈은 결코 현실과 구별할 수 없다. 나아가서, 명증한 듯 보였던 수학적 진리, 혹은 기하학적 증명들 역시 믿을 수 없다. 사악한 악신이 존재하여 우리를 기만하였을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이렇게 우리를 의심시키는 것들과 감각을 모두 버리더라도, 세상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고 회의하더라도 끝까지 버릴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바로 내가 지금 사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내 존재의 증거다.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


2. 형이상학

이로서 사유에서 존재가 나옴을, 사유가 곧 본질이며 실체인 점을 논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유가 질료 없는 현실태라고 논증한 바 있지만 그것을 더 주체의 위치로까지 가져온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의심 역시 인식의 한 종류일 뿐이기에 인식이 의심보다 더 큰 완전성을 지닌다. 아무튼 사유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분할되지 않는다. 다만 상상은 앎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정신을 종합하는 판단능력이다. 사유와 관념은 신체와 별도로 현존할 수 있다. 사유의 오류는 신의 기만이나 순수한 부정이 아닌 결여의 형태다. 또한 관념 내부에서도 의지의 자유가 가장 큰 관념이다. 의지란 너무 넓어서 간혹 지성의 바깥에까지 빠져나가 버리고는 하는데, 이것이 오류의 원인이다. 지성은 유한한 것이며 지성 외연 밖 의지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반면 우리가 앞서 의심한 감각들과 물체들은 연장실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들은 말 그대로 공간을 차지할 만큼 연장되어 있기에 그런 이름을 가지는 것이다. 앞서 방법론적 회의에서 이것들의 존재를 의심한 바 있다. 하지만 일단 그것들의 감각이 사유실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종종 우리를 속이므로 신에게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신이 선하다는 것은 기본 가정으로 깔고 가야 한다.) 감각은 참을 더 많이 지시하며, 상상은 외부를 지향하기 때문에, 외부의 존재가 있음은, 물체적 사물이 현존함은 명석판명하다. 이것들은 길이, 너비, 속성 등의 '양태'를 가진다. 양태는 본질이 아닌, 주관적인 것이다. 따라서 연장 실체에는 목적이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조작될 수 있는 양태 만이 있으므로 기술 및 정복이 가능한 대상이다. 이것들은 신의 본성이 불어넣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에게 의존한다.


감각기관에 대한 물체의 작용은 '송과선'이라는 두뇌 속의 특정 부위의 자극으로 하여금 이루어진다. 정신과 육체라는, 이원적으로 구성된 인식기관을 연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3. 신 존재 논증

사유 실체는 완전한 것을 향하지만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완전한 것을 향하게 된다. 이때, 완전한 것에 대한 관념은 무에서 나올 수 없으므로 신에게서 불어넣어 진 것이다. 즉, 나는 나보다 더 완전한 것에 대한 관념을 신에게서 분유하고 있다. 이 관념은 나보다 더 완전하다.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관념이기에, 우리의 관념이 명석판명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모두 참이다. 기만은 불완전한 것이기에 신이 기만을 행할 리는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신은 선한 존재다.


우리는 사물을 파악할 때 두 가지의 관념을 갖는다. 하나는 질료적 관념, 하나는 표상적 관념인데, 이때 후자의 것이 더 많은 표상적 실재성을 내부에 지닌다. 더 실재적인 것이 덜 완전한 것에서 생길 수는 없고, 원인이 더 실재적이고 완전한 것임은 명석판명한 것이므로, 관념의 원인이 관념보다 더 실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물질이 이 관념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원인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최초의 원인과 최초의 관념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모든 실재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최고 완전 무한 존재자인 신이다. 신은 오로지 현실태다. 신은 그 자체로 완전하므로 가능적이지 않다. 따라서 내 정신이 증대되어 무한에 도달할 수는 없다.


또한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그 사유능력과 완전성이 내게서 비롯됐다면 내가 바로 신이었을 것이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다른 존재에서 나오며 나는 다른 존재에 의존한다. 이 궁극원인은 신이다. 이 존재는 분리 불가능하며, 신에 대한 관념은 나에게 본유적인 것이다.


<성찰>의 신은 <성서>의 신과는 다른 성격을 띈다고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사실 신학이 아닌 철학 일반에서의 신들이 으레 그렇다. 데카르트의 신은 그저 사유의 진리성을 보장하는 존재로서, 구원이나 징벌을 행하지는 않는다. 즉 회의주의의 극복을 위하여 동원된 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4. 기계론적 자연

이때까지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자연관이 지배적이었다. 작용인, 운동인, 형상인, 목적인 등등의 원인 중 목적인이 자연 현상의 주된 원인이어서, 가령 씨앗은 나무로 자라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돌은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기 위하여 떨어지고 침식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텔로스를 향하여 변화한다.


이런 자연관을 데카르트가 반박했다. 자연의 속성을 모두 주관적 양태로 제거하였기 때문에 연장에는 목적과 의미가 사라졌다. 목적과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신에게 귀속된 것이지만, 연장은 그저 분석하고 정복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하다. 자연은 기계처럼 형태와 위치, 운동 등으로 정교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법칙은 신이 설계한 것이라고 보기는 했지만 아무튼 물질세계의 위치가 격하되었다. 반면 사유와 정신을 가진 인간은 자연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자연의 질서로서 편입되는 것이 아닌, 관찰하고 정복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동물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데카르트는 동물에게는 정신과 사유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본질은 생명이 아닌 사유에 있다. 그렇기에 동물은 복잡하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자동기계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5. 여담

나는 개인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을 그리 선호하진 않는다. 철학책에 수학을 마구 끼워 넣는 거야 그리스 적부터 그랬으니 상관없다만, 그의 논증이 불완전하다고 느껴진다. 신의 존재를 명석판명한 관념에서 도출해 놓고, 명석판명한 관념이 완전한 이유를 신의 존재에서 도출하는 순환논증이나, 자연과 동물의 위치를 격하한 점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의 피조물이기에 이성은 틀릴 수 없다는 말은, 곧, 신보다 열등한 것이기에 틀릴 수 있음을 함의하지만 그 점 역시 간과했다. 또한 교활한 정령 가설을 비일관적으로 적용하는 듯한 인상(이건 아무래도 데카르트 본인의 생각 변화가 큰 듯하다.)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그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애증에 가깝다. 서양철학사를 읽으며 소름 돋는 경험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부분을 읽으며 그러하였고, 또 한 번은 칸트 파트를 읽기 전에 데카르트가 코기토를 논증해 내는 부분에서 그러하였다. 철학을 읽으며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든 철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철학, 특히 코기토는 애정이 간다. 내가 뭐라도 되냐마는.


읽은 책

새뮤얼 이녹 스텀프,『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열린책들 (2008)

몽테뉴, 『수상록』, 집문당 (1989)

데카르트, 『방법서설』, 문예출판사 (2022)

데카르트,『제일 철학에 관한 성찰』, 문예출판사 (2022)

톰 소렐,『데카르트』, 시공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