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까르보나라 만드는 방법과 ‘아는 척’ 하기 좋은 이야기
“요즘 신혼여행 트렌드는 유럽이야. <꽃보다 할배> 때문에 그리스도 조금 뜬 것 같은데, 아무래도 유럽으로 갈 거면 프랑스나 스페인, 아니면 이탈리아 중에서 고르는 것이 좋을 거야.”
결혼을 앞둔 2015년 어느 봄날, 고향집에서 만난 둘째 동생이 해준 신혼여행 조언이다. 그때 동생은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해 갓난쟁이 아들도 하나 봤을 때였다.
“그리고, 어디를 가느냐보다 형수한테 왜 그곳을 가고 싶은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해. 이게 훨씬 중요해.”
그때도 지금도 신혼여행은 단 한 번만 다녀온 동생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소를 ‘추천’할 때는 심드렁했는데, 그곳을 가는 이유가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때까지 해외 경험은 대만 출장 한 번이 전부였다. 여행은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간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 나에게 신혼여행으로 가고 싶은 곳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래도 찾아야 했다. 내가 맡은 결혼 준비는 없었고, 유일하게 신혼여행지를 정하라는 부탁만 받았다.
나는 이 숙제를 잘해야 했다. ‘그곳을 가고 싶은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신혼여행’을 검색했다. 신혼여행 후기만 보였다. ‘신행’이 신혼여행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에서는 신혼여행을 그곳으로 가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당연했다. ‘장소’를 정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며칠을 더 고민했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탈리아에 가자.”
“왜 이탈리아야?”
역시, 이유가 중요했다.
“내가 피자를 좋아하니까 본토 피자를 먹어봐야겠어, 1일 1 피자를 하러 이탈리아에 다녀오자. 스파게티도 먹고.”
그럴 듯 한 이유를 찾으려고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빈약했다. 고민을 거듭해 만든 이유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다. 지금도 궁금하다. 왜 이탈리아 신혼여행을 동의했을까. 시간을 더 준다고 해도 그럴 듯 한 이유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였을 것 같다. ‘시간 없으니까 이제 그만 가져와’와 같은 느낌 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피자와 생햄을 먹었다. 스파게티는 여러 종류를 먹었는데, 어떤 스파게티를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무엇인가를 먹긴 먹었는데 무엇을 먹어야 할지 잘 몰랐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바로 다음 해(2016년)와 작년(2019년) 이탈리아에 또 다녀왔다. 세 번 정도 가보니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지 간신히 아는 정도가 된 것 같다. 그러다 작년 로마에서 까르보나라를 ‘처음!’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두 번째 까르보나라를 먹었다. ‘정통 까르보나라’는 한국 남자는 못 먹는 음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맛있었다.
결혼식을 마친 다음 날 밤늦게 이탈리아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었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생햄이 보였다.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를 그냥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했다. 그래도 시간과 돈을 들여 비행기까지 타고 온만큼 눈에 보이는 음식은 다 먹어보자는 마음으로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그래도 어떤 것은 식감이 질겨 넘길 수가 없어서 뱉어내야만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옮긴 호텔에서도 계속 햄이 보였다. 동그랗고 색이 진하면서 지방 같아 보이는 하얀 패턴이 불규칙하게 박힌 햄이 가장 입에 맞았다. 살라미였다. 다른 하나는 얇게 저민 검붉은 색을 띤 생돼지고기였다. 이 녀석은 조금 복잡한 이름의 피자에도 얹어져 나왔고 샌드위치(파니니) 속에도 담겨 나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리가 젓갈 담가 먹듯이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본전 생각나서 먹기 시작한 생햄이 어느 순간 입에 감기기 시작했다. 조식 뷔페에서 보이는 대로 접시에 담았고 피자 위 토핑도 먹었다. 생햄은 모양과 색에 따라 맛과 향이 조금씩 달랐다.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동안 살코기는 멋진 음식으로 탈바꿈한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염장한 이유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소금 자체에는 방부 기능이 없다. 소금은 고기 표면과 고기 속의 수분을 제거한다. 미생물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분을 없애 부패를 막아 주는 동시에 근섬유의 구조를 바꿔 쉽게 씹을 수 있도록 질감을 개선해 준다. 여기에 고기가 숙성되는 과정 중에 여러 효소들이 단백질을 페티드와 아미노산으로 분해한다. 여러 달에 걸쳐 고기 단백질의 1/3 이상이 맛 분자로 바뀐다. 우유가 치즈가 되듯이 생고기가 복합적인 맛을 내는 햄으로 변신한다. 소금과 효소, 시간이 힘을 합쳐 색다른 맛을 빚어낸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생소한 부위도 염장해서 먹는다. 돼지 볼살을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한 후에 숙성시킨 관찰레(guanciale)가 대표적이다. 관찰레는 이탈리아 요리 재료로 많이 쓰인다. ‘정통 까르보나라’의 소스는 뻑뻑하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먹은 까르보나라도 그랬는데, 작은 고기 조각이 씹혔다. 상당히 짰다. 베이컨이 아니라 관찰레였다(그때는 몰랐다). 씹으면 고소한 맛이 퍼지면서 입 안에 그득 침이 고였다. 그래서 뻑뻑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고기 향은 지방이 결정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고기 맛’, ‘돼지 맛’, ‘오리 맛’은 지방의 역할이다. 양고기나 염소고기가 어색한 이유는 지방이 풍기는 향과 맛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까르보나라에서 만난 고소함은 돼지 지방의 고소함이었다. 관찰레는 미국식 베이컨과 달리 훈연을 하지 않아 지방 원래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느끼하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에 지방을 피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남의 살’이 맛있는 이유는 지방 때문이다. 음식을 자주 하고 나서부터 지방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베이컨과 관찰레를 두고 잠깐 고민했다. 쇼핑몰 사진에서 본 관찰레는 80% 이상, 아니 대부분 지방이었다. 씹을 만한 것이 있을까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결국 관찰레를 선택했다. 관찰레는 훈연을 하지 않았고 이탈리아식 염장 돼지고기 아닌가. 이탈리아 본토 까르보나라 맛을 내는데 더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사실 차분하게 생각하고 조그만 알아보면 지방을 혐오할 이유는 별로 없는데, 지방을 먹을 때면 여전히 약간의 죄의식을 느낀다.
까르보나라의 또 다른 재료인 치즈는 염장 고기와 비슷하다. 인류는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소금을 쳤다. 그리고 젖이 많이 생산되는 시기의 남는 젖을 보존하기 위해 치즈를 만들었다. 수분을 제거하고 농축해 단백질과 지방이 남은 젖(커드)에 소금과 산을 첨가하면 치즈로 만들어 젖의 영양을 보관할 수 있었다. 소금을 친 돼지고기는 향이 복잡해지고 씹는 맛이 좋아진다. 농축한 젖의 변형인 치즈도 소금과 미생물의 노력에 시간이 더해지면서 맛과 향이 다채로와진다.
치즈는 농축한 젖이다. 따라서 치즈의 성질은 젖의 특징을 따라가게 된다. 젖은 소·양·염소 등 젖을 만든 동물의 종류, 품종, 동물이 먹은 먹이, 젖 속에 사는 미생물 등에 따라 그 특징이 결정된다. 소와 양, 염소의 젖은 서로 맛이 다르다. 그래서 치즈 맛도 다르다. 이탈리아 식당에 가면 ‘버펄로 모차렐라’를 강조하는 메뉴판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 식당은 홀스타인 소젖보다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물소젖으로 만든 모차렐라 치즈를 사용한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까르보나라의 재료 중 하나인 페코리노 로마노는 양젖으로 만든다. 양젖도 물소젖처럼 홀스타인 젖소에서 얻은 우유(지방 3.6%, 단백질 3.4%)보다 지방과 단백질이 두 배 정도 풍부하다(지방 7.5%, 단백질 6.0%). 그래서 우유로 만든 치즈보다 농후한 맛을 낸다.
페코리노 로마노는 역사가 오랜 치즈에 속하는데 1세기 문서에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라는 이야기도 있다. ‘페코리노’는 양젖으로 만든 치즈를, ‘로마노’는 로마 또는 로마 근교에서 생산되었다는 의미다(지금은 주로 샤르디나 섬에서 생산한다). 페코리노 로마노는 풍미가 강한, 톡 쏘는 짠맛과 감칠맛이 특징이다. 소금 비중이 5퍼센트에 달한다. 냉장 설비가 없는 옛날에는 소금을 듬뿍 쳐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옛날에 비해 짠맛이 상당히 순해졌다. 감칠맛은 8개월에서 12개월 정도 숙성시키는 동안 양젖의 풍부한 단백질 성분이 감칠맛 성분으로 바뀌기 때문에 얻는 맛이다. 까르보나라를 만들 때는 페코리노 로마노를 강판에 갈아 달걀노른자에 잘 섞어서 사용한다. 짠맛과 감칠맛이 ‘음식 맛을 알맞게 맞추는 데에 쓰는 재료’라는 국어사전에 쓰인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은 ‘이탈리아에는 까르보나라가 없다’고 썼다. 그가 로마에 있을 때 방문한 한국 친구들이 호기롭게 까르보나라를 시키고 반도 먹지 못하고 포크를 놓아야 했단다. 한국에서 먹어본 달큼하고 적당히 느끼한 ‘크림’ 까르보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크림소스 대신 달걀을 비빈 까르보나라를 즐긴다. 관찰레를 볶아 흘러나온 기름에 파스타 삶은 물(면수)을 조금 넣고 불을 끄거나 아주 약한 불에서 페코리노 로마노를 푼 달걀노른자를 잘 저은 후 다시 치즈를 뿌린다. 그리고 후추를 뿌린다. 흥건한 소스가 아니라 면에 살짝 발라먹는 정도다. 그래서 뻑뻑하다. ‘이탈리아 달걀노른자 비빔국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날달걀을 비벼먹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돼지기름과 면수를 섞은 후 불을 끄거나 약한 불에 달걀노른자를 섞어주는데, 온도가 중요하다. 온도가 높으면 넣자마자 스크램블 에그가 되어 버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날댤걀 비빔국수가 될 수 있다. 달걀노른자를 넣어야 할 때를 가늠하기 어려워 요리법을 찾아봤는데 ‘몇 분 후에 넣으라’라는 설명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요리할 때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딱 집어서 알려주기 어렵다. 여러 번 만들어 보면서 감으로 익혀야 한다. 그런데 처음 한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달걀노른자의 단백질은 65℃에서 걸쭉해지기 시작해서 70℃에서 굳는다. 노른자와 흰자를 섞은 것은 73℃에서 굳는다. 온도계로 온도를 재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오’는 좀 빠질 수 있어도 음식 전체를 망치는 것보다는 낫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선한 달걀이 좋다. 달걀을 구입할 때 산란일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건강하고 산란기 끝이 임박하지 않은 나이 들지 않은 암탉이 좋은 달걀을 낳는다. 생산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한살림과 같은 생협 달걀이 가격도 비싸지 않고 좋다.
이제 파스타를 삶자. 1인분을 하더라도 가장 큰 냄비를 꺼내자. 파스타를 삶을 때 필요한 물의 양은 파스타 무게의 10배 정도로 보면 된다. 물이 충분해야 삶는 과정에서 물속으로 빠져나가는 전분을 희석하고, 파스타 가락이 서로 엉겨 붙지 않고 고르게 익힐 수 있다. 파스타 면은 삶아질 때 무게의 1.6~1.8배의 수분을 흡수한다. 냄비에 물을 충분히 붓고 물이 힘차게 끓으면 소금을 먼저 넣는다. 파스타를 넣은 후에는 잘 휘저어 파스타가 물에 충분히 잠겨야 한다. 그리고 파스타 삶은 물(면수)은 버리지 말고 남겨둬야 한다.
소금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 파스타 양의 1/10 정도를 넣는다. 파스타 100그램을 삶으려면 물 1리터가 필요하고, 소금도 10그램을 넣는 것이 좋다. ‘바다소금’을 넣으라고 하는데, 천일염을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삶은 파스타는 체에 걸러 물기만 제거해 둔다. 국수 소면처럼 차가운 물로 헹구어서는 안 된다. 찬물로 헹구면 파스타의 전분기를 씻어버려 소스가 잘 달라붙지도 않고 맛을 망친다.
관찰레를 구워 돼지기름을 뽑아낸 후 적당량을 남긴 후에 면수를 부어준다. 면수가 어느 정도 졸아들면 삶은 파스타를 넣고 센 불에 잘 볶아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는 섞이지 않는 물(면수)과 기름이 섞이게 된다. 이를 유화(에멀전)라고 한다. 요리에서 유화는 한 액체의 아주 작은 방울이 다른 액체의 작은 방울 사이사이로 분산되어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크리미 한 혼합물이 만들어진 상태를 말한다.
사민 노스랏은 유화를 “지방과 물 사이의 잠정적인 평화 조약 체결”로 비유했다. 돼지기름과 파스타 삶은 물을 평화롭게 결합시키는 중재자 역할은 삶아지면서 파스타가 뱉어낸 전분이 담당한다. 그래서 삶은 파스타를 찬물에 헹궈내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과 기름이 섞여 크리미 한 상태가 되면 팬을 식힌 후 달걀노른자를 넣은 후 휘젓는다. 면수와 돼지기름이 잘 섞인 상태라면 파스타 가락에 달걀노른자를 제대로 입힐 수 있다.
노른자를 예쁘게 입은 파스타를 접시에 옮겨 닮은 후 페코리노 로마노와 검정 후추를 갈아서 뿌려준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예쁜 사진을 찍을 생각이라면 후추를 지저분하게 뿌려 접시를 더럽히자. 까르보나라에 뿌리는 검정 후추가 석탄가루를 의미한다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까르보나라가 탄광 광부들의 도시락이었다고도 하고, 광부들이 간단하게 해 먹던 요리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드는 방법: https://youtu.be/93_uDwr0sHA
참고자료
해럴드 맥기, 2017, 『음식과 요리-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이데아
사민 노스랏, 2020, 『소금 지방 산 열 -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네 가지 요소』, 세미콜론
박찬일, 2016,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한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