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절반은 맛이고, 맛의 대부분은 냄새다
웰컴 티라미수
2019년 가을 아내와 피렌체에 갔다. 피렌체 역에 도착한 후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역에서 가까웠다. 가는 길에 아내가 한국 사람들이 남긴 후기를 보니 주인 할머니가 무척 깔끔하다며 캐리어 청소를 한 다음에야 입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숙소 정원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주인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진공청소기로 캐리어, 그리고 캐리어 바퀴에 달라붙은 먼지를 꼼꼼하게 빨아들였다. 나는 캐리어 청소를 한다는 말에 걸레로 바퀴를 닦아주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에어컨 사용법을 알려줬다. 복층에 딸린 싱크대 구석구석을 열고 조리도구의 위치와 하이라이트 사용법도 알려줬다. 세탁기 사용법과 함께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놓아둔 자리와 화장실과 샤워부스 사용법까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숙소 사용법 안내를 마친 할머니는 갑자기 피렌체 관광지도를 펼치고 볼펜을 잡았다. 유명한 식당, 그리고 본인 생각에 피렌체에 왔다면 꼭 가봐야 할 식당과 카페와 디저트 가게를 볼펜으로 표시했다. 그런 후에 설명을 시작했다. ‘이 할머니는 피렌체 관광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을 한 다음에 에어비앤비를 하는 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유명하지만 당신 입맛에 만족스럽지 않은 곳은 ‘별로’라는 평가도 곁들였다. ‘별로’인 곳은 반드시 가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열심히 설명을 마친 할머니는 다시 작은 냉장고로 우리를 이끌었다. 냉장고에 생수를 넣어두었다면서, 묵는 동안 마실 생수를 살 수 있는 근처 슈퍼마켓 위치를 알려줬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납작한 원형 플라스틱 식기를 꺼내며 말했다.
“내가 만든 거예요. 피렌체에 온 걸 다시 한번 환영해요.”
티라미수였다. 이탈리아 피렌체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만든 티라미수. 그때 알았다. ‘티라미수를 집에서 만들 수도 있구나.’ 하긴 우리 엄마도 어릴 때 생일이면 집에서 팥시루떡을 만들어 줬다. 장모님은 집에서 약과도 만들고, 생강 편강도 만든다. 집에서 곱창을 구워준 적도 있다. 이것과 뭐가 다를까.
추억의 절반은 맛이고, 맛의 대부분은 냄새다.
티라미수를 선물 받았는데, 사실 피렌체 도착 즈음에 배탈이 났다. 그래서 바로 먹지 못했다. 이틀 째였나, 티라미수를 꺼내 먹었다. 전에 먹어봤던 티라미수에서는 느끼지 못한 독특한 냄새를 맡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몇 번 티라미수를 먹긴 했지만, 그때 그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티라미수를 만들면서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냄새의 주인공은 마스카포네 치즈였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사실 맛의 대부분은 냄새다. 맛을 느끼는 감각은 몇 가지 없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과 감칠맛이 전부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아주 작은 식감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면, 고기 맛은 품고 있는 지방의 냄새가 가른다. 별다방과 콩다방의 커피 ‘맛’이 다르기보다는 ‘향’이 다른 것이다. 사람과 동물에게 ‘후각’은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감각이다. 지금의 인류에게는 많이 퇴화한 능력이지만, 공기 속에 떠도는 냄새 분자를 탐지해 위험을 감지했다. 신체안전의 영역에서는 특정 감각을 느꼈을 때 과거의 동일했던 경험을 바로 떠올려 본능적으로 재빠르게 판단하게 하는, 경험이라는 학습이 중요하다. 즉, 어떤 냄새를 맡거나 맛을 느끼면 특정한 기억을 몸이 바로 기억해내야 한다. 위험하면 바로 뱉어 낼 수 있어야 안전할 수 있다. 그래서 꼭 찍어 먹지 않아도 냄새만으로도, 딱 보기만 해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다시 말해 맛의 대부분인 냄새를 맡으면 특별한 기억이 떠오르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인류는 냄새를 맡으면서 안전을 판단하는 한편으로, 추억을 떠올리는 감성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그런데 두 번째로 티라미수를 만들었을 때 추억이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 ‘피렌체 웰컴 티라미수’를 만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냄새’를 거의 맡지 못해서였다. 두 가지가 처음과 달랐다. 하나는 마스카포네 치즈에 머랭 대신 휘프트 크림을 섞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스카포네 치즈의 브랜드가 달랐다. 똑같은 티라미수를 만들었는데, 추억을 부르는 냄새가 옅어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추억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꾸준하게 추억을 만나기 위해서는 티라미수를 또 만들어야 했다.
첫 티라미수를 만들 때 사용한 ‘밀라 mila’와 두 번째 티라미수 재료였던 ‘앰브로시 Ambrosi’를 모두 준비했다. 함께 맛을 보니 차이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밀라의 색이 살짝 더 노란빛이 돌았다. 그리고 피렌체 할머니의 티라미수에서 느낀 냄새를 밀라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맛과 냄새가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은 영양성분을 확인하고서 이해했다. 두 치즈의 지방 성분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차이가 났다. 밀라는 짠맛이 적었고, 단 맛이 있었다. 처음 느꼈던 특별한 냄새는 당류가 만들어내는 고소한 냄새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치즈의 원료가 된 우유를 만들어 낸 젖소도, 젖소들이 자라는 환경과 먹이도 다를 텐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 아닌가. 물론, 이러한 차이보다는 치즈를 만든 사람(회사)의 노하우가 훨씬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치즈를 비교한 다음에 생각했다. 나는 파란색 통에 든 밀라의 마스카포네 치즈를 더 좋아하는구나. 피렌체에서 맛본 티라미수는 나에게 좋은 냄새와 맛을 선물했고, 나는 좋았던 추억을 나도 모르게 온몸 구석구석 기억으로 남겼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고, 맛의 대부분은 냄새인데 냄새는 꽤나 강력하게 몸에 흔적을 남긴다.
달걀이나 우유에서 얻은 거품을 섞는다
코코아 가루 밑에 깔려있는 티라미수의 크림은 마스카포네 치즈와 거품을 섞어서 만든다. 거품은 달걀흰자로 만들 수도 있고, 달걀흰자로 만든 거품에 노른자 거품을 섞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우유 크림을 열심히 저어서 만든 생크림(휘프트 크림)을 섞을 수도 있다.
달걀흰자로 낸 거품을 머랭이라고 한다. 머랭을 칠 때 설탕을 넣으면 연약한 거품이 안정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설탕을 넣으면 오히려 설탕이 거품 생성을 방해한다고 한다. 그런데 믹서로 돌리면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좋아하는 질감에 따라 설탕 넣는 시기를 정하면 된다. 설탕을 일찍 넣으면 머랭의 질감이 더 탄탄하고 섬세하고, 젓기가 끝난 뒤에 설탕을 넣어 섞으면 질감이 말랑말랑해진다고 한다. 설탕을 언제 넣더라도 손으로 젓는 것보다 핸드믹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힘들어서 그렇다.
크림은 우유에서 지방성분을 분리해 낸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중력과 기다림(12~24시간)으로 얻었다. 19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개발한 원심분리기로 대체했다. 크림은 지방 비중이 30~40퍼센트 정도다. 크림으로 거품을 만들 때는 휘젓는 동안 크림을 차가운 상태에 두어야 좋다. 온도가 약간만 올라가도 거품의 유지방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림을 만들기 전에 냉장고에서 미리 12시간 정도 ‘숙성’시키는 것이 좋다. 크림거품을 만들 때도 핸드믹서를 사용하면 좋다.
거품을 낸 다음에는 마스카포네 치즈를 살살 섞어줘야 한다. 크림거품은 지방이, 머랭은 단백질 거품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맛과 혀에 감기는 느낌에도 영향을 미친다. 크림거품은 되직하고 머랭은 거품의 구조가 약하고 부드럽다. 그리고 만들어내는 티라미수의 양에도 영향을 미친다. 크림거품은 구조가 튼튼해 부피가 크게 줄어들지 않지만, 머랭은 섞이면서 거품이 꺼지고 부피가 줄어든다. 그리고 크림거품은 상대적으로 머랭 거품보다 되직하다.
마지막으로 레이디 핑거를 에스프레소에 적신 후 통에 담고 마스카포네 치즈로 만든 크림을 얹어주면 된다. 머랭이든 생크림이든 섞은 후에는 바로 먹기보다는 냉장고에 몇 시간을 놔둔 후에 먹으면 맛이 훨씬 좋아진다. 냉장고에 두고 기다리는 동안 머랭을 섞었을 때 날 수도 있는 달걀 비린내를 잡아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냉장고에 두고 몇 시간 또는 하루 정도 기다렸다가 먹기 전에 코코아 가루를 뿌리자. 코코아와 마스카포네 치즈는 상당히 잘 어울린다. 티라미수는 커피와도 잘 어울리는데, 아메리카노보다 에스프레소가 훨씬 좋다.
만드는 법
참고자료
해럴드 맥기, 2017, 『음식과 요리-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이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