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그동안 전 세계적인 생활 수준의 향상을 가져온 강력한 동력 중의 하나였다. 경제학계는 지금껏 공공정책의 많은 현안에서 의견이 갈렸어도 세계화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세계화를 두둔하는 경제학자들의 조언은 이제 대중의 신임을 잃었다.
내가 몸담은 직업적 경제학자 집단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좀 더 균형을 갖춘 분석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한 분석을 통해서 세계화의 문제점들을 인정하고, 제대로 평가해서, 그에 대처할 정책 대응을 설계해야 한다. 경제학계는 이제 더는 분개하는 어조로 세계화를 옹호하기보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편이 아마도 자신에게 더 이로울 것이다.
규제에 관한 잘못
기업들은 세계화를 통해서 법적으로 복잡한 자회사들의 네트워크로 바뀌었고, 모회사의 통제에 따라서 자회사들끼리 거래하는 형태로 변했다. 그런 회사들은 자기 뜻대로 세금을 요리한다. 영국의 사례로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이다.
스타벅스의 영국 자회사는 수십억 잔의 커피를 팔지만, 무려 10년 동안 과세 대상을 잡힐 만한 영업 이익을 거의 한 푼도 벌지 않았다. 알고 보니 네델란드령 앤틸리스 제도에 위치한 또다른 자회사가 어마어마한 이익을 내고 있었다.
이 자회사는 커피를 한 잔도 팔지 않는데, 그 대신 “스타벅스”라는 상표 사용권을 영국 자회사에 팔고 있었다. 스타벅스는 분개하는 어조로 네델란드령 앤틸리스 제도에서 내야 할 모든 세금을 지불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앤틸리스 제도에서는 세율이 0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민에 관한 잘못
경제정책의 틀을 짜는 데에 기업의 이해관계가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히 커졌고, 그러한 정책 설정에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이민에서 얻는 혜택이다. 기업이 이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명백한데, 이민이 채용할 노동자들의 모집단을 늘려주기 때문이다. 기업과 시민에게 모두 이로운 이민도 있지만, 이민이 시민의 후생을 떨어뜨릴 때에도 기업은 이득을 본다.
이민자는 그의 노동을 이민 유입국에 이전함으로써 높아진 생산성에 해당하는 부가가치를 그곳에 보태고, 동시에 그중 일부를 이민 유출국인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이민은 원리상으로는 유입국과 유출국 모두의 후생이 향상될 가능성을 연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부가가치의 증분과 본국 송금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민은 두 나라 모두에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민은 이민자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총량적인 결과에서 반드시 사회의 집단적 이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다르게 해석할 때에 계급 구성의 차이와 이처럼 계급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이민이 경제적 영향이 대도시권에서 주로 거론되는 지방의 외국인 혐오보다 더 나은 설명일지도 모른다.
이와는 아주 다른 양상으로 이민이 시민들에게 초래하는 비용이 있다. 그것은 사회에 계속 축적되어온 호혜적 의무를 이민이 보통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지금은 유복하게 살더라도 다음 세대에서는 그들의 자식이 불우한 처지에 놓일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줄 의무는 모든 사람의 승화된 이기심과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그러한 공유 정체성과 호혜적 의무, 승화된 이기심의 이야기들을 알지 못한다. 이민자들이 과연 그러한 내용을 수용한 것인지가 미심쩍어 보일 수 있다. 그로 인해서 다른 시민들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에게 득이 될 세금을 내고 싶어하는 유복한 시민들의 의욕이 줄어들 수 있다.
평균 이상의 소득층인 사람들에게도 분명 그들보다 가난한 내국인 동료 시민들에 대한 일말의 의무감이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비내국인들에 대한 정체성의 괴리감이 가세하면서 그러한 의무감은 차츰차츰 약해진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민 문제에서도 이데올로기는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 좌파는 시장이 주도하는 프로세스에 본능적으로 회의적인데도 예외적으로 이민에는 찬성한다. 반면에 시장이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열광하는 우파가 예외적으로 이민에는 반대한다.
실용주의와 실용적 추론은 이데올로기보다 더 많은 뉘앙스를 고려한다. 즉, 어느 정도 규모의 이민이 사회에 이로울 것인가를 물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의 이민을 받아들일 것인가도 묻는다.
결론 : 경제학자들의 잘못
나를 포함하여 경제학자들은 세계화 비판자들에게 맞서서 그것을 옹호하는 데에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 좋고 나쁜 점을 모두 고려한 세계화의 효과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전면적으로 수용해야 하거나 완전히 거부해야 하는 하나의 통일된 현상은 아니다. 세계화는 갖가지 경제적, 사회적 변화가 뒤섞인 잡동사니이고, 그 각각의 변화가 따로따로 노는 별개의 현상일 여지가 많다.
그러한 현상들 가운데 애매함 없이 분명하게 이로운 요소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공공정책이 촉진해야 한다. 주로 이롭기는 하지만 상당히 큰 손해를 보는 집단이 분명히 존재하는 요소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 손실에 상응하는 보상을 공공정책이 마련해야 한다. 또한 쉽게 보상할 방법이 없는 재분배를 유발하는 요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공공정책이 억제해야 한다.
9장 세계적 분단 : 승자와 뒤처진 자 요약
세계화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적 생활 수준을 끌어올린 중요한 동력이었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거의 이견이 없는 주제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드러난 문제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이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옹호하면서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이제는 세계화의 긍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그 부작용도 균형 있게 평가하고, 이를 보완할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반성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복잡한 글로벌 자회사 구조를 이용해 세금을 회피하며, 스타벅스 사례처럼 이익을 저세율 국가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공정성을 훼손했다. 또한 이민 역시 기업에는 노동 공급 확대라는 이익을 주지만, 사회 전체에는 항상 긍정적이지 않다. 이민은 생산성 향상과 송금을 통해 양국에 기여할 수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내국인의 후생을 악화시키고, 세대를 이어온 사회적 연대와 호혜적 의무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계급에 따라 이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브렉시트와 같은 정치적 갈등을 낳았다.
세계화는 단일한 현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제·사회적 변화가 뒤섞인 복합적 과정이다. 일부 요소는 분명 이롭고 적극적으로 촉진해야 하지만, 특정 집단에 큰 손실을 주는 요소는 보상이 필요하다. 또한 쉽게 보상할 수 없는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소는 억제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세계화를 무조건 옹호하던 태도를 버리고, 현실의 복잡성과 불균형을 인정하며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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