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극단을 파괴하기

by 박카스

폴 콜리어 『자본주의의 미래』 : 제4부 포용적 정책의 부활 - 10장 극단을 파괴하기




자본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분단된 사회를 창출한다. 그럼에도 지금껏 대중적인 변영을 창출할 능력을 갖추었다고 밝혀진 유일한 경제 시스템은 자본주의이다.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 자본주의에 고유한 것은 아니다.


최근의 현상은 해로운 기능 불량이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이것이 단순한 일은 아니지만 신중한 실용주의를 길잡일 삼으면, 우리가 처한 현 상황에 적합한 증거와 분석을 통해서 점차 효력을 발휘할 정책을 만들어갈 수 있다.


자본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했던 마지막 시기는 1945년부터 1970년 사이였다. 이 시기에 정책을 이끌어간 지침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였고, 정치권의 주류 정당들이 모두 이러한 형태의 사회민주주의를 수용했다.


정치권의 정당들은 왜 실용주의에서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이것은 유권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되었을 공산이 아주 크다. 실용주의가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바는 상황의 맥락에서 증거를 눈여겨보라는 것이고, 대안을 나온 해결책이 실제로 효력이 있을지를 따져보기 위해서 실용적인 추론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정보에 밝은 유권자들은 최고의 공공재이며, 모든 공공재가 그렇듯이 각 개인은 공공재를 제공하려는 동기가 거의 없다. 그러한 공공재의 대다수를 국가가 제공할 수는 있지만, 사실에 밝은 유권자들을 갖추는 것을 사람들이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정치 시스템의 역학을 바꾸어놓은 모종의 변화가 지금의 양극화를 초래한 측면도 있다. 그 내용을 이 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정치는 어떻게 양극화되었는가?


우리의 정치 시스템은 민주주의이지만, 정치 시스템에 설계된 세부 요소들이 갈수록 정치를 양극화로 몰아가는 경향이 심해졌다. 우리의 선거제도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대다수가 양대 정당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직면하는 선택지의 차림표는 이 두 정당이 무엇을 내놓는가에 달려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결정적을 위험한 조치가 일어났는데, 바로 기존의 주력 정당들이 당 대표를 선출하는 권한을 평당원들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어떤 정당에서든 당 대표가 그 당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출되고 보통 당 대표를 기선출 대표자들이 뽑던 체계가 평당원들이 뽑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떤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할 성향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이미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의 옹호자가 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평당원들이 당 대표를 선출하도록 바꾼 이 변화는 당 대표 선출 과정이 이데올로기의 옹호자로 기우는 역학으로 작용했다.


많은 수의 실용주의적인 유권자들은 이데올로기가 부상함에 따라서 양극단이 선택한 차림표에 직면했다. 더구나 이 차림표에서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등을 돌림에 따라서, 정당 지도자들의 승리 전략이 정치 스펙트럼 중앙의 부동층을 유인하는 정책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동기가 큰 유권자들을 모두 투표장으로 불러내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른바 “포용”의 진작을 위해서 투표와 당원 가입의 최저 연령을 낮추기도 하지만, 책임과 경험이 부족한 10대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로 쏠리기 십상이다. 그 와중에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비이데올로기적 유권자들은 대중 영합주의자들의 먹잇감으로 방치되고 말았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영리하고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게 현행 시스템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조리 있게 묶어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메시지는 “피해자” 집단들이 아니라 평균적인 프랑스 시민들을 겨냥하는 한편, 대중 영합적인 해결책의 공허함을 들추어냈다.


그가 내건 공약 체계는 실용주의의 훌륭한 사례였는데, 복잡한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출중한 발언 능력으로 대중 영합주의의 약장수식 공약을 물리칠 수 있었다.


중앙을 부활하기 : 몇 가지 정치적 역학


기선출 대표자들은 당원들보다 민주주의 원리에 근거한 적법성이 더 크다. 임의의 정당이 배출한 기선출 대표자들의 총합은 공식적인 명부상의 당원 숫자보다 그 정당을 지지한 훨씬 더 많은 유권자들을 대표한다.


그러나 당 대표 선출의 승리 기준을 계속해서 능동적 투표자들의 수가 최대한 커지는 체계로 정하고자 한다면, 효과가 조금 떨어지는 또 하나의 대안은 적어도 주력 정당의 경우에 대표 선출을 비당원을 포함한 모든 유권자에게 개방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당 대표 선출이 남긴 기록을 보면 전당이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일반 유권자들은 당 대표 후보들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으므로 카리스마적인 대중 영합주의자들에게 끌리기 쉽기 때문이다.


중앙을 부활하기 : 유권자들이 정보에 밝은 사회


윤리적이고 실용적인 정치는 이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수가 임계 수준에 도달할 때에만 창출될 수 있다. 이 책의 주된 독자층을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으로 상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임계 수준의 시민은 모든 시민이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행동할 용기를 주기에 충분한 규모를 뜻한다.


실용적인 새 정책


고숙련 기능을 갖춘 고학력자들과 숙련 기능을 상실한 저학력자들 사이의 새로운 계급 분단을 되돌리는 일에서도 한쪽 집단만이 아니라 양쪽 집단에 모두 대응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에 발이 묶이는 상황은 보통 갓난아이 때부터 시작되어 평생 이어지는 불리한 처지의 마지막 지점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 모성주의라는 전략을 제안했다. 그것은 해체될 위험에 처한 젊은 가정들에게 실용적인 지원과 친밀한 지도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것이고, 뒤따라 학령기에 들어서는 어린이들을 친밀하게 지도하는 것이다.


고숙련자들의 일부 행동은 약탈적이기 때문에 억제될 필요가 있다. “토너먼트”에서 승자가 되면 패자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거액의 사적인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 가운데 나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제로섬 게임에 자신의 능력을 투입하는 반면,


사회 전체에 큰 혜택을 주는 혁신과 같은 활동에 참여할 재능은 고갈되고 있다.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는 경향이 아주 심한 부문이 있는가 하면, 종사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별로 없는 부문이 있다. 후자보다 전자의 업종에 더 육중한 세금을 매겨야 한다.


가난에 찌들고 정체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행동은, 부유해지면 자기 돈을 다른 데로 빼돌리고 교육을 받으면 다른 사회로 이민을 떠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그들 자신의 사화에 해로울 때가 많다.


소속의 정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성정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는 정체성은 장소와 목적이라는 바탕 위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 그러한 공유 정체성은 고향과 영토에 단단히 묶인 애착을 동원하기로 하고,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면 상호 이득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우리”라는 관념의 토대가 바로 공유 정체성이다. 반면에 윤리적 정치가 발휘할 수 있는 다른 영향을 통해서 공통의 소속감을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를 뒷받침할 수도 있고, 목적을 공유하는 합리적인 근거를 보강할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은 장소와 목적에서 출발하는 소속의 이야기들이 치고 들어올 입구를 열어주었다. 분열을 조장하는 이야기들은 국민 정체성을 내세웠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일부 사람들만의 정체성이었다.


자본주의가 최근에 접어든 여정에서 마구 쏟아낸 불안들이 우리 사회의 깊은 상처로 악화된 이유는 그 의무의 관계망이 마모되었기 때문이다.


장소와 목적에서 생겨나는 공동의 소속감에 관해서 이야기할수록 국민 정체성의 공유는 탄탄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호혜적 의무에 관해서 이야기할수록 그러한 의무로 형성될 윤리적 관계망이 탄탄해질 수 있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공유하면 아주 멀리까지 내다보는 호혜성의 토대가 갖춰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신념 체계를 잘 구축하는 사회는 개인주의나 복고판 이데올로기들을 중시하는 사회보다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개인주의적 사회는 공공재라는 광대한 잠재력을 포기한다.


복고판 이데올로기들은 모두 사회의 다른 일부에 대한 증오를 저변에 깔고 있어서 갈등으로 치닫는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는 사람들이 호혜적 의무의 관계망을 수용하도록 길러진다. 삶이 잘 풀리는 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와준다.


성공적인 사람들이 이러한 의무에 부응하는 이유는 의무의 이행에서 생기는 자존감과 동료 존중으로 보상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소수에 대해서는 좀 더 강제적인 힘을 사용해도 합당하다.


이것이 우리의 정치가 길잡이로 삼아야 할 윤리적 실용주의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 정치는 양극화를 초래한 실패에서 탈출하여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분단에 대처할 협력의 기능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 우리는 자난날 더 잘했던 적이 있으며 다시 더 잘할 수 있다.




제4부 포용적 정책의 부활 - 10장 극단을 파괴하기 요약


자본주의는 불평등과 분열을 낳았지만 여전히 대중적 번영을 가능케 한 체제다. 문제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최근 나타난 기능 불량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념이 아니라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 구조는 정당 대표 선출 방식 변화와 유권자의 무관심 속에서 극단적 이념을 강화하며 실용적 중도를 약화시키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처럼 실용적 메시지로 대중영합주의를 극복한 사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양극화된 사회를 극복하려면 단순한 복지 확대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모성주의 같은 제도로 취약 계층을 지원하고, 고숙련자의 약탈적 행위를 억제하며, 생산성이 낮은 영역에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공유 정체성을 회복시켜 호혜적 의무의 관계망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성공한 이들의 자발적 책임과 제도적 장치를 결합해 사회 전체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극단을 넘어서는 길은 실용주의와 윤리의 결합이다. 이념이 아닌 현실적 해법으로 공동체적 의무와 존중을 회복할 때, 자본주의는 다시 건강하게 작동하며 포용적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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