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적 이상과 산업을 찾아서
제2장 「공화국 초기의 경제와 시민적 덕목 - 공화주의적 이상과 산업을 찾아서」에서는 미국 건국 초기에 형성된 공화주의적 전통과 그것이 경제적 질서와 시민 윤리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었는지를 탐구한다. 미국 공화국의 초창기,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는 단지 제도적인 구조에만 머물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자유로운 시민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성품, 즉 ‘덕성(virtue)’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덕성은 단순한 도덕적 품행을 넘어서,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고 사적 이익을 절제할 줄 아는 공공정신을 의미했다.
이러한 관점은 경제 영역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미국 사회에서 경제는 단순한 부의 축적 수단이 아니라, 시민의 자립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는 장치로 여겨졌다. 예컨대 자영농이나 독립적인 장인이 존중받았던 이유는, 이들이 타인의 지배 없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독립적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췄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시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은 대규모 상업 자본이나 금융 투기, 무절제한 사익 추구가 시민 정신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들은 경제가 너무 시장 논리에만 치우치면, 개인은 점점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게 되고, 결국 공동체의 덕성과 민주주의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장에서 샌델은 ‘자유’를 유지하려면 정치 제도뿐 아니라 경제 시스템도 시민적 덕성과 양립 가능해야 한다는 초기 미국 공화주의의 핵심 사상을 조명한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는 단순히 정부의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율적이고 책임 있게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자유에는 자치가 필요하고 거꾸로 자치는 시민적 덕목에 의존한다는 발상이 공화주의* 이론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발상은 건국 세대의 정치적 전망에 뚜렷하게 반영했다. 존 애덤스(제2대 대통령 재임:1797~1801)는 미국이 독립하기 직전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공공의 덕목*은 공화주의의 유일한 기초다. (...)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립된 공공선 그리고 공공의 명예와 권력과 영광을 향한 적극적인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화주의 정부도 있을 수 없고 진정한 자유도 있을 수 없다.“ 벤저민 플랭클린(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1706~1790)도 여기에 동의하면서 ”오로지 적절한 소양을 갖춘 도덕적 사람만이 자유를 누릴 역량을 가진다. 국가가 부패하고 포악해질 때 이 국가를 다스릴 더 많은 주인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P.41)
공화주의 정부는 시민의 도덕적 성격이나 시민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 중립적일 수 없다.* (P.42)
매디슨(제임스 매디슨 주니어, 제4대 대통령 재임:1809~1817)은 공화주의 정부에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농업적 삶의 방식을 도덕적이며 농업적인 공화주의의 이상을 거부하면서 제퍼슨(토머스 제퍼슨, 제3대 대통령 재임:1801~1809)과 매디슨이 공화주의 정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선진적 상업과 제조업 경제의 기반을 마련할 목적으로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나섰다. 해밀턴(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재임:1789~1795)은 사회적 불평등과 이기주의가 만연할 것으로 전망되는 현대 상업 사회에 절망하지 않았다. 미국이 그가 건설하고자 했던 강성대국으로 나아가려면 이런 것들은 감수해야 한다고 봤다.” (P.56)
1780년대에 처음으로 국내 제조업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미국인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고 해서 경제적 독립이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은 예전처럼 다시 미국의 무역을 지배했다. 또한 미국이 자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팔 수 있는 해외 시장의 빗장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상업적 위기와 함께 경제 불황이 나타났고, 국내 제조업의 필요성이 새롭게 대두됐다. (P.63)
많은 미국인이 대규모 제조업을 장려하면 공화주의의 시민의식을 위협하는 정치경제가 갖춰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들은 가정이나 소규모 작업장을 초과하는 규모의 제조업체들이 나타나면 시민권 행사에 필요한 독립적 판단 능력이 없는 가난한 노동자 계층이 등장해 도시를 빽빽하게 채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제퍼슨은 <버지니아주에 대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의존은 복종과 금전에 대한 예속을 낳고 미덕의 싹을 질식시키며 이기적 야망을 실현할 도구를 준비한다,” 공공 생활은 농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도덕의 부패”를 낳는다. “노동할 땅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의 시민이 공장의 작업대에 늘어앉아서 일하는 모습은 절대로 보지 않도록 하자.” (P.63)
잭슨(앤드류 잭슨, 제7대 대통령 재임:1829~1837)은 “어떤 자유로운 정부도 시민적 덕목과 숭고한 애국심 없이는 지탱할 수 없다.”라면서 전통적인 공화주의적 관점을 반영해 “공적 정신으로 채워져야 할 자리를 단순한 이기심의 추잡한 감정이 빼앗는다면 의회의 입법 과정은 곧 개인과 당파의 이익을 추구하는 쟁탈이 벌어지는 장소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P.90)
“공화주의 정부에서 투표함은 운명의 항아리다. 그러나 그 어떤 신도 항아리를 흔들거나 항아리의 운명을 자기 의지대로 주재하지 않는다. 투표함은 지혜, 애국심, 인간성을 향해 열려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지, 배신, 자존심, 질투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나 부자에 대한 적대감을 향해서도 열려 있다. 투표함이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 고안된 필터라면 그 어떤 필터보다도 구멍이 성긴 필터다. (P.91)
* 공공의 덕목이란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나 가치를 말한다. 이는 시민들이 정직, 책임, 공정성, 연대, 관용 등의 태도를 통해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삶의 자세이며, 민주사회에서 자유와 권리를 유지하기 위한 도덕적 기반이 된다. 이러한 덕목이 살아있는 사회는 신뢰와 협력이 가능하며,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공익을 추구할 수 있다.
* 공화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단순한 간섭의 부재로 보지 않고, 공동체의 자율적 참여와 공공선 실현을 통한 자유로 이해하는 정치철학이다. 이 사상은 고대 로마와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서 유래하며, 개인의 권리뿐 아니라 시민의 덕성과 정치 참여, 그리고 권력의 분산과 법치를 중시한다. 공화주의에서 자유는 무정부 상태가 아닌, 좋은 법과 제도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상호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상태로 간주된다. 즉, 공화주의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공동체적 연대감을 통해 건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 "공화주의 정부는 시민의 도덕적 성격이나 시민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 중립적일 수 없다"는 말은, 공화주의 정부는 단순히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가치와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즉, 공화주의는 정부가 시민 개개인의 도덕적 성장과 공공선을 향한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정부는 시민의 삶에 대해 어떤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기준을 갖고, 그 기준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 공공 담론 등을 통해 시민을 이끌어야 한다고 여긴다.
이는 자유주의 정부처럼 "정부는 가치 중립적으로 개인의 선택만 보장하면 된다"는 입장과는 다르다. 공화주의는 시민이 무관심하거나 이기적이 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갖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본다. 공공의 삶과 시민의 덕목을 회복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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