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노예는 어떻게 다른가
제3장 「자유노동 대 임금노동 – 노동자와 노예는 어떻게 다른가」에서는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노동과 자유의 관계를 조명한다. 고전적 공화주의 전통은 자립적이고 타인에게 종속되지 않는 시민을 이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노예제도뿐만 아니라 점점 확산되던 임금노동의 조건에도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당시 노동운동가들은 임금노동 역시 자본가에게 종속된 구조 속에서 실질적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임금노동이 또 다른 형태의 ‘노예제’ 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자유계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양자는 다르다는 반론도 존재했다.
샌델은 이 논쟁을 통해 진정한 자유는 단순한 법적 권리를 넘어, 자율성과 참여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사회적 조건이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장이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한 생활이 시작되자 장차 19세기 말까지 계속해서 되풀이될 쟁점이 미국 정치에 등장했다. 바로 임금노동, 즉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이 과연 자유라는 개념에 부합하느냐는 것이었다. (P.95)
피츠휴(조지 피츠휴 : 남부 노예제의 선도적 이론가)는 북부의 노동 지도자들이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부의 임금 노동자는 남부의 노예보다 자유롭지 않다면서 “노예주가 노예를 부리듯이 자본이 노동을 부린다”라고 주장했다. 단 하나 차이가 있다면 남부의 노예주는 노예가 늙고 병들어도 이들을 책임지고 보살피지만 북부의 자본가는 이런 책임을 전혀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P.106)
“사유재산이 토지를 독점했으며 가난한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모두 파괴했다. 가난한 사람은 삶을 안전하게 이어갈 안전판이 박탈됐다. 고용과 충분한 임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데, 그 누구도 이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P.108)
그런데 노예제를 인정하는 지역의 팽창이 어째서 북부의 자유를 위협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치적 반노예제론의 두 번째 논거가 된다. 노예제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 자유노동* 체계가 파괴될 것이고, 그러면 북부의 자유가 훼손된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만약 자유노동 체계가 사라져버리면 시민들이 자치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독립성도 사라질 터였다. 자유노동에는 임금노동이 영구적 직업이 되는 것을 막아줄 자유로운 토지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 북부의 임금노동자가 평생 피고용인으로 남지 않도록 구제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저축의 가능성이었다. 저축을 충분히 많이 한다면 서부로 이주해 자기 소유의 농장이나 가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노예제를 허용하는 영토가 점점 더 넓어진다면 이런 출구는 닫히고 만다. 공화당의 핵심적 이념은 자유노동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P.112)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이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노예의 비참함뿐만 아니라 노예를 소유하지 못한 백인 노동자가 감당해야 하는 가난과 고통이었다. 노예제가 존재함으로써 근면성과 적극성 등 자유로운 체계가 장려하는 덕목이 노예가 아닌 사람들에게서마저 박탈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노예제가 확산되면 북부 사회의 제도가 바뀔 것이고 또 시민적 덕목을 갖춘 사람들이 타락하고 말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P.113)
정치적 반노예제론의 성격은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던 프레더릭 더글러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유인의 외침은 흑인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인의 자유를 보호할 목적으로 제기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P.115)
링컨은 평생을 임금노동자로 보내는 사람은 노예나 마찬가지라는 발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두 가지 형태의 노동은 모두 자본에 부당하게 종속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두 가지 형태의 노동은 모두 자본에 부당하게 종속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노동자가 자발적 동의 아래 노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인가, 아니면 노예가 그들을 돈으로 사서 별도의 동의 없이 노동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따지는 사람들은 가능성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유노동은 노동자가 고용주나 노예주로부터 독립한 조건에서 수행하는 노동이며 적어도 북부에서는 미국인 대부분이 독립적이었다고 주장했다. (P.117)
링컨은 자유노동과 소규모 독립생산자라는 깃발 아래 북부를 전쟁으로 결집하고 또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기업과 공장 생산력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전쟁이 끝나고 북부 사람들은 자유노동이라는 이상이 사라지고 경제적 의존성이 높아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또 다른 위협으로 맞이했다. (P.119)
1870년 인구조사에는 직업과 관련된 미국인의 상세한 정보가 최초로 기록됐다. 이 인구조사에서 많은 노동자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자유를 생산적 재산, 즉 생산수단의 소유권과 결부시킨 자유노동이라는 이념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독립생산자가 아닌 고용자의 나라가 돼 있었다. 1870년을 기준으로 생산에 종사하는 미국인 중 3분의 2가 자기 생계를 다른 사람에게 자기 농장에서 일하거나 자기 소유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의 비율은 세 명 중 겨우 한 명뿐이라는 말이었다. (P.120)
이러한 맥락에서 이 조직의 지도자인 조지 맥닐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런 대기업들이 정부와 피고용인에게 휘두르는 권력은 오로지 차르에 필적할 수 있는 권력뿐이다. (...) 이제 머지않아 ‘대기업들이 정부를 통제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정부가 대기업들을 통제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을 공화주의 시민이 던지게 될 것이다.” (P.122)
저임금 상황에서 노동계급은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롭고 계몽된 사람들이 성취한 높은 수준으로 자기를 끌어올릴 수 없는 정치적·사회적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라고 지적했다. 노동의 가격이 하락하면 “임금뿐만 아니라 자치에 필요한 모든 고귀한 자질까지도 함께 추락한다”라고도 했다. (P.123)
19세기 말이 되면 미국 내 정치 논쟁의 초점은 시민적 덕목을 갖춘 시민들 길러내는 데 필요한 경제적 조건을 따지기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조건을 따지는 쪽으로 기울었다. 시민적 자유노동관*에서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노동계가 하루 8시간 노동을 법제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자유주의적 개혁가들과 법원이 보인 대응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P.127)
산업 자본주의의 많은 자유방임주의 옹호자들과 마찬가지고 고드킨은 8시간 노동제 운동을 “치욕적인 코미디”이자 계약의 자유 침해이며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헛된 시도라고 비난했다. (...) 열악한 환경에서 그야말로 가까스로 숨만 붙이고 살아가는 노동자로서는 진정으로 자발적 위치에서 자기 노동을 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이 노동자에게는 자본가가 제시하는 금액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굶주리지 않으려고, 아내와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려고, 또는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없으므로, 나는 그 제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동의는 내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동의나 마찬가지다. (P.128)
노동시간 단축에 찬성하는 노동 지도자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 할 때 노동자들의 도덕적·시민적 특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즉 노동시간을 법률로써 제한하면 노동자들이 신문을 읽거나 공공의 사안에 참여하는 등 시민으로서 살아갈 시간을 더 많이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맥닐 역시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대중의 사고와 느낌, 관습과 예절”이 바뀔 것이라면서 노동시간 감소가 가져다줄 형성적 효과를 강조했다. 그가 주장한 핵심은 단순히 길고 지루한 노동시간으로부터 노동자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수준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P.130~131)
제퍼슨에서부터 링컨과 노동기사단에 이르기까지 임금 체계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시민적 자유관에 입각해 주장을 펼쳤다. 자유노동은 자치를 수행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시민적 덕목을 갖춘 독립적 시민을 길러내는 노동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 주장이 힘을 잃자 그 주장을 고무시켰던 자유에 대한 개념도 힘을 잃었다.
임금노동을 영구적 조건으로 받아들이자 미국의 법률적·정치적 담론은 시민적 자유관에서 자발주의적 자유관으로 전환됐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임금과 교환하는데 동의한 이상 이제 노동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자발주의적 견해가 등장함으로써 노사관계의 모든 논란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논쟁의 초점은 바뀌었다. 20세기의 개혁가들과 보수주의자들이 토론하는 임금과 노동 문제의 초점이 시민적 덕목을 함양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진정한 동의의 조건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이 주류가 됐다는 것은 열망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은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화주의 전통이 오랫동안 저항해왔던 광범위한 의존적 조건들을 불가피한 것이라면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은 미국이 공화주의적 공공철학*에서 벗어나 절차적 공화주의*라는 자유주의 버전으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P.144)
* 자유노동의 개념은 단순히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노동이라는 뜻을 넘어, 정당성과 도덕성을 갖춘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의미한다. 샌델은 자유노동의 조건으로 자발성, 공정한 조건, 도덕적 정당성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경제적 궁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험하거나 비인간적인 일을 선택하는 경우, 겉으로는 자발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조건에서의 선택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
* 시민적 자유노동관은 노동의 사회적·도덕적 조건을 함께 고려한다. 노동이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 존엄성, 공정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져야 진정한 ‘자유로운 노동’이라 본다. 노동자는 단순한 계약 주체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가진다.
반면,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은 노동 계약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정당하다고 본다. 즉, 당사자가 자유의사로 계약에 동의했는가만을 중시한다. 노동의 조건이나 결과가 다소 불평등하거나 부당해 보여도, 자유로운 선택이었다면 문제 삼지 않는 입장이다. 이는 자유를 개인의 선택권으로 이해하는 시각이다.
* 공화주의적 공공철학은 개인의 권리보다 공동체와 공공선을 중시하며, 시민이 사회에 책임 있게 참여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본다. 샌델은 시장 중심의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공공선에 대한 도덕적 성찰과 시민적 참여를 강조한다.
* 절차적 공화주의는 시민 참여와 토론을 통해 공공선을 결정하려는 입장이다. 이 관점은 미리 정해진 도덕적 진리를 따르기보다는, 민주적 절차와 대화를 통해 사회의 가치를 함께 형성해야 한다고 본다. 샌델은 절차적 공화주의가 시민의 참여를 중시하지만, 공공선에 대한 명확한 도덕 기준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며, 보다 도덕적 토대를 갖춘 공화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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