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제7장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199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서는 1990년대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약화시킨 과정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샌델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자본주의가 시장 효율성과 경쟁을 절대시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 불안과 소득 감소를 겪었다고 말한다. 자본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노동자는 지역사회에 묶여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샌델은 정치권이 이러한 경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장 논리를 수용함으로써, 시민의 삶과 공동체의 가치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본다. 그는 민주주의가 단순히 절차나 제도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공동의 삶에 도덕적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샌델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의해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시민의 역할과 공동체적 가치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했다. 자본주의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생산적 활동의 조직화를 추구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치 참여를 위한 권한의 부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두 개념을 조화롭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등장했다. 시대에 따라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주로 자본가들의 정치적 지배력 행사를 막으면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시민으로서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자본주의의 경향성에 저항한다는 뜻이었다. (P.319)
이 책의 초판에서 나는 자유에 대한 시민적 개념과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을 포기하는 것은 미국적 이상을 상실 또는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에 대한 소비자주의적 개념은 어떤 사회에서 시민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빈약하게 만들었다. 그 개념은 민주주의가 정의와 공동선에 대한 숙고보다 개인의 선호를 종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제라는 발상을 촉진했다.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이러한 열망의 축소를 반영한 것이었다. (...) 21세기 이후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한층 더 예리해졌고 사회적 결속력은 철저하게 무너졌으며 좌절감은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 2016년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에 줄곧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십 년 동안 쌓인 원한과 분노의 결과였다. (...)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두 정당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버전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이러한 자본주의 버전이 불평등과 해로운 정치를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P.320~321)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로부터 2년 뒤 소비에트연방(소련)이 해체됐다. (...) “장벽이 없는 세상”은 국가를 향한 충성보다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이 더 중요한 경제 체제를 가리키는 친숙하고도 고상한 표현이 됐다. (...) 프리드먼은 선출직 공무원들로서는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즘은 황금 구속복을 입은 나라들의 여당과 야당 사이에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지 파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일단 이 옷을 입은 나라에게 주어지는 정치적 선택지는 펩시콜라 혹은 코카 콜라밖에 없다. (P.322~324)
클린턴은 취임 직후, 레이건에서 부시에 이르는 공화당 대통령들의 연속된 재임 기간에 쌓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예상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클린턴의 정치 분야 자문위원들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중산층을 지원하려면 경기를 부양하고 공공투자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클린턴의 경제 분야 자문위원들은 생각이 달랐다. 주로 월스트리트와 정치권의 기득권층에 속해 있다가 클린턴의 부름을 받았던 경제 분야 자문위원들은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정적자의 감축은 소비를 억제하고 세금을 올린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정부가 금융시장의 신뢰를 얻어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의 투자 활동이 촉진될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 결과 클린턴이 선거운동에서 공약했던 “사람이 먼저다 Putting People First”라는 공공 투자 정책보다 경제를 한층 더 효과적으로 부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P.325~326 )
임기 첫해에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의회를 통과하도록 강하게 밀어붙였다. 레이건이 구상하고 조지 부시가 협상했던 이 협정은 멕시코 및 캐나다와의 무역 장벽을 허물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이 타국에서 거둔 이익을 본국으로 보낼 수 있고 또 특허를 미국 국경 바깥에 서도 보장받을 수 있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미국 기업들은 낮은 임금의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할 것이고, 그러면 일자리가 줄어들게 뻔했다. 당연히 미국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고, 미국 노동운동계에서는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클린턴은 북미자유무역협정 덕분에 무역이 늘어날 것이고 미국에서 새로운 일자리 수십만 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정신과 세계 자본주의가 바라는 한층 더 넓은 세계 통합의 선례가 된다고 바라봤다. 클린턴 정부의 강력한 지원 속에서 협정은 비준됐다. 이 과정에서 정작 민주당 위원보다 공화당 의원이 더 많이 찬성했다. 이후 1995년에 세계무역기구 WTO가 창설됐고 또 2001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중국과의 무역 관계 정상화 등과 같은 추가 협정도 뒤따랐다.
결과적으로 세계화 시대의 무역협정이 미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한 몫은 미미했다. 어떤 추정에 따르면, 그 효과는 국민총생산 성장분의 0.1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이 무역협정들은 주로 기업과 전문직 계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미국 경제를 재구성했다. 미국의 중산층과 노동자층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익을 얻었지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이익을 얻지 못했다. 중국을 비롯한 저임금 국가들로부터 수입품이 홍수처럼 들어온 덕분에 소비자들은 월마트에서 텔레비전과 옷을 싸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과 경쟁해야 했기에 노동자 대부분의 임금은 정체됐다. 더불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사라졌다. (P.327~328)
1990년대에 세계화의 열성적 지지자들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키면 중국의 정치 체계가 급격하게 민주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는 또 하나의 오만하고 잘못된 해석이었음이 드러났다. 중국은 정치를 자유화하지도 않고서, 심지어 황금 구속복의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P.329~330)
2016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대다수 유권자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민주당과 공화당의 주류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세계화가 정작 세계화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감지했다.
비교우위 경제 이론*에 따르면 자유무역은 거래 당사국들에게 모두 이익을 안겨준다. 자유무역이라는 조건에서는 거래 당사국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해 전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국가의 “비교우위”가 노동자에게 위험하거나 착취적 조건에서 노동하도록 허용할 것을 전제로 한다면 어떨까? 이것은 경제 전문가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시민이 토론하고 결정해야 하는 도덕적·정치적 문제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들이 반대했던 대상은 세계화 시대의 무역협정이 권력을 노동자에게서 투자자로 또 국가에게서 기업으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초세계화의 지지자들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실수는 어쩌면 금융 세계화를 촉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로드릭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금융 세계화는 1997년에 동아시아에서 일어났던 금융위기(*한국이 경험했던 ‘IMF 사태’를 말한다)를 포함해 해당 국가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던 일련의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금융시장 개방과 경제 성장 사이에 상관성은 미미할 뿐이다. 그러나 금융의 세계화와 금융위기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성이 존재한다.” 동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외국의 자본을 상대적으로 많이 통제한 나라일수록 피해를 덜 입었다.
자본의 이동성이 노동의 이동성보다 높아지자 회사들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위협을 앞세워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요했다.
또한 자본의 이동성이 높아지자 자본에 세금을 매기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법인세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고, 그 바람에 노동자와 소비자 몫의 세금 부담은 그만큼 더 늘어났다. (P.330~333)
2000년대 초에 이미 포드는 자동차 판매보다 자동차 구입 자금을 위한 대출 상품 판매로 돈을 더 많이 벌었다. 제너럴일렉트릭은 냉장고 판매보다 신용카드 판매와 기업 인수합병 사업에 따른 자금 조달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있었다. 1978년에 미국의 제조업 회사들이 금융 활동을 통해 창출한 이익은 전체 이익 중 18퍼센트였지만, 1990년에는 60퍼센트로 높아졌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세계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촉발했던 것과 동일한 시장의 믿음으로부터 활성화됐다. 그 믿음은 자본 시장이 국내외 구분 없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운영되도록 허용할 때 비로소 자본이 가장 효율적으로 유도될 것이라는 믿음, 또한 그 덕분에 경제 성장도 한층 더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당시를 지배하는 경제적 정통성이 가르쳐준 결과이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선택을 금융시장에 일임함으로써 정지인은 공공선을 둘러싼 어렵고 까다로운 판단을 회피할 수 있었다. (P.334~336)
1980년대 말에 이르자 국민총생산에서 금융, 보험, 부동산이 각각 차지하는 비중은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앞질렀고, 이러한 추세는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한편 기업 사냥꾼들은 차입금을 이용해 미국의 기업을 인수한 다음 사업부별로 해체해 매각하고 비용을 줄이며 직원을 해고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주주가치”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이뤄졌다. (P.338)
1992년 선거운동 때 클린턴은 “터무니없는 임원 급여 적용하던 법인세 공제를 폐지할 것”을 공약했다. 그 덕분에 기업은 이제 더는 연간 100만 달러를 초과하는 임원 급여에 대해 법인세 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가 시행한 개혁에는 커다란 허점이 하나 있었다. 100만 달러라는 상한선은 기본급에만 적용됐을 뿐, 스톡옵션을 포함한 성과급에는 한도가 설정되지 않아 전액 공제됐던 것이다. 이러한 허점 덕분에 임금의 고삐를 조이겠다는 클린턴의 주장은 조롱당했다. 그것은 또한 경영진이 기업 수익을 사용해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따라서 자기가 소유하는 스톡옵션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강력한 동기기 됐다. 뉴딜정책 이후 이런 식의 자사주 매입은 시장 조작의 한 형태로 인식되던 불법 행위였다. 그러나 1982년에 레이건 행정부는 자사주매입을 합법화했다. 성과급 허점이 있는 클린턴의 개혁이 도입되자 자사주매입은 CEO의 급여와 마친가지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해인 1980년에 주요 기업의 CEO들이 받던 평균 급여는 평균적인 노동자들 급여의 35배나 됐다. 1992년에 클린턴이 기업 임원의 급여를 제한하겠다고 약속하던 당시에는 그 수치가 무려 109배에 달했다. 클린턴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0년이 되면서는 이것이 거의 세배 넘게 늘어나 366배가 됐다. CEO들은 평균적인 노동자가 1년 일해 버는 돈을 하루 만에 버는 셈이었다. (P.33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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