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절차적 공화주의의 승리와 고난

민주주의의 불만이 불신으로 이어지다

by 박카스

제6장 「절차적 공화주의의 승리와 고난 – 민주주의의 불만이 불신으로 이어지다」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정치적 불신에 대해 심도 깊게 다룬다. 샌델은 절차적 공화주의*가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정치적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를 중심으로 한 논의가 점차 약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즉, 민주주의가 공정한 절차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면서, 공동체의 윤리적 가치나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는 논의가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정치적 담론은 점점 더 개인주의적이고 기술적이며, 단순한 절차의 이행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 결과,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점점 더 불만을 품고,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샌델은 민주주의가 다시금 공공의 가치와 공동체의 이익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는 시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무력감을 해소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법과 절차를 넘어서서, 공동체의 윤리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케인스주의 재정 정책이 떠오르면서 경제 논쟁의 시민적 노선은 미국의 정치 담론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경제 정책은 전체 국민생산의 규모와 분배에는 집중하는 반면, 자치의 조건에는 소홀했다. (...) 공화주의 전통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이 무너지는 것은 곧 패배이자 미국적 이상들의 위축과 자유의 상실을 의미했다. 공화주의 정치 이론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는 자기 운명을 지배하는 정치적 공동체 통치에 참여하는 것, 즉 자치의 수행이다. (P.259)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인은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이했다. 경제는 공화주의가 바라는 민주적 지배를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 새로운 자유관에 따르면 자유는 (...) 자신의 가치관과 목적을 선택하는 개인적 역량에 달려 있다. (P.260)


절차적 공화주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과 자기통제의 승리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비쳤다. (...) 절차적 공화주의는 미국이 전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쥐게 되는 매우 드문 순간에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미국은 독보적 강국이었다.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하던 날에 해리 트루먼(제33대 대통령 재임:1945~1953)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미국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P.261)


존 F. 케네디(제35대 대통령 재임:1961~1963)는 감동적 웅변으로 미국의 주도적 실행력을 강조하며 분명하게 천명했다. (...) 민주당 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미국인을 향해 “하늘과 비, 바다와 조수, 우주의 저편과 인간 내면을 지배하기 위한 경주”에서 승리하겠다는 “배짱과 의지”를 가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네디의 취임사는 자신들이 프로메테우스의 힘을 가졌다고 믿는 세대의 확신을 보여줬다. (P.262~263)


케네디가 국가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자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으라고 미국인에게 요구하던 바로 그 시점에 미국인의 삶에서 시민적 자원들은 이미 줄어들고 있었다. 또한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경제성장이라는 방향성과 절차적 공화주의의 공공철학에 떠밀려서 지배력을 잃고 있었다. (P.264)


새로운 공공철학은 판사들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았다. 1940년에 미국 대법원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학생들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하지 않겠다고 해도 이것을 강제할 수 있다는 지방 법규의 손을 들어줬다. (...) 그런데 그로부터 3년 뒤 대법원은 ‘국기에 대한 경례’의 강요는 위헌이라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당시의 결정은 전혀 다른 자유관을 토대로 했다. 즉 자유는 시민적 덕목을 함양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힘으로 강제할 수 없는 특정한 권리를 보장하는 데 달려 있다고 바라본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시민에게 좋은 삶에 대한 특정 견해나 태도를 강요할 수 없다고도 했다. (...) 애국심은 이제 설득이나 주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며,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가 수행하는 자발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했다. (P.266~267)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는 바람직한 덕목을 함양하려고 노력하거나 시민에게 특정 목적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바라봤다. (...) 이것은 좋음보다 옳음을 우선시하는 주장이자, 절차적 공화주의의 자유주의를 규정하는 주장이다. (P.277)


역사가 자신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사의 시간적 경계선들은 너무도 흐릿해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8년은 예외였다. 바로 미국의 지배력이 종료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제도 및 기관 지도력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린 것이다. 1860년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 1968년에 일어났다.


미국인은 미국이 어떤 전쟁에서든 결코 지지 않는다는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베트콩 부대가 미국 대사관에 진입하는 장면을 그날 밤 저녁 뉴스엣 보고는 모두 충격을 받았다.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전쟁에 반대하던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이 자신의 소속 정당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어 존슨을 거의 패배 직전 상태로 몰고 갔다.


며칠 뒤 로버트 케네디가 출마 선언을 했다. 3월 말에 존슨은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택했다. 전쟁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국내 불안을 안고서 더 이상 선거를 이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존슨의 발표 이후 미국 전체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흘 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멤피스에서 암살당했다. 이 일로 전국의 도시 빈민가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43명이 사망했으며 2만 명 넘게 체포됐다. 다음 달, 케네디는 캘리포니아 예비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던 날 밤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당했다.


11월 리처드 닉슨(제37대 대통령 재임기간:1969~1974)이 “법과 질서”를 바라는 미국인의 열망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런 시위와 혼란 그리고 그에 따른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이 통제불능 상태가 됐지만 정부는 이에 대응할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 점점 커졌다. (P.284~286)


정부에 대한 환멸이 점점 커지자 정치인들은 당시를 지배하던 정치적 의제가 포착하지 못하는 국민의 좌절과 불만을 포착하고자 나섰다. 조지 월리스와 로버트 케네디뿐만 아니라 지미 카터(제39대 대통령 재임기간:1977~1981)와 레이건(로널드 레이건 제40대 대통령 재임기간:1981~1989)이 대표적이다. (P.288)


저항의 정치 : 조지 월리스


저항의 정치를 일찍이 실천한 사람들 가운데 두드러진 인물이 조지 월리스다. 월리스는 앨라배마 주지사이던 1963년에 “오늘도 인종분리를 해야 하고, 내일도 인종분리를 해야 하며, 영원히 인종분리를 해야 한다”라고 천명했다. 그는 앨라배마대학교의 인종분리 철폐 정책을 막고자 “대학교의 문 앞을 지키고 서겠다”라며 맹세했던 불같은 남부 출신의 열혈 포퓰리스트였다.


범죄와 인종 폭동에 위협을 느끼고 관대한 법원 판결과 오만한 연방 관료 때문에 자기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던 백인 노동자의 분노를 대변했다.


월리스의 주장에는 인종차별이라는 명백한 요소가 있긴 했지만, 그 저변에는 많은 미국인이 연방정부가 무능하다고 느끼던 불만이 폭넓게 깔려 있었다.


월리스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무력한 정치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선거에서 어느 정도 거뒀던 성공 때문에 주류 정치인들은 국민 사이에 쌓이는 불만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 불만에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


민주당과 공화당,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다루는 쟁점들이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믿는 미국인의 불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포착했던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P.288~291)


시민성의 맹아 : 로버트 케네디


최근 수십 년 동안의 대통령 후보들 중에서 미국 정치를 괴롭히는 막막한 좌절감을 분명하게 포착해 표현하고자 노력했으며 또 가장 설득력 있는 정치적 전망을 제시한 사람은 로버트 케네디였다. (...) 로버트 케네디는 자기 형이던 존 케네디 대통령 아래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훗날 뉴욕주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연방정부가 자유주의적 개혁의 의제를 대체로 완수했다고 바라봤다.


미국인은 자신이 자기의 통제권 바깥에 존재하는 거대한 비개인적 세력들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케네디는 이러한 주도성 상실 현상을 자치가 훼손되고 또 자치를 유지하는 공동체의식이 취약해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바라봤다. 케네디는 정치 권력을 탈중앙화해 분산함으로써 개인의 주도성 상실 문제를 바로 잡고자 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신이 사는 시대의 자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우려했던 것은 복지국가가 실현된다고 해도 자치 참여와 밀접하게 연결된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 즉 복지국가가 실현되더라도 자치에 필요한 시민의 역량과 공동체적 자원이 자동으로 확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역량과 자원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케네디는 복지 정책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복지는 어쩌면 “우리가 국내적으로 행한 최대의 실패”일지도 모른다. 복지가 수백만 명의 국민을 의존과 빈곤의 노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을 동료 시민들의 기부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빈곤 문제의 해결책은 정부가 보장하는 소득이 아니라 괜찮은 보수를 지급하는 품위 있는 일자리다.


당대의 주요 정치인들 중 미국이의 공적 삶을 암울하게 뒤덮고 있던 자치 권한의 박탈감을 바라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시민적 덕목의 실천 및 시민적 이상이 무력해졌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진단한 사람은 로버트 케네디 뿐이었다.


케네디는 “백인 노동자 계급과 소통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주의 정치인”으로 일컬어졌다. (...)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저항을 상징하며 “무력감에 빠져 있던 양극단의 두 집단과 동시에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 후보였다. (P.292~299)


도덕주의와 관리주의 : 지미 카터


카터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회복하고자 기존 워싱턴 정계를 뿌리부터 부정하고 나섰다. 그는 미국인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된 이유로 미국 정부의 기만적이고 비효율적인 태도를 지목하며 해결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도덕 차원의 접근법으로 정직성과 개방성을 강조했고, 다른 하나는 관리 차원의 접근법으로 효율성과 능력을 강조했다.


카터가 추구한 정치의 특징인 도덕주의와 관리주의는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둘 다 정부가 추구하는 목적을 밝히지 않았다. 절차적 공화주의의 공공철학과 마찬가지로 카터가 추구한 정치의 정직성과 효율성 프로그램은 실질적으로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목적들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이것은 자유주의적인 것도 아니고 보수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좋은 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정직성과 효율성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이것은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추구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 자체로 통치의 전망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실질적 통치 목적이 없는 카터의 대통령직 수행은 미국인이 느끼는 자치 권한의 박탈감을 심화시켰던 국내외의 여러 사건에 한층 더 취약했다.


1979년 1월에 작성된 <대통령 경제 보고서>에서 (...) “민주주의 정부가 수행해야 하는 주요 업무들 중 하나는 시민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유지하는 것”이며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는 급여나 연금의 가치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과정에 의해” 깍이는 것을 절망적으로 바라봐야 했다고 지적했다.


카터의 연설은 그가 ‘불안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안감의 연설”로 일컬어졌다. (...) 그 연설의 문제점은 대통령으로서 져야 하는 책임에 대한 비난을 다른 데로 돌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적절하게 묘사한 불만을 해결하고 나아갈 미국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질 사태와 사막에서 실패로 끝나버린 구출 작전은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지배하는 것에 익숙해 있던 나라가 자기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돼버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시켜 줬다. (P.300~305)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 대 공동체적 보수주의 : 로널드 레이건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의 지배력을 회복하겠다는 공약으로 호소하며 1981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절차적 공화주의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의 발언은 자치와 공동체라는 미국적 이상에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의 자부심과 결의를 호소한 그의 목소리는 한동안 경제 회복이라는 긍정적 효과와 맞물리면서 정부를 향해 날로 커져만 가던 환멸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레이건도 결국에는 미국인이 느끼는 불만의 밑바닥에 놓인 조건들을 거의 바꾸지 못했다. 집단적 주체성과 공동체의 구조에 가장 큰 위협을 가하던 것은 현대적 삶의 여러 특징이었지만, 그가 추진한 정책들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이건의 업적은 미국 보수주의 내에서 대립되는 두 가지 노선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점이다.

두 노선중 하나는 (...) 자유지상주의적 또는 자유방임주의적 보수주의, 즉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레이건의 또 다른 보수주의 노선은 (...) 공동체적 보수주의자들은 정부가 시민의 특성에 주의를 기울여 시민적 덕목을 형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믿는다.


레이건이 제시한 해결책은 권한과 권력을 연방정부에서 주정부 및 지방정부로 넘기는 “신연방주의”였다. 새롭게 활성화된 연방 체계에서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과 가까운 곳으로 권력이 이동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통제권을 회복할 것이고, 정부 간섭이 줄어드는 만큼 지역사회가 번성할 여지도 더 커질 것이다.


레이건은 대기업은 제외하고 정부에게만 거대함의 저주 딱지를 붙였다. 그는 공동체의 이상을 주장하면서도 경제 권력이 대규모로 커질 때 나타날 수 있는 자본도피* 또는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레이건은 전통에 호소했지만 “실제로 그의 정책은 경제 성장과 규제받지 않는 기업, 즉 전통을 훼손하는 바로 그 세력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목표로 했다.


레이건은 시민적·공동체적 노선을 내세워 민주당과 다르게 미국인의 불만을 성공의 도구로 활용했다. 그러나 온갖 장밋빛 약속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미국인이 가진 불만의 밑바닥에 깔린 조건들을 거의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레이건은 시민의식 차원의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시장 차원의 보수주의자로서 통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인은 자신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고 믿었으며, 경제 성장의 열매도 다양한 경제 계층에 걸쳐 폭넓게 분배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특히 레이건 재임 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79년부터 1992년까지를 놓고 보자면 미국의 가계소득 증가분은 8,260억 달러에 달했으며 그중 98퍼센트가 전체 인구의 상위 5분의 1에게 돌아갔다. 미국 가계 대부분은 경제 기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정치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좌절감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뻔한 결과였다. (P.305~316)




* 절차적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공정한 절차와 규칙에 두는 정치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가치나 목적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 즉,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절차적 공화주의는 대체로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며, 시민들의 의견이 공정한 방식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 자발주의적 자유관은 개인의 자유를 단순히 외부 간섭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며,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에 중점을 둔다. 샌델은 자발주의적 자유관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샌델은 자유를 단순히 선택의 능력으로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참여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단순한 절차적 정당성에 의존하며, 도덕적 기반과 공동체의 가치를 점점 상실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자본도피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자본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정치적 불안정, 경제위기, 정부 규제, 환율 급락, 높은 세금 등의 이유로 투자자들이 자산을 더 안전하거나 수익성 높은 해외로 옮기면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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