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금융은 번영하는 경제에 필수적이지만 그 자체로는 생산적이지 않다. 금융이 하는 역할은 창업 회사, 공장, 도로, 공항, 학교, 병원, 가정 등과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의 사업에서 자본이 돌아가게 할당함으로써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금융이 미국 경제를 지배하게 되자 실물경제에 투자되는 금융 규모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금융 공학에 투자되는 금융 규모는 점점 더 늘어났다. 금융 공학은 종사자들에게는 큰 이익을 안겨줬지만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기업들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물건을 생산하고 이윤을 붙여 판매했고, 또 그렇게 해서 발생한 이익을 새로운 생산 능력에 투자함으로써 돈을 벌었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됐으며 또 여러 소득집단이 경제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나눴다. 그런데 레이건 시대 이후의 금융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기업들이 투자가 아니라 기존 자산의 미래 가치를 놓고 투기를 벌여 돈을 벌었다. 경제사학자 조너선 레비는 이것을 “자산가격 상승의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임금이 정체되고 불평등의 골이 깊어지자 주택 소유자들은 기존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주택이 가진 담보로 돈을 빌려다 썼다.
그런데 이때 경제학자 라구람 라진이 회의적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신용대출의 활성화가 일자리와 소득 증가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부채로 쌓아 올린 번영은 무너지기 마련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정치 기득권층으로서는 “사람들이 신용을 먹고 살게 하라”라는 주문이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자의 몫을 늘리는 것보다 한결 쉽고 또 유리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 주택 거품은 꺼지고 말았다. 그러자 복잡하게 정교하던 금융 체계도 무너지고 말았다. 주택 가격은 하락했고, 2007년에 이르러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8년 9월에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는 것을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식 시장에서는 주가가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수천억 달러 규모의 신용부도스와프를 판매했던 거대 보험사 AIG가 파산 위기를 맞았다.
폴슨과 벤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납세자들의 돈으로, 즉 공적자금을 투입해 월스트리트를 구하는 것만이 또 한 차례의 대공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구제금융 신청을 받아달라고 의원들에게 간청했다. (P.344~349)
선거 승리 후 연설에서 오바마는 “드디어 미국에 변화가 찾아왔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취임하기도 전에 부시 정부가 추진했던 월스트리트 구제금융을 지지했으며 그 정책을 자신의 정책으로 삼았다. 그리고 재임 초기에 가장 중요한 경제적 결정 하나를 내렸다. 1990년대 루빈 밑에서 일하면서 월스트리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금융위기를 초래한 클린턴 시대의 경제자문위원 팀원을 자기 팀으로 임명한 것이다.
오바마는 금융 부문의 힘을 줄이려 하지도 않았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빼앗긴 사람 수백만 명을 도우려고 나서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금융권이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그들의 충고를 따랐다. 결국 오바마 정부는 월스트리트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납세자 및 경제의 막대한 희생과 비용을 감수하는 대신 금융이 지배하는 또 하나의 자본주의 버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더 나은 정치를 펼치겠다는 약속으로, 강력한 이익집단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도 당파적 적개심에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던 오바마였지만 구제금융 문제를 처리하는 그의 태도는 유권자들이 호응했던 시민적 이상주의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 그뿐만 아니라 양극화된 암울한 정치가 이어지며 결국 사람들이 트럼프에게서 어두운 출구를 찾게 되는 경로로 나아가는데 한몫했다.
오바마는 선거운동을 할 때나 재임 기간 내내 말로는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금융위기라는 문제를 민주적인 삶 속에서 금융이 수행할 역할에 대한 시민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풀어야 할 기술적 차원의 문제로만 다뤘다. 이러한 오바마의 태도와 입장 때문에 주류 정당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점점 커졌고 포퓰리즘적 반발이 거세게 휘몰아칠 발판 또한 마련됐다. 구제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별도의 정치적 출구를 찾았다. 좌파에서는 점거운동*과 샌더스의 돌풍으로 드러났으며, 우파에서는 티파티운동*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드러났다. (P.349~355)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재임이 끝난 뒤에 투표장을 찾은 미국인 가운데 75퍼센트는 “부유한 권력자들로부터 나라를 되찾을” 지도자를 찾는다고 말했다.
금융권과 정치권의 기득권층을 향한 대중의 분노에 편승해서는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우리 노동자 계급을 공격해 우리가 가진 재산을 빼앗고 우리나라의 부를 훔침으로써 모은 돈을 소수의 대기업과 정치 단체의 주머니에 넣는다. 그들은 바로 경제 문제 관한 결정에 책임 있는 글로벌 권력 구조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월스트리트를 억제하는 어떤 조치도 시행하지 않았고 노동자 계급을 돕는 일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인프라 관련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트럼프의 금권적 포퓰리즘은 자신의 두 갈래지지 기반을 반영한 것이다. 한 축은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을 바라던 고소득층의 공화당 지지자들이었고, 다른 한 축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며 트럼프가 내걸었던 불만의 정치에 이끌렸던 백인 노동자들이었다. 주류 논평가들 및 정치인들은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불만의 정체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힐러리 클린턴의 유명한 선거운동 표현을 비려 말하자면 “참으로 한심한 인간들”은 편하적이고 자기만족적일 뿐이다. 그 표현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포퓰리즘적 분노의 연료였던 정당한 불만을 외면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사회의 엘리트들, 특히 민주당의 엘리트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의 자리로 나아가는 길을 닦은 대중의 분노에 자신들의 통치 방식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
임금 정체와 일자리 소멸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불평등이 늘어나는 현상도 두 가지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좀먹었다. 첫째, 불평등 때문에 사회의 체계가 조작되기 시작했다. 소득 최상우층이 자기가 가진 부를 이용해 정부의 대의 장치를 자기들 손아귀에 넣었기 때문이다. 둘째, 불평등은 성공의 그릇된 인식을 조작했다. 이런 인식과 사고방식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아픈 상처에 모욕이라는 소금을 뿌렸다. (P.362~366)
돈이 있으면 선거를 살 뿐만 아니라 경제를 지배하는 규칙을 만드는 기관에 접근할 기회도 살 수 있다.
대의정치*가 과두정치*에 사로잡힌 것이 부패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바람에 정부가 공공선에서 멀어지고 또 시민들로서는 자신들이 통치를 받는 방식에 대해 의미 있는 발언을 할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대중과 부자의 의견이 갈릴 때는 부자의 의견이 채택된다.
“일반 시민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부유하고 조직적인 이익집단, 특히 기업의 목소리에 묻혀 아예 들리지 않는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깊어진 개인의 자치 권한 박탈 현상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의 핵심이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금융 주도의 세계화가 낳은 소득과 부의 엄청남 불평등이 시민의식 차원에서 초래한 부정적인 결과들 가운데 하나다. (P.367~369)
최근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에 대한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은 공적 담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막스 베버가 했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운이 좋았던 사람은 자기가 운이 좋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는 자기가 그 운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는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또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고 싶어 한다. 또한 그는 불운한 사람들 역시 그 불운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당연한 몫이라고 믿길 바란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임금이 정체되고 일자리가 해외의 저임금 국가로 빠져나가는 현실 앞에서 좌절한 노동자들에게 미국 사회의 엘리트들은 그럴듯한 조언을 몇 가지 내놓았다. 그중 대표적인 조언이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진행되는 경쟁에서 이기고 싶으면 대학에 가라고 한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서 당신의 소득이 달라진다.“ 또는 ”당신도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조언에 암묵적 모욕이 담겨 있음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의 조언을 뒤집어보면 만약 자신이 대학을 가지 않았고 또 세계화라는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 번듯하게 살지 못한다면, 자신이 맞닥뜨린 실패는 오롯이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즉 ”문제는 우리가 내용을 만들고 체결한 경제 협정에 있지 않다. 문제는 당신이 최첨단 기술의 세계화된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따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인의 3분의 2에 가까운 사람들이 4년제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대학 졸업장이 품위 있는 일과 우아한 삶의 필수 전제조건이 되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엘리트들은 대학 학위를 진보를 위한 수단이자 사회적으로 존중받기 위한 기초 조건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런 그들로서는 능력주의가 빚어내는 오만함과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능력주의가 내리는 가혹한 판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엘리트들의 편협한 태도 때문에 엘리트들을 향한 사람들의 분노는 거셌고, 트럼프가 그들의 분노를 잘 이용한 것이다.
20세기의 상당 기간 좌파 정당은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우파 정당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능력주의 시대에는 양상이 뒤바뀌었다. 지금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중도 정당의 좌파에 투표하고,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이 우파 정당에 투표한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러한 역전 현상이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놀랍도록 동일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피케티는 1990년대 이후로 좌파 정당들이 노동자 정당에서 지식인 및 전문 엘리트 정당으로 변모한 사실을 지적하며 해당 정당들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커져만 갔던 불평등에 대응하지 않았던 과정과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어떠 사람은 가난하게 만들었지만, 능력주의는 승자와 패자를 확연하게 갈라놓았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분열이 사람들 사이에 굴욕감을 안겨줬고, 트럼프를 비롯한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은 이 굴욕감을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했으며 도 효과를 봤다. (P.367~378)
미국 최초의 정당 체제는 공화주의 정부에서 재정이 수행할 역할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부터 시작됐다.
금융 친화적 정책으로 위대한 국가를 만들자던 해밀턴의 전망에 반대했던 제퍼슨과 매디슨을 중심으로 장차 민주당으로 불릴 정당이 형성됐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뒤에 민주당은 금융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와 경제 권력의 집중을 당론으로 수용했다. (P.378~379)
뮤지컬 <해밀턴>이 토니상을 휩쓴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영국은 유럽 연합 탈퇴글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는 트럼프가 시골 지역 및 세계화로 인해 공동화된 산업 지역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비록 트럼프는 대통령을 재임하면서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일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끝까지 그를 지지했다. 물론 4년 뒤에 치러진 선거에서 트럼프는 패했지만 완전히 내평겨쳐지지는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에 어설프게 대응했고 인종 간 긴장을 부추겼으며 헌법상 규정을 무시하는 것을 지켜봤음에도 7,400만 명이나 되는 미국인이 여전히 그가 재선에 성공하기를 바라며 그에게 표를 던졌다. 선거가 끝나고 1년이 지난 뒤에도 공화당 지지자 중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68퍼센트는 자신이 실제로 승리했으며 부정선거로 자신이 이긴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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