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3-3), 에필로그

199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by 박카스

2021년에 바이든이 취임하면서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움직임은 뒤로 물러났다.


취임한 뒤에는 전임자들에 비해 경제학자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러한 바이든의 모습에 대해 정치평론가인 에즈라 클라인은 ”오바마는 정치인들이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좌절했다. (...) 바이든은 경제학자들이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좌절했다“라고 했다.


바이든이 의회를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결과 이러한 야망 중에서 바이든 시대에 실현될 가망이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또한 기업 로비스트들과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계층이 의회를 지배하면서 의회는 변화를 법제화하기 위한 기구가 아니라 변화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P.383~384)


팬데믹은 더 깊고 미묘한 변화를 가져왔다. 바로 신자유주의 사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장, 즉 시장 매커니즘이 공공선을 규정하며 또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이 주도하는 세계화 지지자들 스스로 자신들이 세상에 내놓은 경제협정들을 인간의 정치를 초월하는 자연적 사실들이라고 끈질기게 강요한다는 뜻이다.


만약 정치가 경제적 삶의 고정된 명령에 적응하는 것이 기본이고 실제로도 그렇다면 정치는 민주적 시민보다 금융 공학 전문가나 기술 관료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낫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세계화 시대는 이처럼 정치를 좁게 축소한 개념으로써 정의됐다. (P.385~386)


정치는 필요한 것과 가능한 것 사이에 일어나는 지속적인 협상 과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케인스가 말했던 요점이 우리의 정신을 번쩍들게 만든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우리가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 우리의 정치 지형에서는 진영이 양극화돼 양쪽이 서로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방향성과 같은 중대한 질문들을 놓고 심사숙고하는 데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팬데믹 기간에 비행기 탑승객의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두고도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인류세* 시대에 자치를 이루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재정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기도 한다. 경제를 잘 다스린다는 것은 국민총생산을 극대화하고 경제 성장의 열매를 적절하게 분배할 방법을 알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서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세계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 상업과 교환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가르쳤다. 시민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식을 고민한다는 것이고 또한 자기를 온전하게 인간적 존재로 만들어주는 미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자유주의는 정치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지나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자연의 불변적 진리로 보였던 것이 지금은 자치의 대상이 됐다. 필요성과 가능성 사이의 경계는 우리의 발아래서 이동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온갖 힘들의 형태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시민적 열망은 이제 우리에게 여름이 지나면 과연 가을이 올 것인지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또 판단하라고 말한다. (P.387~390)




* 비교우위 경제 이론은 한 개인이나 국가가 다른 개인이나 국가에 비해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더 낮은 기회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을 때, 그 분야에 특화하여 생산하고 무역을 통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가 처음 제시하였다.


비교우위는 절대우위와는 다르다. 절대우위는 어떤 재화를 더 효율적으로, 즉 더 적은 자원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반면, 비교우위는 어떤 재화를 생산할 때 덜 희생되는 기회, 즉 기회비용이 더 낮은 경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 국가가 모든 재화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더라도, 다른 국가와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 이론은 국제무역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원리 중 하나로, 각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무역을 통해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 사회는 두 가지 대조적인 대중운동을 경험했다. 하나는 보수 진영의 ‘티파티(tea party) 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진보 진영에서 일어난 ‘점거(Occupy) 운동’이다. 이 두 운동은 각각 정부의 역할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드러내며 미국 사회의 깊은 이념적 분열을 상징했다.


티파티 운동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등장했다. 이들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 특히 경기부양책과 건강보험 개혁(일명 오바마케어)에 반발하며, 세금 감면과 작은 정부, 헌법적 자유의 수호를 주장했다. 티파티는 기존 공화당보다 더욱 강경한 보수 성향을 지닌 풀뿌리 운동으로 발전했고,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하원 다수당 탈환에 기여하는 등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반면 점거 운동은 2011년 뉴욕의 월가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진보적 사회운동이다. “우리는 99%다”라는 구호 아래, 이들은 금융권력의 탐욕과 소득 불평등을 비판하며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와 경제 정의를 요구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대형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반면 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운동의 원동력이었다. 정치 조직이 아닌 느슨한 시민 참여 형식으로 전개되었으며, 명확한 입법 성과는 없었지만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공론화를 이끌었다.


두 운동은 오바마 시기의 미국이 겪은 경제적·이념적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문제 삼았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시장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이처럼 티파티와 점거 운동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시대의 목소리였다.


* 대의정치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여,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들이 대신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체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은 이 대의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의정치는 다수 시민의 의사를 효율적으로 수렴하고, 법률과 제도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따라서 국민의 동의와 참여가 정당성의 기반이며, 대표자들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책임이 있다. 정기적인 선거, 언론의 자유, 의회 활동 등이 이 체제의 핵심 요소이다.


과두정치는 소수의 사람들(귀족, 군사 엘리트, 경제 권력자 등)이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다. 과두정치는 명확한 국민적 합의나 민주적 절차 없이 통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대중의 참여는 제한적이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스파르타의 귀족 지배나, 현대에는 일부 권위주의 국가에서 재벌·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장

악한 사례 등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결국, 대의정치는 국민이 권력의 원천이며 대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에 참여하는 제도이고, 과두정치는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다수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운영되는 체제다. 겉으로는 대의제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과두적인 운영 구조를 가진 경우도 있어, 그 차이를 분별하는 데에는 권력의 투명성과 시민의 정치 참여 수준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 공적 담론은 사회 구성원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공공의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필수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다.


공적 담론은 단순한 개인 의견의 표현을 넘어, 다수의 시민이 공공의 장에서 공동체의 문제를 숙의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은 언론, 토론회, 시민단체 활동,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며, 정치인, 언론인, 전문가,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적 담론을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는 시민들이 평등한 위치에서 합리적 토론을 통해 공동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상적인 ‘공론장(public sphere)’을 제시했다. 이러한 공론장은 국가 권력이나 시장 논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비판적 사고를 통해 형성된다.


공적 담론은 시민 의식을 높이고,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며, 다양한 이해관계가 조율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거짓 정보, 편향된 미디어, 혐오 표현 등의 문제로 왜곡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건강한 공적 담론을 위해서는 정보의 투명성, 표현의 자유, 그리고 상호 존중에 기반한 토론 문화가 필수적이다.


*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과 생태계, 기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기존의 지질 시대 구분은 자연적인 지질 변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인류세는 인간이 주도하는 변화가 지구 시스템 전체에 중대한 흔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에필로그


10회에 걸쳐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징어 게임』의 첫 번째 게임이 끝난 후,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충격 속에서 투표를 합니다. 게임을 계속할지, 아니면 멈출지. 천장에서 거대한 유리구슬이 내려오고, 안에는 현금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선택을 합니다. 돈을 좇아 ‘초록색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과, 생명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빨간색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극단적인 가치 충돌을 목격했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한 투표의 절차를 넘어서,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징어 게임』 속 투표 장면은 그저 다수결의 장면이 아닙니다. 그 장면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묻는 집단적 성찰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와 능력주의가 만든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성공은 실력 덕분이고, 실패는 개인 책임이라는 믿음 아래,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소수는 “멈추자”고 말합니다. 돈보다 생명, 이익보다 공동선을 택하자는 목소리입니다. 그 외침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민주주의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이에게 참여의 기회와 존엄을 보장할 때 제대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단순한 이해득실을 넘어, 공동체를 위한 고민이 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 것이 됩니다.




다음 회에서는 전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를 분석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민주적 가치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책, 바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를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쿠데타가 아닌, 합법과 제도 속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정치적 적대가 어떻게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지, 민주주의가 스스로 자멸해 가는 과정을 자세한 예시를 들며 논리적으로 보여줍니다.


꼭 함께 읽고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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