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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Oct 04. 2015

누가 그를 술자리 칼퇴남으로 만들었나?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파리만 휑휑하던 식당가에는 어느새 어스름과 함께 하루의 고단함을 함께 짊어지고 온 셀러리 맨들이 가득하다. 다크서클이 눈 밑까지 내려온 주중의 중간. 소위 말하는 ‘술 날’ 이다. 오늘한번 먹어주면 내일 힘들어도 버틸거고 그렇게 버티면 금요일이 된다. 뭐 먹으러 갈까? 라는 오고가는 이야기 속에 오늘은 곱창이 당첨!


고지혈증에 동맥경화 , 그리고 비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일단 자리에 착석한다.

“이모~ 여기 곱창 3개랑 소주하나에 맥주 3개 주세요. 참 술 먼저 주세요. 처음처럼이랑 카스두병이요”

너무 당연하단 듯이 술부터 가져다주는 곱창 집 종업원. 으레 한마디 인사말을 건낸다.

“왜 오랜만에 왔어~?”

“아..바빠서요. "

대답을 하니 옆 친구가 질문한다.

”여기 자주와? 아는 사람이야? 친해?“

“아니 알기는 개뿔..그냥 인사 하는거야. 야 술 나왔다 먹자”

여기서 술을 전담으로 제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분명 하나는 있다.

열심히 물 잔에 물을 채우고, 젓가락을 휴지하나씩 뽑아서 얹는 친구, 그리고 술잔과 술이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자기 앞으로 정렬시키는 친구, 또 하나는 화장실 다녀온다면서 담배하나 사오는 친구...작은 곱창테이블 위에 자기만의 포지션은 존재한다.

소주조금에, 맥주 조금. 그렇게 우리는 ‘소맥’ 이라는 하늘이 창조하신 최고의 술을 만들어 낸다. ‘소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꼬냑도, 조니워커 블루도 , 보르도 최고급 와인도 물리칠 수 있는 한국 셀러리 맨의 장인정신으로 개발된 최고의 양조법이 아닌가? 술을 먹는 목적으로 고민을 이야기 하거나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단계는 지났다. 우선 얼큰하게 취한상태에서 서로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 잡담을 나누면서 하루종일 거미줄이 그득하고 수심이 가득했던 입과 뇌를 운동 시키는게 주된 목표다 . 그러고 나서 직장인에게 아주 중요한 것!. 특히나 평범한 셀러리 맨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각하지 않는 출근모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생 때처럼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할 수 없다. 열두시 전에는 취침해야 수면시간이 6시간이 확보된다. 따라서 현재시각 7시부터 11시까지 딱 3~4시간 깔끔하게 마시고 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얼큰하게 취하되 기분이 좋아야 한다.


맥주는 배만 불러오고 화장실만 간다. 소주는 취하긴 하는데 그냥 취하기만 하고 쓰다. 맥주의 목넘김과 소주의 얼큰함이 공존하는 무언가가 없을까? 월급뻔한 셀러리 맨들의 이런 고민을 해결하고자 수천만의 애주가들이 만든 최고의 술이 바로 소맥이다. 이런 소맥도 야근이 갑자기 떨어진 날은 먹을 꿈도 못꾼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더욱더 값질 뿐이다. 회식 따라가면 술을 먹는게 아니라 부담과 스트레스를 먹으니, 동료나 친구끼리 삼삼오오 먹는 이 소맥의 향연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한국인 노동시간 OECD국가 중 가장 오랜시간 순위로 2위이다. 가장 낮은 네델란드의 무려 800배나 높은 시간이다.


어느 외국인이 서울의 남산타워에 올라가서 ‘야~한국의 야경은 너무나 아름답군요.’ 외국인을 수행하는 한국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야근이 만들어낸 야경입니다.’ .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지만, 웃프기도 하고 그냥 슬프기도 하다. 오늘걱정과 스트레스를 안고가지 않으려면 술자리 또한 짧고 강하게 먹어야 한다. 빨리 먹고 빨리 취해서 빨리 가야지 빨리 출근하니깐 말이다.


한시간도 안돼서 소맥을 벌써 6잔이나 마셨다. 캬. 점점 기분이 올라오는 것 같다. 십원짜리 욕도 나오고 , 남자들만 모인 곳에서는 으레 여자이야기도 나온다. 한 친구가 담배를 입에 무니 주인이 요즘에는 금연이니 나가서 피워달라고 한다.

“나 한 대만 피고 올게 .”

“야야야야. 잠시만 나도 한 대 줘 봐라 , 개똥아 자리지키고 있어 . 우리 담배한대 피고 올게” 술먹다가 취할 시점에서 피우는 담배는 또 얼마나 마약스러운가. 하늘이 핑 ~ 돈다.

일단 한 대 피우고 와서 , 다시 시작한다. 소맥으로 소주 한 병이 끝나니 이제 배가 어느정도 부르다.

“야 우리 이제 소주먹자.” 한 친구가 제안한다.

배도 부르고 맥주먹으면 머리도 아프니 이제 소주를 먹기로 하고 소주만 먹는다.

또로로록.

‘찰랑이는 소주잔에 소주한잔처럼 우리의 삶도 찰랑찰랑 하구나...‘

술에 취해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상념에 잠기면서 쓴맛을 삼킨다.

무슨 엄청난 인생의 고난을 삼키는 것 마냥 ‘캬~’라는 소리와 함께 오만상 인상을 찌푸린다.


소주를 약 두병 더 비웠을 쯤 모두에게 각자의 계산이 선다.

지금이 10시니까. 집에가면 11시. 그럼 아직 시간이 좀 있네

입가심으로 맥주나 두어잔 하고갈까?

동상이몽 상태다. 눈빛을 교환하고 한 친구가 말한다.

“맥주 한잔만 더하고 갈래?”

“콜!” . 어찌나 이럴땐 호흡이 찰떡궁합인지. 봅슬레이 나가면 우승할 태세다!

물었다는 사실이 민망할 정도로 바로 답이 날라온다.

치킨집에 가서 오징어와 오백 3잔을 시킨다.

학생때는 치킨집에 오면 으레 치킨만을 먹어야 했는 줄 알았는데 ,

이런 식으로 입가심겸 맥주 먹으러 오니까 치킨말고 간단한 육포나 오징어가 땡긴다.

돈이 아깝든 말든 우리는 그냥 앉아있으려고 온거니까.

맥주 잘 마시는 친구가 아주 벌컥벌컥 마셔댄다.


이놈으로 말하자면, 맥주를 그 자리에서 무려 5000cc나 먹어대는 맥주괴물이다. 맥주를 먹기 시작하면 좀비가 되어서 밤새 사람을 안 보낸다. 그런 무시무시한 놈이다.

11시가 가까워지자. 한 친구가 말한다.

“야 우리이제 집에가자”

놀랍게도 이 말을 하는 친구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그 친구다.

우리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제는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자꾸 앉아있으면 마시고 싶고, 그러면 내일 출근 때 사고를 칠 수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제어하다가 생긴 버릇인 것이다. 오히려 이놈은 이제 11시만 되면 집에 간단다.

금요일이나 주말에도 일찍 가려고 한다. 또 다른 버릇이 생겨버린 것이다.


각자 계산을 하려는 찰나에 그래도 돈 많이 버는 잘나가는 대기업친구가 오늘은 쏜댄다.

얻어먹고 하나는 지하철역으로 하나는 버스정류장으로, 하나는 대리기사를 찾는다.

대리기사를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 담배를 피우며 함께 기다려준다.

모여서 얼큰하게 취했지만, 내일 일에 대한 생각은 또렷하다.

“아 . 그냥 우리 사업이나 할까?”

“그럴래? 하자 . 젠장 못해먹겠다.”


진심인데 실현 불가능한 꿈을 의례절차처럼 이야기 하는 사이 대리기사가 온다.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친구를 보내고 우리도 나선다. 담에 보자면서 인사를 하고 나는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고 평소에는 듣지도 않던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은 꼽는다. 내가 옛날에 대학교 신입생때 들었던 노래를 듣는다. 술 취하고 듣는 그 음악은 그야말로 시간을 거꾸로 가게 해주니까 생긴 버릇같다. 노래를 들으며 , 맥주귀신인 친구가 이제는 술자리 칼퇴남으로 변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나도 내일 알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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