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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Oct 06. 2015

아련한 상실을 기억하다

 간장 참기름 밥과 동네누나

언젠가는 한번 쓰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련한 기억은 내 삶을 팽팽하게 붙잡고 있다.


유년기 시절 5살 시절 , 부모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많은 사람들이 유년기의 경험이 훗날 인생의 향방을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했던 다섯 살. 나는 엄마와 함께하지 못했다.

어려운 형편에 간염이 걸린 엄마는 요양을 갈  수밖에 없었다.

고된 시집 살이에 약한몸이 버텨내질 못했기에 , 어린 핏덩이와 떨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워낙 몸이 약하셨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나와 동생은 항상 놀이터에서 놀았다.

단칸방이 싫어서  그랬다기보다는, 흙을 좋아했던 형제였기 때문에 그랬다.

하루는 동생과 내가 놀이터 흙을 열심히 파서 진흙을 꺼내어 만들고 있을 때였다.

“얘, 이름이  뭐니?”.

다정하고 보드라운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또렷하게 박혀있다.

“제 이름은 박지익 이고요, 저는요 5살이고요, 동생은  3살이에요”.

또랑또랑하게 말하는 내가 귀여웠던지 작은 손으로 우리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밥은 먹었니?”

그때가 몇 시였 던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 배가 고팠던 것은 확실하다.

“가자 , 누나가 맛있는 거 줄게”.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사람을 무작정 따라나선건 참 위험할 수도 있었다 싶다.

하지만, 그때 그런 게 있었겠나.

무작정 동생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누나의 손을 잡고 나섰다.

길 모퉁이 작은 문방구 상가건물 3층이 누나의 집이었다.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니 동생이 힘들어서 그런지 울음을 터뜨렸다.

코뭍은 동생의 얼굴을 닦아준 건 내가 아니라 , 이름 모를 누나의 고사리손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집 문을 열었을 때 , 해는 안 들어오고 매우 좁은 집이었던 사실을..


덜컹거리는 철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깐 앉아있어. 밥줄께”

나는 멍청했던 건지 순진했던 건지 동생의 얼굴만 조물딱 거리며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동생 볼을 만지는 게 나의 잠자는 버릇이며 손버릇이었다.)

그러기를 수분이 지났다.

우리 앞에 놓인 건 간장과 참기름이 떡져 나온 밥이었다.

본래는 계란이 있어야 하는데 , 계란을 봤던 기억은 없다.

난 동생에게 한입 먼저 떠다 줬다.

나의 모습이 기특했던지 , 누나는 밥을 한 그릇 더 가지고 와서 우리 앞에 뒀다.

흙이 잔뜩 묻은 손으로 밥을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느낌이 서른이 넘은 지금도 생생하다.

밥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온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건 몇 번이고 그렇게 밥을 먹었고, 꽤나 우리를 귀여워해 줬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노는데 누나 집 쪽에 요란한 가구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사를 가려고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의식적으로 느껴본 이별의 감정 이었던 것 같다.

달려가서 안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달려가기엔 낯선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내 용기가 부족했다. 다음날부터 내가 느꼈던 상실감은 다섯 살의 꼬마의 감정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다.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고 , 사랑이라면 사랑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그리웠다.

지금은 그로부터 무려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세 번째 변해갈 수 있는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래도 이따금씩 너무 생각이 난다.

간장참기름 비빔밥을 종종 해서 먹는건 그때의 그리움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일종의 강제 일지도 모르겠다.

명절날 기억을 더듬어 그 당시 동네에 가 보았다.  형상과위치가 오롯이 기억나지만, 이미 그건 내 기억속에만 존재 하는 것이었고, 성인이 되어 눈앞에 드리워진 풍경은 낯설다 못해 어리둥절하기 까지 했다.

그 누나도 날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 해 주었던 사람으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훗날 단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누가 물으면 , 난 한치의 고민도 없이 이름도 모르는 동네 누나를 꼽을 것이다.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던 내 어린시절 설렘을 원망하고 아쉬워할 따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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