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익 Jun 10. 2018

'그냥'

어색함도 침묵도 싫었다. 침묵이 가져다주는 적막함만큼 불편한게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준비했어야지 마음에 편했다. 관계에 임하는 나만의 준비라고 해두면 좋을 것같다. 싱거운 사람이 되는건 나에게 열정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느낌을 줬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를 그럴싸하게 했어야 했고, 눈을 부라리면서 찾아다녔다. "이건 어때?" , " 이 사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등등 무심코 날아오는 질문에 나만의 논리를 가지고 질서정연하게 이야기를 해야할 것만 같았다. 


'그냥' 이라는 말은 참으로 무책임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것도 아~주 오랜기간을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냥'이라는 말이 그렇게 무책임 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것 같았다. 피로감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하기엔 그냥 넘길만한 일들이 참으로 많은것 같다. 


왜 우리는 과도한 책임감과 포장으로 스스로를 나타내려 하는지 조금은 의심이 들었다. 불편한건 불편한것이고, 싫은건 싫은거다. 그리고 , 별 뜻이 없는건 그냥 별 뜻이 없는것인데 말이다. 성격마다 조금씩은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힘들게 정리를 하면서 살아왔던것 같다. 못하면 못하는대로, 잘하면 잘하는대로 하면 하는거고, 안되면 안되는거다. 무책임과는 다른범주다. 해야할일을 하지 않는것, 내가 내뱉은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것. 이것은 참으로 무책임한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억지로 보여주는건 무책임함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조금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할 수는 있을까. 


나를 속이는 작은 행동들이 때로는 불편함에 맞서는 용기를 앗아간다는걸 알게 되었다. 살아가는데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용기는 솔직하고 담백한 내 언행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그래야지만 난 나를 오롯이 복잡한 사회와 관계속에서 지켜낼 수 있었다. 결국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고, 나를 포장하기 위해 쏟아부었던 노력들이 조금은 아까웠다.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될 과정들 이었겠지만 그게 지나치게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때는 속이좀 쓰렸다. 


하나씩 집착을 버리는 과정속에서 꾸려나가야 한다는 강박도 버리게 되었다. 집착을 버린다는 것이지, 삶의 열정을 포기한다는건 아니니깐 말이다. '내가 진짜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그간 놓치고 있던것 무엇인가' 등등 오히려 조금씩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었다. 정말로 어떠한 것은 '그냥'이라는 대답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한다는것, 하고있다는것, 그 자체로도 성립할 수 있는 대답이고 내 행동의 이유이다. 


차근차근 그 상황에만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지금의 '그냥'이 괜찮은 미래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씩 조금씩 잔뜩 껴 있던 기름이 빠지고 담백하고 또 담백한 사람이 될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기대와 함께. 평온함이 가득하고 사랑이 가득한 표정으로 삶을 대면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화도 조금은 줄이고, 욕심도 조금씩 버리고 우선은 안으로 집중 해야하는 훈련을 해야지 나의 빛깔이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그냥' 이라는 대답이 가지는 편안함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난 오늘 그냥 열심히 살 뿐이고, 그냥 내 할일을 할뿐이다. 

그렇다고 엉망진창은 아니니까.

아무런 이유가 없을때 모든게 이유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깐.




작가의 이전글 잡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