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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Feb 19. 2021

바보를 위한 삶

-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버린다.

  유년시절 동네에 바보아저씨가 한명 있었다. 늘 같은 멜빵 청바지를 입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학교주변을 서성이던 아저씨였다. 아저씨라고 해도 지금 내 나이보단 어렸을 것이다. 쨋든 바보아저씨는 등하교중인 우리들을 막아서곤 했다. 흐흐 웃으면서 친구 안녕 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바보다 야 저리가자’ 라며 피하기 일쑤였고, 바보아저씨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바보아저씨가 왜 바보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많은 소문이 있었다. 명문가에 태어나 기대를 한몸에 받는 학생이었지만 사고가 나서 바보가 되었다는 말을 하는 친구도 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자해를 하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뭐가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바보아저씨로 통했다.

      

얼마전에 우연히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봤다. 주말에 채널을 돌리다가 무심코 끝까지 봤다. 수십년전에 내가 봤던 검프는 분명히 바보였다. 그냥 달리기만 잘하는 멍청한 바보였다. 대학생때 봤던 검프는 착한 바보였다. 바보라서 하나밖에 모르는 성격때문에 운이 좋아 이것저것 성공을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전에 봤던 검프는 내가 안쓰러워 할 대상이 아니었다. 검프는 신념이 있었고 순수했으며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걸 가진 멋진 인간상이었다.

     

바보라는 말은 타인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어휘다. 으레 바보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고 타인을 무시할때 바보라는 말을 쓰곤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바보라는 말이 마냥 나쁜것 같지 않다. 누구도 나를 바보라고 하지 않지만, 나는 때론 바보가 되고싶다.

     

잘 보이려고 꾸미고, 감언이설을 습관처럼 하고 거짓웃음을 하는 나는 바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누구도 나를 바보라고 할 수 없다. 나 또한 누구에게도 바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바보라는 말을 하면 실례가 될까봐 그런걸까? 아니었다. 바보는 더없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바보가 될 수 없다.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바보가 될 수 없다. 있는 그대로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만 바보가 될 수 있다. 바보는 순수를 간직해야 한다. 인간 본성의 따스함을 조건없이 주는 마음이 있어야만 바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바보가 될 수 없다.

      

바보가 되기 위해서는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위선을 버려야 하고,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하고, 쓸데없는 집착을 버려야한다.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을 버려야 하고,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이 밖에도 바보가 되기위해서 버려야 할 것은 족히 수백수천개는 될 듯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바보가 되기 위해서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길은 돈을 많이 버는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는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바보가 되고자 하나씩 때묻은 욕심을 버려야만 한걸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지금 행복한 순간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모른다는게 인생이 가진 매력이다. 그래서 오늘이 소중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하다는 진리도 깨닫게 되었다. 염세나 허무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방식의 행복을 추구할 시점이 온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바보의 순수성을 찾아가는 여정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순례길의 첫 걸음이라 생각한다. 검프의 삶이 가치있는 이유는 부바검프로 큰 돈을 벌고 애플주식을 샀기 때문이 아니다. 단 한번도 순수를 잃지 않았고 바보로 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손가락질 하고 피하며 놀려댔던 오래전 바보아저씨는 우리보다 더 따듯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 한번도 가져보지 못할 순수함을 간직하고 계셨을지 모른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말하는 것도 순수를 바탕으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도 바보가 되고자 하나를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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