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익 Nov 18. 2019

돼지국밥과 이부장

어떻게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있는가.

들리는 말이 전부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이면의 삶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이라 생각되어온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그게 일종의 습성인지, 아니면 우월의식인지 몰라도..


철물점이 가득한 거리. 굳게 닫힌 셔터문이 거리를 더욱더 적막하게 만든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점 하나 없는 8차선 도로 양쪽으로 굳게 드리운 어둠

드문드문 있는 불빛은 텅빈 주차장이 무색할 만큼 식당마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다.

건욱은 오랜만에 온 고향에서 저녁을 먹고 가려고 한다. 지금 출발하면 휴게소도 문을 닫을 터이고

전날 먹은 술을 제대로 해장도 못한터라 든든한 국밥을 먹고 가려던 참이다.


'딸랑딸랑' 문여는 소리가 유독 크다. 문을열고 바닥이 끈적한 한 가게에 들어갔다. 서울에는 요즘 좌식이 없어지는 추세인데 건욱이가 들어간 식당은 테이프로 덕지덕지 보수를한 열개 남짓의 테이블이 들어찬 곳이었다. 일하는 조선족 아주머니 한명, 그리고 주방 할머니 한명. 눈에 보이는건 저기 테이블에 마주앉은 아저씨 두명. 주변이 마땅찬아 그냥 먹고 가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 아주머니 여기 돼지국밥 한그릇이요."

주문을 받는둥 마는둥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돼지국밥 하나가 있다고 말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물티슈를 가지고 식탁을 닦으니 거무틔틔한 때들이 물티슈에 묻어 나왔다. 수저를 놓고 물을 한모금 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위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곳. 어릴적 할머니 댁에서 보던 넘기는 지역농협 달력만이 시계와 벽을 공유하고 있었다. 티비소리 조차 없는 식당. 심지어는 을씨년 스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간간히 들리는건 건너 테이블에서 바주하는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뿐.


"아니, 내가 그래서 김과장한테 그라지 말라고 했습니더. 근데 결국 김과장이 저보고 그지랄을 하데예"

갑자기 돼지고기를 굽다말고 건너편 술자리의 다소 젊어보이는 아저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아니 그라잉께 , 내가 너무 몰아 세우지 말라 안캤나. 가는 원래 맺힌게 많은 아라서 그래 지랄하면 더 지랄 한다니까. 이부장 니가 못 참을게 그래 됐다 아이가"

"하..참 형님도 우째 그래 말합니까. 분명히 김과장 그새끼가 내한테 못배웠다고 지랄했다 아입니까. 행님은 그걸 보고 가만히 있으란 말인교?"

"그 김과장이 그래도 큰 회사서 왔다고 우리 무시하는거 안다. 내 다 아는데 그래도 우짜겠노 요즘에 그렇게 사무실 안 빠지고 나오는게 어디고"


들으려고 들은건 아니지만, 건우는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자꾸 들리는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는 순간 돼지국밥은 어느새 건우 앞에 놓여져 있었다. 다데기를 넣으면서도, 국밥을 휘저으면서도 자꾸만 들리는 이야기가 쉽사리 걸러지지 않았다. 배가 고팠기에 한입 두입 국밥을 먹고 그릇이 비워질 때쯤 다시 건녀편 술자리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하..진짜 내가요 형님. 이래 살게 아인데 이래 살게 됐습니다. 저도요 핵교를 나오고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있잖아예.. 전 지금 형님하고 있는 이 회사가 너무 좋습니다. 이걸로 지는예 애들 밥먹이고 마누라 단풍놀이도 보내고 했습니다. 근데 그 김과장 개새끼가 자꾸 무시하지 않습니꺼..."

"그래 안다 내가 다 안다니께. 나도 니가 있어서 너무 좋다. 그라이까 그냥 김과장 금마 그거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우리는 우리 하는대로만 하자. 내가 마 그냥 확 잘라 버리고 싶어도 어디 그게 쉽나. 니도 알잖아. 그라지말고 자자 한잔 더 받으라이"


처음에는 분노가 느껴졌다면, 점점 한탄과 서러움이 느껴지는 대화가 들렸다. 그도 그럴것이 알싸하게 들어간 술이 그들의 마음을 순하게 만들었을 테니까. 한잔 두잔 들이키는 사이 건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12시가 되기전에 서울로 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몰려오는 피곤을 뒤로하고 한잔이 생각나던 건우였지만,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 재빠르게 움직여야 할 터였다.


"아주머니 여기 계산이요"

"칠천원이요"


카드를 꺼내려던 건우의 손이 다시금 지갑으로 갔다. 만원짜리 한장을 주고 거스름돈을 기다리는 사이 대리운전 광고명함 옆에 있는 이쑤시개를 하나 짚어 들었다. 구두를 꺼내고 낡은 구두칼로 구두를 신으려는 찰나 뒤에서 만취한 이부장이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하 진짜 내가 그라믄 요 앞에 노래방에 자주 가는데가 있는데 거기에 갑시다 . 제가 살께예.  거기 순옥이라고 있는데 진짜로 참하다니깐예."

"아 야야 니 마이 뭇다. 빨리 드가서 자고 내일 늦지나 마라. 우리 마감 맞출라마 내일 나와서 쌔빠지게 또 일해야 한다 아이가"

"아 , 아입니다. 아직 안취했어..예.. 내가 전화를 한번 해놓을께예.."


구두칼이 듣지 않아 구두를 구겨신고 다시 나오는 문 뒤로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맛있네' 라는 생각으로 흔들리는 문을 바라보니 아직도 전화기를 뺏었다가 , 들었다가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우는 이쑤시개을 부러뜨리고 버리곤 곧장 차로 다가갔다.

한시간이나 흘렀지만, 8차선 도로의 어둠은 여전히 낯설었다. 차를 끌고 그곳을 나서며 보이는 드문드문한 불빛속에서 식당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그렇게 불빛이 사라질때까지 건우는 식당에서 마주한 아저씨들을 궁금해 했다.

작가의 이전글 할매들의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