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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Mar 22. 2022

무기여 잘 있거라(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릴적에 알던 '무기여 잘 있거라'는 단순히 전쟁의 참상과 허무를 이야기 하는 것에 불과했다. 미국 국적임에도 이탈리아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다시금 읽고나서는 전쟁의 비극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비극을 이야기 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음담패설도 나누고,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전쟁으로 가득찬 배경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 즐겁게 위안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낯설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하다. 남자들이 모여있으면 으레 이성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전쟁이라곤 해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주인공인 헨리 또한 캐서린이라는 간호사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다.


결국 나에게 있어 무기여 잘 있거라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가볍게 생각하며 만난 주인공이지만, 시간이 흘러갈 수록 점점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로 보내는 마음을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헨리(남주인공)와 캐서린(여주인공)은 서로에 대한 대한 마음이 깊어지기 시작한 시점에 이별하게 된다. 헨리가 부상에서 회복해서 다시 전장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며 기약없는 이별 앞에서 얼마나 슬펐을까. 감히 상상이 되질 않는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캐서린을 찾아온 헨리는 전쟁에 더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둘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강을 거슬러 가기로 했다. 오로지 작은 보트에 서로를 의지하며 풍랑을 이겨내며 스위스로 건너간다.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무사히 도착한 스위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전쟁은 신문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고, 헨리는 전쟁에 대한 혐오로 신문기사 조차 읽기 싫었다. 그렇게 둘은 스위스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뱃속에는 아주 귀여운 둘만의 아기도 자라고 있었다.


이 행복함이 계속되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의 후반부에 그들이 서로 아껴가며 스위스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장면들이 나온다. 끊임없이 사랑한다 표현하고, 함께 손 잡고 햇살을 맞으며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스위스에서의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며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모순적이게도 묘한 불안과 긴장감을 가져다 주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대화의 흐름속에서 알게모르게 불안감을 내포하도록 작가가 의도했던게 아닌가 싶다. 이유야 어찌됐건 결국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출산이 임박해 병원으로 간 캐서린은 쉽게 분만을 하지 못한다. 결국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숨을 거두고, 산모인 캐서린 마저 숨을 거두게 된다. 캐서린이 숨을 거두기 전에 헨리는 기도 한다. 사실 헨리가 처음부터 이토록 진지하게 캐서린을 사랑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헨리는 진정으로 캐서린을 사랑했고, 함께 보트로 국경을 넘으며 헨리에게 캐서린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헨리가 하는 기도는 담담한듯 하지만 처절할 정도로 간절했다. 기도를 보고 있노라면 내 손에도 땀이나고 살아나길 함께 기도하는 듯한 착각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기도가 끝이 날때쯤에는 책장이 한장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지막 한장이 남았음을 느낄때 굳이 읽지 않더라도 캐서린은 살아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서 받았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조각상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왔고 병원을 뒤로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그 어떤 영화나 소설의 마지막 장면보다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책을 읽으면 교훈을 얻거나, 시사점이나 의미를 찾는것에 강박을 가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럴필요가 없다는 것을 점점 느끼는 요즘이다. 그냥 이야기 속에, 그리고 인물에게  빠져서  삶을 살아보는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느낄  있는 수많은 감정을 하나씩 꺼내어서 공감하고 느껴보는 것이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빛바랜 책장에서 꺼내어든 무기여  있거라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함께 느낄  있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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