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익 Mar 23. 2022

원미동 사람들(양귀자)

그림을 보지 않아도 그려지는 이야기가 있다. 단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보고나면 머릿속에 상상되는 이야기가 있다. 비록 이야기지만 우리가족이 혹은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원미동 사람들은 바로 그런 이야기다. 소설이지만 소설같지 않은 이야기를 여러개 담아냈다. 실제로 존재하는 동네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2022년 지금의 풍경은 초등학교때 그림시간에 종종 숙제로 그렸던 미래도시와 같다. 사람들이 다니면서 전화기를 다 가지고 있고, 심지어 전화기로 인터넷도 하고 실시간으로 이야기도 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새로운 세상 안에서 서로 소통한다. 길에는 킥보드라고 불리는 희한한 이동수단이 미끄러지듯 길거리를 활보한다. 정말로 그림으로 그렸던 모습들이다. 반면에 원미동은 옛날이다. 1970~80년대 모습들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동네다. 집들도 , 길들도, 마트도 전부 다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상이다. 그래도 너무 재미있고 친숙하다.


원미동사람들은 그야말로 부천시 원미동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토박이 동네주민도 있고, 서울에 직장을 다니면서 집은 원미동에 자리하며 통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설은 연작소설이다. 원미동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되,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별도작품 형식으로 연재 되었던 소설이다. 모두 독립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등장인물은 원미동 사람들이라는건 변함이 없다. 그래서 개별 이야기들은 원미동을 중심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너무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 걸까. 아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 친근하게 그려줬기 때문이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하는 3살 어린시절 셋방살이 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 삶과 겹치지 않지만 이질감이 전혀 없다. 세월이 흐르든 아니든 사람 사는 것은 결국 비슷한 행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친숙함으로 다가 왔을 수도 있다.


소시민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  수도있다. 대단한 성공아니고 찢어지게 가난한 삶도 아닌 여유와 찌듦의 중간  어디에서 살고있는 이야기다. 원미동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묘한 동질감과 평온함을 느꼈던  같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을 작중인물들도 하고있다. 같이 어울려서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작중인물들의 모습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르게 살려고 발버둥 치지만 경제적 부유함, 배움의 깊이나 사회적인 성공과는 다른 관점이다. 


이야기중에 '비오는 날에는 가리봉동에 간다' 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딱 4명이다. 연탄장사가 본업이며 여름에는 주택설비를 맡아서 하는 임씨. 서울에 자그마한 직장을 두고 내집마련을 위해 원미동에 주택을 사서 정착한 부부. 그리고 임씨를 따라와 일하는 뺀질거리는 젊은 조수. 어렵사리 마련한 주택은 하자 투성이다. 그래서 이웃주민에게 추천을 받아 임씨에게 일을 부탁한다. 터무니 없이 큰 견적을 내보인 임씨가 주인내외는 영 미덥지 않다. 공사가 마치고 나니 견적이 너무 과해보였다. 그래서 주인부부는 추가로 지붕수리를 요구한다. 임씨는 당연하단듯이 해준다. 그래도 견적이 너무 비싸 아까워 속이 타는 주인부부는 어떻게 하면 금액을 적게 줄까 전전긍긍한다.


최종 계산을 할때, 임씨가 먼저 말을꺼낸다. 당초 견적보다 공사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돈을 다 받을 수 없다고. 주인부부는 놀라면서 오히려 미안해 한다. 임씨가 너무 양심적으로 정산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일과를 마치고 임씨는 바깥주인과 약주를 한다. 그러면서 임씨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런저런 이야길를 한다. 비오는날에는 가리봉동을 왜 가야 하는지도 그때 이야기 해준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진짜 누군가는 임씨와 같은 처지에서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임씨에게 존경심도 들고, 연민도 들고 오만가지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있음직한 이야기면서 누구에게나 해당 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서 더 인상깊었던 것 같다.


원미동이야기를 읽고나면 그 동네에서 한해정도는 살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빛바랜 서울 전철들이 떠오른다. 더불어 내가 오랫동안 살아왔던 서울 생활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기도 한다. 때로는 소설속 지명이나 장소들이 내 경험 안에서 새롭게 필름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심각하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원미동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외곽지 사람들의 이야기. 원미동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냥 원미동은 아나의 소설속 배경일 뿐이다. 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미동에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지하철을 타고 한바퀴 주욱 돌아보면 나름 재미있다. 지금은 할 시간이 없지만, 학생때는 마음이 심란하곤 하면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한바퀴 돌곤했다. 다들 각자의 사연이 있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다양하다는게 눈앞에 펼쳐지면 내 삶 또한 그들 중 하나라는 겸손과 묘한 재미가 느껴졌다.


원미동사람들은 나에게 지하철타고 한바퀴 서울구경하는 느낌을 안겨다 주었다. 그 속에 나 또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두렵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했다. 그림을 보지 않아도 머리에 그려지는 이야기.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 원미동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