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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Nov 02. 2015

디지털 사용법

디지털 혁명은 어떻게 활용 하느냐의 문제다.

언론사의 칼럼이나, 산문, 혹은 토막글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는 주제가 디지털와 아날로그에 대한 이야기다. 지하철을 타거나 공공장소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본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 독서를 하거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많이 없어시조 세상이 일회적이고 즉흥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아닌 비판을 한다. 문명이 가져다 주는 폐해와 인간성 상실과 습관의 저열함을 통해서 대중적인 공감대를 일으키려고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악영향에 대해서 나도 공감한다. 다독,다작,다상 하지 않고 그때그때 자극적인 것만을 찾아다니는 세태에 대한 우려도 공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잘 발달된 디지털 기기의 탓으로 몰아가거나, 문명의 진보가 가져다주는 과학기술의 폐해로만 치부하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않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나, 편리한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기술 그 자체로는 효용성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결국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 의 문제다. 디지털에 대한 막연한 부정의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편의성은 받아들이고 잘 활용 하는 법을 찾아라고 이야기 하고싶다. 잘 활용 하는 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이지, 기술에 대한 비난과 한탄만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서결핍의 시대라고 이야기 한다. 안그래도 책을 안 읽는데 , 스마트폰의 보급을 통해서 책은 커녕 신문도 안읽는다고 사람들이 비난을 쏟아 낸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죽이는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하고, 이어폰을 꼽고 있으면 이기적인 음악감상꾼으로 심지어 힐난 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지나친 기우라고 말해두고 싶다.


독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독서가 가지는 매력은 책이 가져다 주는 물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 독서의 본질은 정보를 습득하고 , 그 정보를 토대로 창발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독서의 본질을 간과하고, 독서의 외형만을 치켜 세우는 것이야 말로 본말이 전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공자의 이야기를 읽는다고 해 보자 . 우리는 공자의 말씀을 통해서 성현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다. 뭔가 학구적이고 고증적인 두꺼운 책을 가지고만 공자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되레 , 두껍고 무거운 책 대신에 작은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어플리케이션 이라는 플랫폼이 훨씬더 학습의 편의를 제공 할 수도 있다.


외국어 공부 또한 매 한가지 이다. 책상 앞에서 외국어 책만 부여잡고 사전을 뒤적이던 학습방법이 마냥 최고만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 의미를 알고 싶은 간판이나 표지가 보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찾아서 내용을 습득 할 수 있다. 이전에는 구하기 힘들었던 외국 유수 컨설팅의 인사이트 자료를 그냥 손가락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손으로 꾸욱 누르면 영어단어를 찾아주는건 덤 이다. 그 영어의 발음을 듣고 싶으면 바로 재생하면된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다중적인 학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학습의 경우가 모두가 아니다. 예전에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 수많은 분야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서 전달하게 해주는 메일링 서비스는 개인의 관심사를 명확하게 해 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탈경계 라는 명제 하나만으로도 디지털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선택의 범위를 준 것이다. 간혹 지내다 보면,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심하다고 걱정하는 사람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러한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디지털 사용법에서 괴리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더더욱 디지털 화된 세상일 것이다. IoT의 발달로 생활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부정하는 것 보다는 , 이러한 홍수 속에서 올바른 사용법을 본인이 터득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넓어진 자유와 경계없는 정보홍수 가 그만큼의 주체적인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는 건 당연하다. 장점이 많아진 만큼 유혹과 단점도 많아지는 것도 필시 당연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허나 이것은 우리가 받아들인 문명의 문제가 아닌 , 개개인의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교육의 문제이다. 따라서 기술을 부정하는 것이 방법이 아니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방법이 된다.


인류의 삶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의 '불 의 혁명'의  불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전적으로 그 활용도가 달라지는 신비의 존재다. 불이 우리 삶 속에 들어온 이래, 가장 큰 변화중 하나인 디지털혁명 이 도래하고 있다. 이제 부터는 부정적인 감성동의를 요구하기 보다는, 실용적이고 진취적인 방법을 찾아 다방면의 발전을 도모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혹시 테블릿이나 스마트폰을 보는 자신을 누군가가 우습게 보고 있진 않을까. 본인은 그저그런 세태속에 스며드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걱정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디지털 유목민에서 디지털 정복자를 통한 현명한 사람이 되려는 조짐 일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칼은 소유한  사람에 따라서 흉기가 되기도 하고 , 천하의 보물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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