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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Oct 13. 2015

이별을 예감한다는 것

순수와 잔인사이


늦은 밤중에 보고 싶다 전화 와서 달려 나가면
그냥 나의 품에 안겨 한참 울면서
끝내 아무 말이 없다가
참 미안하다고, 늘 고맙다는.
그건 어쩌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김동률 4집중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中-



이별을 예감하는 것 만큼 잔인한건 없다.

이별을 예감하는 것이 슬픈 이유는, 사랑을 놓치고 싶지않은 처절함이 베어나오기 때문이다.

정인의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음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

매일매일 이유없는 불안함에 시달린다. 혹시나 헤어지자고 하지는 않을까. 이제 그만하자고 하지는 않을까.

내가 싫어졌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을까.

빈껍데기 뿐이더라도 , 그래도 그런 반쪽짜리 사랑이라도 가지고 싶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유지시키고 싶다.

바보같고, 멍청하고, 한심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이 예감을 숨겨두고싶다.

나의 처절함이 비참해 보일 지라도 이것을 지키고 싶다.

무엇이 이토록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말없이 미안하다고 하며, 항상고맙다고 하는건 때론 불안하다.

말이 없다는건 식어버린 사랑에 대한 도덕적 면피를 위한 일종의 묵언의식 이리라.

아무 이유없이 단순히 스러져버린 마음이 스스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는데 , 이토록 허무하게 바스라지다니.

식어버린 사랑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뜬금없이 이야기 한다.

부정해도 이미 나의 눈과 마음은 예전과 같음이 아닌걸 이야기 하고 있다.

웃음짓는 상대방의 얼굴에서 씁쓸함이 보인다.


이유없이 품에안겨 운다는건 나에게 이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울고 있는 상대방을 토닥일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혹시나 마음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매몰찬 이별이 낯설어 울고 있는 걸 까봐 괜히 두렵다.

그리고 나서는 또 미안하다고 안녕을 고할 까봐 그게 두렵다.

위로를 하는 내 손은 , 울고 있는 상대방을 위한 위로가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괜찮아. 괜찮아, 사랑을 계속 될거야' 라는 일종의 주문이며 자기암시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유없는 울음을 때론 이토록 날 불안하게 만든다.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욕심은

스스로를 참혹할 정도로 비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러한 비참함 조차 감내할 정도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누가 어리석은 행동이라 비난 할 자격이 있는가.


사랑의 본질은 순수와 측은지심이다.

상대를 내 몸처럼 생각하기에 걱정이 되고 , 챙겨주고 싶고 , 함께 보호해주고 싶은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순수의 마음이, 식어버린 감정과 섞일때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만큼 괴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이별을 고하고자 하는 이도, 이별을 예감하는 이도 힘들다.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다. 

 감정의 끝자락을 간신히 잡아두려 하는 이 사람의 마음을 누가 헤아리랴 .


사랑은 순수하다.

그래서 때론 더욱더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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