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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익 Mar 21. 2018

나는 느림보가 되기로 했다.

삶을 좀 더 진지하게 살아가기 위해

 난 어릴적에 달리기를 꽤 잘했다. 선수는 아니었지만, 운동회때 항상 상을 타서 상으로 받은 공책만 썼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결승점이 앞에 있고 , 내 앞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나혼자 앞서서 달려가는게 좋았다. 누군가 내 앞에 있으면 분통터지고, 자존심 상했다. 더 잘하고 싶어도 잘 안되기에 더더욱 분통터졌다. 빨리 해야지만 많은걸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빨리 공부를 해야지, 더 많은 책을 볼 수 있다. 그래야지 내 앞에 즐비한 터울의 경쟁자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구장창 속도를 내려했다. 그게 되레 나는 큰 즐거움이었다. 한명을 제치면, 또 한명이 있고, 겨우겨우 한명을 제치면 또 한명이 있었다. 살아오는 내내 앞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수도없이 서 있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쫓아가기만하고,부러워 하다가 어느날 죽음에 이르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조바심은 날 점점더 퇴보하게 만들었다. 많이 읽어야 하고, 더 많이 써야하고, 더 많이 뭔가를 해야했다. 강박관념이 심해지다 보니 , 많이 한 것같은데 정작 내가 얻은건 하나도 없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 때 느꼈던 허탈함이란 이루 말 할 수없다. 그래도 뭔가를 빨리 해야했어야 했다. 꾸역꾸역 해야지만, 하나라도 건지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야지만 내 존재를 조금이나마 빛나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느리다는건 곧 패배인줄 알았다. 토끼와 거북이를 수도없이 듣고 읽고 자랐지만, 그래도 느린건 뒤쳐지는것만 같았다. 불안함이 일정부준 나로하여금 동기부여가 되었다는건 부정하지 않겠다. 가져다준 이득과 잃어버린 것들응 곰곰이 생각해보니 잃은게 더 많은것 같았다. 결국 문제는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건 어떻게 가느냐 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 였다. 이것이 나로하여금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느리게 가기로 했다. 게으름과는 다른 신중한 느림으로 세상에 한발한발 다가서기로 했다. 글들 속에 나타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는 힘을 키우기로 했다. 관계속에 드러나지 않는 감정들을 조금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세상에 뒤쳐지는건 느려서가 아니었다. 세상을 진지한 성찰로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날 점점더 퇴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래 때는 있다. 하지만, 그 때라는것이 모든이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삶의 기한(milestone)이 있다는건 삶에 정답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삶에 정답은 있는가?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속도에 집착하는건 무의미 하다고 생각했다.


'느림보=게으름쟁이, 실패자'라는 비정상적인 등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던 것을 인정하고, 이제부터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봐야겠다. 기나긴 여정을 고독하게 나아가는 과정이다. 모든것을 완벽하게 채워갈 수도 없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진지하게 삶에 임하면 되는 것 같다. 신중하게 말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한번 더 음미 한 뒤에 교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일도, 독서도, 그리고 인간관계도 모두다 조금씩 느리게 걸어가는 법을 연습해야겠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더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번 더 해야지.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도 한번하고, 괜찮다라고 절망하는 어깨를 다독여줘야지.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 보기도하고, 왔던길을 돌아가서 지쳐있는 사람에게 격려도 해 줘야지 . 그래야지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진작 좀 더 느려져 볼걸, 왜 그땐 그러지 못했을까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이 시절에 그걸 받아 들였던 것 뿐일테니까.


나는 이제부터 느림보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좀더 정확하게 삶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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