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열쇠
니스, Nice, France 공항에 떨어져 정작 니스는 가지도 않고 서쪽으로 20분 떨어진 무쟝, Mougins으로 곧장 갔다. 피카소가 마지막 십여 년을 보낸 곳이고, 그가 임종을 맞은 집이자 아뜨리에가 이곳에 있다. 아주 언덕 위에 만들어진 아주 조그만 동네이다. 걸어서 15분이면 동네 한 바퀴 그리고 구경 끝. 피카소는 말년에 이곳에 와서 머물기로 하고, 그림과 도자기 작업을 많이 했다 한다. 피카소의 흔적은 여기저기 사진으로만 남아있고 그의 흔적을 피부로 느낄 수는 없었다. 그는 워낙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머물던 동네와 관련된 개인적인 서사는 아무래도 내가 이곳을 온 이유인 세잔이나 고흐와는 너무 달랐다. 동네 관광 안내소 앞에 설치된 피카소 얼굴동상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컸다. 그가 이곳에 왔을 때에는 이미 유명했던 화가였던지라 주위의 귀족 집안에서 배려한 아주 조용한 장소에 그의 마지막 처소를 꾸렸다. 무쟝, Mougins에서 10여분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 피카소의 마지막 아뜨리에가 만들어졌으나 개인소유의 저택이라 방문은 불가능했다. 바로 옆에 있는 아담한 교회엔 여기저기 피카소의 흔적이 남아 있고, 윈스턴 처칠이 그린 수채화도 한점 전시되어 있었다.
무쟝, Mougins에서 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로 가는 길은 운전으로 2시간 이내이나 4시간 넘는 길을 택했다. 프로방스 지역을 상징하는 끝도 없이 펼쳐진 라벤드 밭을 가로질렀다. 아직 꽃이 피진 않았으나 보라색 봉우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것도 멋지고 엄청나지만, 끝없는 해바라기밭이 더 환상적이라 생각하며 운전하랴, 고개 돌리며 구경하랴, 필라델피아를 떠나온 지 20여 시간이 지났다. 숙소에 도착하자 첫끼로 가까운 곳에 있던 아시아 마켓에서 사 온 안성탕면으로 허기를 때우고 금방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오후 8시가 넘어 후다닥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일몰이 8시 반이니 사진 찍기 좋은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리로 나가니 바닥이 온통 젖어 있다. 비가 왔던 모양이다. 하늘이 붉은색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금방 어둑어둑해진다. 가게들에 노란 불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청량했다. 아.. 드디어 이곳에 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가 엑상, Aix에 왔다.
어느 도시를 가나 미리 조금 공부해 둔 랜드마크로 금방 동서남북을 구별하는데, 엑상에서는 여러 번 길을 잃어버려서, 폰으로 맵을 계속 봐야 했다. 마치 스페인의 톨레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조그만 동네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걷다 보니 계속 큰 길인 미라보 거리를 마주한다. 내가 가려고 했던 방향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 도시는 쉬이 나를 허락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곳도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다. 씨에스타.. 음 좋아.. 로마에서는 로마법으로 나도 점심 때면 낮잠을 잤다.
날씨가 너무너무 좋다. 한여름은 덥겠으나 지금은 5월, 봄, 걸어 다니기 너무 좋은 날씨가 연속이다. 태양은 강렬하나 그늘이 많고 살랑 불어오는 바람 끊김이 없다. 오래 걸으니 땀은 나나 그 시원한 바람에 금방 마른다. 도시 곳곳에 분수가 얼마나 많은지. 도시 이름 액상, Aix이 물을 의미한다고 하니, 곳곳에 자리 잡은 분수가 도시 전체에 청량감을 더해준다. 분수 하나하나 생김새가 다르고 나름 특색을 가지고 넘치게 물을 뿜고 있다. 분수들만 찾아다니는 것도 이곳에선 지루하지 않은 구경거리였다. 이곳 거리에서 내가 듣고 다니던 노래는 오랜만에 ‘시인과 촌장’이었다. ‘새봄나라에서 살던 행복한 바람, 모두가 그 바람을 좋아했는데...’ 그 바람이 살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 같다. 이곳을 떠난 바람은 고생을 바가지로 하면서 이곳을 그리워할 것 같다.
아직은 본격 관광철이 아닌 것 같아 깃발 쫓아다니는 무리의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관광철엔 마르세유에 정착한 크루즈 여행객들이 버스로 이곳에 몰린다 하니, 그때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 같다. 넘쳐나는 식당에서 혼밥은 못하겠고, 어차피 음식에 모험을 하는 성격도 아니니 (그래야 다 같은 음식이고 별 다르지 않다.. 그건 정말 어디서나. 누가 프랑스 음식이 맛있다고 했던가…) 카르포에 가서 장을 봤다. 아시안 슈퍼도 있어 한국라면도 종류별로 있다. 두 끼는 해 먹고, 한 끼는 길거리에서 주전부리를 사거나 아이스크림으로 때웠다. 걸어 다니다 보니 이번 여름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 홍보 행사가 여기저기 있는 것 같다. 오래되었지만 곰팡이내 나지 않고, 옛것의 세련됨이 그대로 유지되는 이 도시는 정통 프랑스 매력덩어리이다. 도시 자체가 그렇게 내 눈길을 사로잡지만, 정작 내가 이곳까지 꾸역꾸역 온 이유는 단 하나, 나의 최애이자, 현대 예술의 위대한 선구자가 된 미술가 폴 세잔, Paul Cezanne 이 이 동네 출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