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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Oct 12. 2024

물, 별, 그리고 알함브라 4/4

‘물’ 다음으로 내가 알함브라에서 느낀 이슬람 문화의 백미는 ‘별'이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저녁 알함브라 궁전의 하늘은 짙은 파란색이었고 거기엔 엄청난 별들이 있었다. 거의 매일 새벽까지 난 이 별들을 보며 발코니에 나가서 앉아 있는 것이 황홀했다. 사각형 건물위로 돔처럼 둥그렇게 보여 있는 이 많은 별들은 마치 이 건물을 위해 하나 하나를 하늘에 붙여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 별들을 돋보이기 위해 땅에 건물을 만들었다 생각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화려한 외관보단 믿믿한 육면체 디자인이 선택된 것이었나 생각들 정도였다...  아무튼 완벽한 조화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부분은 그 외부의 별이 아니었다.  별은 건물안에도 넘치고 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원래 모습은 요새 (Fortress) 외엔 높은 건물이 없었다 한다. 그나마 그 중 제일 높은 건물은 나스라 궁궐의 제일 가운데 솓아 있는 직육각형의 건물인데 (밖에서 보면 동산 절벽에 위치해 제일 먼저 보이는 박스 형태의 건물이다.) 그 안엔 술탄이 사람들과 회의도 하고 연회를 하는 방이 있다.  건물 자체가 높은 ceiling 을 가진 큰 방 하나이다. 술탄이 앉는 조그만 공간이 있는데 뒤는 막힌 벽이 아니라 밖으로 뚫린 창문이 있는데, 거기에 밖의 경치를 위한 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국의 창호지가 발려 있는 나무 문살 (pattern)이 있다. 직사광선은 들어오지 않을 만큼 촘촘한 패턴의 문살이다. 낮에 들어가도 그 공간은 어둡게 만들어져 있는데 그 창문에 빛이 들어오면 그 빛 하나하나가 마치 별과 같이 빛난다. 낮의 뜨거운 햇볕은 이 작은 패턴을 거치면서 무수히 많은 작은 별이 되어 술탄이 앉은 자리를 감싸고 있다. 


이 방은 다른 건물에 비해 높은 Ceiling 을 가지고 있는데 이 Ceiling 의 패턴이 또한 예술이다.  아주 짙은 갈색 나무로 Ceiling 을 덮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여러 형태의 별 모양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작은 별 모양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정말 많은 문양들이 반목이 되고, 그것들이 또 다른 문양을 만들고 있는데 이건 마치 은하수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고개가 아파서 오래 보고 있을 순 없으나 그렇게 한번 느끼고 다시 보는 Ceiling은 은하수 그 자체였다. 그 은하수 아래에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분수가 있고 거기엔 보일듯 안보일듯 물줄기가 솓아오고, 거기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조용하지만 청량하기 그지 없다.  술탄이 앉은 자리에서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분수를 거쳐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가 되는 것이 이 한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계산해서 이렇게 완벽하게 구성을 해 놓은 거지? 


이 공간 뿐 아니라 나스라 궁전 어느 곳을 가도 별이 뜨지 않는 곳이 없다.  왕비나 공주가 지냈을 것 같은 장소를 가면 알함브라에서 볼 수 없는 스테인리스가 설치된 작은 공간이 있다. 거긴 벽에 스테인리스 창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90도로 들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천장 구석에 붙어 있다. 거길 통해 총천연색의 컬러가 된 빛이 공간으로 들어오고 그 빛이 벽에 부딪히면 장식된 수많은 별들이 마치 무지개에 박혀 있는 듯한 모습도 만들어진다. 시간이 지남에 색깔이나 빛의 위치가 달라지면 완벽히 별이 무지개와 함께 움직이는 방이 된다.  이렇게 알함브라에서는 낮엔 안에서 별이 넘치고, 밤이 되면 하늘에 별이 넘친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특성 때문에 사람의 모습에 집착하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집중을 하면 이런 것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머리에 터번을 쓰고, 하얀 원피스 같은 옷을 입고, 낙타를 타고 사막을 오가고, 거리에 코란 읽는 소리가 시끄럽고, 거친 수염의 남자들, 온 몸을 가린 여인들,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왁자지껄한 시장의 모습, 테러리스트.. 그런 것들만 생각나는 이슬람의 문화가 .. 이렇게 로맨틱 할 수가 있는 것인가?  이것도 역시 서양사람들의 시각에서 나온 외곡된 모습이었구나 하는 것이 분명해 졌다.  만일 기독교 대신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하늘 향해 수없이 만들어 놓은 고딕문화의 높은 첨탑들은 바벨탑처럼 조롱받고 있지 않을까? .. 주어진 것을 즐기지도 못하고 구지 하늘 향해 뾰족한 못을 영역표시하듯 흩어놓고 좋아하고 있는 미개인들 .. 정도?



그라나다는 아주 작은 도시이다. 이 곳엔 알함브라 외 다른 이슬람 문화의 흔적은 거의 없다.  나스르 왕조가 물러나고 난 후 스페인을 평정한 이사벨라 여왕, 합스부르크 왕조 등으로 이어진 카톨릭 문화가 여느곳의 스페인처럼 이 곳도 가득 덮고 있다. 그나마 조금 있는 흔적은 오로지 관광목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느낌이다.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역의 소도시들의 관광은 대부분 그 시대를 거쳐 남아 있는 이슬람 문화가 주된 볼거리인 것 같다. 원래 알함브라의 모습이 많이 소실되고 복원이 제대로 되지 않은 

아쉬움은 있으나 그마나 남아 있는 것으로도 나에게 이슬람 문화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하긴 충분했다. 이번 여행은 아무런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떠나기 이틀전 계획해서 짐도 별로 없이 그림도구, 랩탑만 하나 챙겨서 알함브라 궁전 하나만 보고 떠난 무계획 여행이었다. 보석이 왜 보석인가를 절실히 느끼고 며칠 계속 밤하늘만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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