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일 년을 놀자.. 선언을 한 지 10개월 정도 지나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뭔가를 찾긴 찾아야 하는데. 맘에 두고 있는 저 멀리 있는 원하는 직장에서는 연락올 기미가 없고.. 어쩌나 하다가..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선생을 찾는다길래 대뜸 원서를 넣었다. 그러자 금방 연락이 왔다. 잉 뭐지? 아직 광고는 떠 있는데 이미 사람을 찾았다고 이메일이 왔다.. 뭔가 짜고 치는 고스톱에 내가 피박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래도 모른 척 몇 번에 걸쳐 연락을 하고, 그러다 왠지 호감이 가는 한 스탭이랑 전화 연락을 하게 되고.. 어떤 포지션이라고 괜찮단 말을 하니.. 파트타임 포지션을 있다고 말을 하더니 그 담당자랑 연락을 하고 이력서를 다시 보내라고 답이 왔다. 약간의 수정작업을 거쳐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역시 어떤 담당자랑 이야기 하는가가 너무 중요하다..
줌으로 한 인터뷰에서는 10명의 교수들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주로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머지 교수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ㅎㅎ 같이 하고 있었다. 난 그리 주눅 들 자리가 아니었기에 편하게 이야기했고, 다시 일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는 어떤 교수의 질문에.. "My wife is about to kick me out. I have to find something to do.."라는 말에 학과장이 빵 터졌다. 자기는 물론 자기 친구들도 매일 듣는 소리라면서. 그러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이틀뒤에 연락이 왔다. 일주일에 이틀 학생들 가르치는 포지션으로 시작하자.
학교다 보니 서류가 워낙 많았고, 범죄조사에 뭐에 뭐에.. 거의 한 달을 걸리고.. 출근. 일주일은 여기저기 다니며 인사하고 다른 교수들 따라다니며 시스템 배우고.. 교수 월급.. 참 비참한 수준이었지만, 침 한번 꿀꺽 삼키고 잊어버리자..
들어가 보니 교수들의 구성은 생각대로였다. 이미 진료 일선에서 은퇴를 해서 소일거리가 필요한 노교수들. 그리고 학교 졸업 후 진료현장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학교로 들어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젊은 교수들이었다. 그러니 나처럼 일선에서 제일 전성기에 있을 사람이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고, 그러기에 내 이력서가 관심을 끌었을 거라 생각은 했었다. 실제로 다른 교수들과 일을 해보니.. 그랬다. 나이 든 교수들은 열정이 없고, 젊은 친구들은 경험이 없었다. 암튼.. 그렇게 새로운 커리어는 시작됐다.
한 달이 지난 후 학장한테 이메일이 왔다. 혹시 풀타임을 할 수 있겠냐고.. 아니 이거 뭐지.. 그래서 오늘 아침 학장면담을 하고 Fulltime Faculty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 이년이 지나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뭐 이렇게 빨리 진행이 되지 좀 의아했다. 학교에 뿌락지를 심어놓고 뒷조사를 했나 하는 강한 의심이 들 정도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 약간 고민은 되었지만.. 기회란 왔을 때 잡는 법.. 그래서 팍 그냥 부여잡았다. 나 하기 나름이지..
이렇게 나의 2nd Career가 시작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Dentistry를 가르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입이 근질근질할 정도로. 이제는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학생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즐겁기도 하다. 조직에 들어가 약간은 눈치도 보면서 내가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는 환경이나.. 뭐.. 눈과 입을 질끈 감고 한번 해보자.. 생각으로 한 달이 지났다. 내 썰을 조금만 풀어도 뿅 뿅 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신났으나.. 오늘 아침에 한방 크게 맞았다. 너무너무 맘에 들지 않는 한 학생이 있었는데.. 어금니 물고 이 놈을 위해 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열심을 다해주는데.. 이 놈이 뒤통수를 쳤다. 다른 교수들 보기에 나를 이상한 놈으로 만들고.. 그래서 학생들/환자들 다른 교수들도 다 있는데 뚜껑이 열렸다... 도와주는 건 좋은데, 선을 넘지 않아야 된다는 참 힘들고 쓰디쓴 주사 한방 맞았다. 하도 일찍 터진지라 거의 백신 같은 느낌이다. 이젠 그놈은 없는 셈치고 다른 놈한테 두배로 잘해주라는 내 멘토의 조언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어쨌거나.. 학생들을 보고 있으려니.. 아니 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나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모르면 배우려는 태도가 있던지.. 그런 걸 모르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도 예전에 그랬나? 지금 다른 학교에 있는 우리 아들놈도 그런가.. 하는 오만 생각이 든다. "야 너 나가! 다시는 내 수술장에 들어올 생각하지 마..." 하는 말을 하는 악마 같은 교수가 내가 될 줄이야.. 이 한번의 에피소드로 더 이상 흑역사는 없으리라.. 오늘 아침에 들은 이야기로는 졸업생들에게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곳에서 내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자기들을 잡고 있는 골치아픈 케이스가 있으면 나한테 가라고 하는 찌라시가.. 나한테 가면 금방 해결해 준다고.. 실지로 그런 케이스가 몇 개 있었고 그래서 발없는 소문이 돌았나보다.
좋은 생각만 하자. 초심을 다시 확인하고 존경받는 교수가 되자.. 계속 다짐한다. 그래도 다들 나름 똑똑한 놈들을 모아놓은 곳인데.. 따뜻한 한마디에 아이들 평생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매일 아침 다짐을 하자.. 내 아들, 딸이다 생각하고. 가르치는 짓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여태 내 입으로 내가 교수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이젠..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