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종 종Mu Jul 30. 2022

명품수선집을  알아요?

유쾌한 시간

#.

지인이 하나 있다.

평시엔 아무 관심도 없다가 불현듯 말을 걸어

" (당신은) 병으로 벌써 죽었을 몸이에요. " 라고 하질 않나,

"나는 (당신이) 그 논문인가를 안 쓰면 좋겠어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래 살지 못할 거예요." 라고 하질 않나.


나와 친한 것도 아닌 그녀가 어떻게 이제껏 나 자신조차 크게 의식하지 못한 걸 무슨 확신으로 그렇게 단정하듯 말하냔 말이다.  게다가 아무 조심성도 없이 거친 날것 그대로.


그래서 나는 그녀를 선무당이라고  부르기로 했 다.


몇 십 년씩 질적 하자가 있는 신체적 건강상태로 하여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들 모두가 나처럼 크건작건 불안정한 신체리듬을 애써 견디며 사는 것으로만 알았다.

왜냐하면 나 자신 빠르게는 하이틴 무렵부터 늦게는 대학 졸업 직후부터 뚜렷한 병도 없이  기운 없고 늘어지신체징후와 항상 싸워왔다. 건강상의 하자가  별로 눈에 띄않았던 것은,   다른 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거라 전제했던 내 타인관에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신체리듬이 항상 낮은 점에서 맴도는데도 정상범주 이내인 것으로 믿고 담담하게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단련된  나에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느니 하며 내 지나간 시간을 요란스럽게 요약하며 나서는 그녀, 아무리 좋게 해석주려 해  어이없는 소리로 느껴지는 게 내 솔직한 심경이다.


그리고 또 뭔가. 계속 논문을 쓰기를 고집하다가는 제 명대로 못 살 것이란 그 암시적 .


사람이 논문제조기와 같은 기계가 아닐진대, 더구나 나처럼 꼼작거리며 이일저일 잡다한 일을 다 거쳐야 하는 보통의 여인네가, 별도로 공부를 하며 그걸로 글을 쓰려 한다면 일은 당연히 노역일 것이다. 피땀의 작업이다. 그래도 의미가 있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독려해가며 지속해야 한다. 이게 바로 학업을 마치면서 내가 굳힌 결심이거늘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니 중단하는 게 어떠냐고?


세상에, 아직 제대로 이룬 바도 없이 그런 권유를 받다니? 더구나 내가 무얼 더 공부하고 싶어하는지 눈꼽 만치의 이해도 없는 그녀한테! 정말 싫다, 전혀 안 들은 셈 치겠다는 의지마저 일었다.

그렇긴 해도 지난 4월만 해도  논문 한 편 마치고 심하게 아프지 않았나, 스스로의 과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보니 그녀가 전혀 틀린 소리를 한 건 아니라는 뜻에서 선무당이란 별명을 지어놓은 것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은 또 뜬금없이 물어온다.

"요즘 번역도 하세요?"

아니요. 단번에 나온 대답.

왜 갑자기 번역일에 대해 묻는지, 이것 또한 전혀 뜻밖이다. 

번역이라...그에 대해 한번도 그녀와 얘기한 적 없었지, 아마?


아아, 명함, 내가 명함을 주었지.

그 말이 나온 접점에 대해 기억을 곰곰이 흩어보다 그녀와 첫만남에 내가 건넸던 명함이 기억났다. 거기에 내가 번역일도 한다 적어놓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벌써 반 년 전 일이 아닌가. 더구나 그 중간에 그것에 대한 아무

대화도 없었던 터.


그래도 나는 그녀의 난데없는 물음에 한 마디 덧붙여 준다.

"예전에 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딴 데 신경쓰느라 전혀 안 해요."


#.

그건 그렇고 며칠 전 나는 옷수선집에 들렀다가 내가 번역해  작품 이야기가 떠올라 웃음을 멈추지 못한 적이 있다.


동네 바깥으로 가게가 있고 나는 일찍부터 그 앞을 오갔다. 그렇지만 직접 옷을 들고 찾아간 건 고작 한 달 전이었다.

순전히 이 '명품수선'ㅡ 이란 간판 때문이었다. 처음 간판을 보았을 때 내심 명품만 받아 수선하는 곳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다가 달리 찾아갔던 수선집이 불친절하면서 거만한 데 질려, 그냥 허탕칠 셈 치고 확인이나 해보려고 직접 물어 본 것이다.

"여긴 명품만 수선하는 곳인가요?"

아니라는 대답.


그제서야 그곳에 원피스 두 벌을 맡겼다. 결과적으로 수선을 마친 옷 모양이 내 심미적 요구에 미달이었다. 그러나 그게 여사장님 탓은 아닌 게 내가 너무 편리성을 강조했던  원인이 컸다.

옷을 건네며 그저 어깨 움직임이 편하게 소매를 고쳐달라고 하였지, 머릿속에 상상해 둔 나름의 이상적 모양, 즉 부드럽고 풍성하며 우아한 소매선에 대해선 아무 언급도 안했던 나였으니까.

그래서 내탓을 하며 2차 수선으로 아예 소매를 도려내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 속에 알게 된 사실은 여사장님이 꽤 친화력이 있고 말이 통하는 분이라는 것. 이것만으로도 나는 소득이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는 내가 미처 표현 못한  심미적인 요구도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수용적 태도여서 다음에 다른 옷을 맡겨도 될 듯한 신뢰감을 주었니 하는 말이다.


#.

2차 수선을 맡긴 옷을 찾는 날이다.


저녁거리를 사러 시장에 먼저  들르고  시장에서 집에 오는 길에 수선가게에 들르면 될 것 같았다.

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갑자기 배가 고파지고 있었다. 예정에 없이 김밥과 튀김도  사서 가방에 넣고 기분 좋게 시장을 나와  수선가게가 있는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

본래 옷을 찾는 건 1,2분이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내가 가게문을 열고 나올 때는 땅거미가 질락말락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족히 한 시간 이상이나 가게 안에 머물렀던 것이다. 


아휴, 요즘  정말 신기한 일의 연속이야. 며칠 전에  피잣집에서 그러더니 어떻게 가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앞에 이야기보따리를 펼쳐놓네.


자연스럽게  상대가 말문을 열고 거기에 대답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막역한  친구처럼 어떤 얘기도  주고받으며 한두 시간이 모자라다 싶게 시간이 가버리고....


 피잣집에서는 오래 서있느라 허리가 아팠다면 수선가게에선 배가 계속 고팠다.


#.

배는 아까부터 고팠고 김밥과 튀김이 가방 안에 있었고 집은 지척이고...   


처음엔 한두 마디만 나누고 바로 되돌아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두 마디가 세 마디가 되고 네 마디 다섯 마디...눈 앞에 있는 상대말문이 열려서  끊어질 줄 모르니, 나중엔 나도 아예 누리자는 심정으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대화가 이어짐에 따라  눈엔 색색의 실패들과  옷가지들로 가득한 수선 가게가 오붓한 카페처럼도 여겨졌다. 

그래도 허기는 느껴져서 얘기 중간에 내게 김밥이 있다고  말했는데 여사장은 귀가하여 식사할 생각이어선지 꺼내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하여, 가게 문을 닫기 전 여사장에게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었을 오후의 한 조각 한 여자의 약간의 허기와 또 한 여자의 생활 속에 찍혀진 기억의 장면들로  알록달록 채워졌다. 

그녀의 어린날, 그리고 금전관념 무심한 어머니, 그리고 남편과 시어머니, 가게를 차리며  겪게 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내 뇌릿속의 이야기 서랍 안에 빛무리처럼 스며들어 실이 되고 옷감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간. 열려진 말문 너머 그녀의 생활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실가닥은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이번엔 어떤 성미 급한 단골손님 이야기이다. 


그 단골손님은 다 좋은데 옷을 갖고 오면 꼭 지키고 서서 그 자리에서 수선을 완성해 해달고 조르는 버릇이 있다고. 일에 순서가 있고 앞손님 거 먼저 마치고 차례로 해 줘야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금방 끝나는 거 자기 거 먼저 해 달란다고.


그렇게 매번 어거지를 쓴다는 손님 얘기를 듣다가 나는 웃기 시작했다. 내가 읽었던, 너무 재미나서 따로 번역까지 해놓았던 이웃 나라 초원의 구두 수선집 얘기가 떠올라 웃음이 곱이 되어  터져나왔다.(* 이 작품은 리젠(이연)이란 중국작가의 수필입니다)


#.

유목민이 사는 초원에서 기술도 없는 얼뜨기인 작가의 삼촌이 돈 좀 벌겠다고  구두수선집을 차렸다. 그것도 따로 공간을 마련한 게 아니고 외딴집 잡화점을 하는 작가 모녀의 가게 안에서 떠억하니  손님을 받기 시작한것이다.


소박한 유목민들에게 신발은 어떻게든 떼워 신어야 하는 중요한 물건인지라 과연 손님들이 꼬여들었다. 마을을 이루기보다 띄엄띄엄 멀리 떨어져 사는 그곳 풍습상 구두는 그 자리에서 수선해서 신고 갈 물건이다 보니 낮이면 수선 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는 손님들로 가게는 어느새 만원이  되고 만다.  더 심각한 것은 일손이 더딘 삼촌으로 하여 기다리던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가게 안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난장판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이다.


그날도 정신없이 바쁜 와중인데, 차례를 기다리는 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자기 구두를 당장 고쳐달라고 하는 손님이 등장한다.  

가뜩이나 바쁜데 코앞에 한사코 어떤 구두가 내밀어지삼촌의 머리가  혼돈을 일으켰다. 그래서 어거지에 막무가내인 손님의 구두를 수선차례가 된 구두로 오인하고 받아  것이다. 차례만 기다리고 있던 뒤의 손님들이 화가 날 일 아닌가. 바로 다음 차례였던 사람은 가슴에 불이 날 것이고! 더이상 참지 못하게 된 손님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불평을 표현하기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 삼촌 손의 연장을 빼앗아 자가 수리를 하는 손님, 선반에 진열된 과자를 훔치는 가족, 괜한 심술로 남의 구두를 구석에 숨겨놓고 시침떼는 사람, 급기야는 자기 구두를 찾을 수 없어  맨발로 가게를 나서게 되는 사람까지... 가게 안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을 이루고 계산대를 지키며 삼촌을 외면할 수 없는 작가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숨만 내쉰다.


여기선 사족이지만 이 글을 쓰는 동안  원작의 결말 부분이 기억났다.

결국 삼촌은  자신의 일로 가족들의 일상에 피해를 주고 말았음을 인정하고 구두수선을 그만두었고,  삼촌이 남긴 수선공구가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한  식구들은  가끔씩 그걸 바라보며  '부자가 되는 꿈'을 꾸곤 한다고.


#.


까짓 거, 당장 몇 분이면 될 것을, 빨리  고쳐줘요.

일의 수월함을 알고도 남는다는 듯이 코앞에서 재촉해대는, 그래서 가게주인을 난처하게 하는 성질 급한 손님들, 그런 손님이 내 동네 옷수선집뿐만 아니라  머나먼 초원의 나라 구두수선집에도 있다는 것이니, 상상이 겹쳐지며 웃음이 터진다. 하하하하....

수선가게란 정말 인간적인 공간이 아닌가.


그녀와의 오후 한때는 인간계의 수선집만이 창조하는,  실로 유쾌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양보가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