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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Jul 29. 2022

양보가 필요해

줄어지지 않는 기쁨

#.

작년에 골절을 겪은 왼팔은 어깨부터 손마디까지 늘 말썽이다.

1년이나 지났으니 좀 나았는가 하면, 끌대 한두 번  회전시키면서 어깨가 다시 시리고, 손빨래 몇 번에 팔꿈치가 어그러지고... 그러다가 손목이 영 힘을 못쓴다.


손목이 그러면 손 한 쪽이 아예 무용해진다.

작년에 내가 한쪽  팔이 아파 고생한 걸 아는 지인이  소식을 듣고 혀를 찬다.

"한번 다치고 나면 그러기 쉬워."

"조심을 하느라고 했는데?"

답답한 기분에,  손목이 아프게 된 직접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혼자서 곰곰 생각해 봤다.

'맞아. 그걸 했기 때문이야.'


난생 처음 심폐소생술을 해 봤다.


#.

까마득한 옛날에 인공호흡법을 배운 뒤로 지금껏 한번도 써 먹을 기회도 없었지만, 이 나이에 심폐소생술이란 걸 배우게 되니  막연한 감격 같은 게 솟아났다.


말 그대로, 심폐소생술이란 일종의 응급처치로 심장이 일시적으로 멈춰 있는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여 심장이 다시 작동하도록 돕는 치료이다.


죽을 뻔한 사람을 되살려 내는 거야!

이제라도 정말 중요한 걸 익히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누군가 위기의 순간을 맞았는데,  아무것도 모르면 119에만 의지할 것이다. 그러나 응급처치법을 아는 내가 조금만 힘을 쓰면  나는 눈앞의 상대를 구할 수도 있다.  어쩌면 생명을 살릴 수 있다ㅡ  이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감동에 휘말려서, 바닥에 누워있는 모조 인체의 가슴을 두 팔을 모아 손목의 힘으로 꾹.꾹.꾹. 눌렀다.


그날부터 아예 양손목이  다 아프다.  왼쪽 손목뿐만 아니라 오른쪽까지맥을 못추게 되었다.


#.

 이튿날이던가. 

건물 공용의 여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세면대엔 나보다 앞에 온  중년여인이 이제 막 손을 씻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 옆엔 또 하나  십자형으로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물이 나오는 청소용 배수대를 받쳐둔 수도꼭지도 있었다. 당연한 생각이겠지만 차례를 기다리느니 그걸 켜고 손을 씻으면 빠를 것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좀 나은 오른손으로 십자형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십자형 꼭지는 아주 요지부동이었다.

"아휴, 꼼짝도 안하고 손목만 아프네. "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면서 수도꼭지 하나 맘대로 못하는 자신을 한심스럽게 탓하였다. 분명 작은 소리로 내 귀에너 들릴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옆에 흘러내리는 물에 손을 대고 있던 중년여인이 민첩하게 움직여 나와 자리를 바꾸는 게 아닌가.


너무나도 재빠른 양보여서 제안하고 사양하고 하는 인삿말도 아예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나는 세면대 앞에 서서 손에 물을 묻히고 있었고,  그녀는 십자형 수도꼭지를 어렵지 않게 틀고 있었다.


본래 손을 는 일은 몇 초면 족하다.

그런만큼 감사인사를 새삼 나눌 여지도 없이 그녀가 사라졌다.

어떨떨한 채 손을 닦으며 방금 일어난 일의 의미를 음미한다.

'이건 너무나 세심한 친절이야. 새깃털처럼 부드러운 친절을 방금 내가 받은 거야. 그녀에게서. '


#.

얼굴도 보지 못한 채라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말이 끼어들 사이도 없이 아무 망설임도 없는 친절을 내게 나눠준 그녀, 누구일까. 그날 머물렀 건물의 이름이나 손가방을 따로 챙기지 않았던 모습이었던 걸로  추측하자면 재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우러온 학원생이지 싶다.  알아볼 길은 없지만...


어쨌든 그녀의 행동으로 하여  내 가슴 안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기쁨표가 하나 더 새겨졌다. 확신하건대  일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그날과 똑같은 따뜻함 느낄 것이다.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나든 누구든  타인에게 행한 인간다운  친절하나둘 늘어갈수록 삶은  점점 더 빛이 날 것이다. 그와 함께  이 세상에 대한 내 사랑도 점점 더 깊어질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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