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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Jul 14. 2022

젊음의 무지

그땐 몰랐어

#. 

요즘 강의를 몰아서 듣고 있다.

이 강의는 매우 실제적인가하면 매우 융합적인데, 초점은 노인의 질병과 케어에 대해서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을 청년과 노인으로 나눈 중요한 기준이 생물학적 연령인 것처럼, 노인이라 할 때 그 이야기의 초점도 생물학적 변화인 것이 당연하다.

때문에 수업이 거듭될수록 노인과 질병을 한 묶음으로 놓고 생각하게 된다.

"신체적으로 말해 늙음이란 뭐든 몸에 필요한 요소들이 감소해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해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젊었을 때 풍부하던 것이 자꾸만 적어지는 거죠."

교탁 앞에서 강의하는 분은 간호사 출신이다.


#.

어제는 강사님이 잠깐 주의를 돌려주려고 실례를 들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예전의  일을 말한다.

" 젊어서는 건강해서 아픈 걸 몰랐어요. 간호장교로 있으면서 군인들이 폐결핵 같은 걸로 오면 장정들이 뭐가 아플 거냐고 하나도 이해해 주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이 병에 걸렸으니 오죽 가여워요?그때는 전혀 그런 맘이 없었어요..."


#.

강사님이 기억 저편으로 미안해 하는 표정인데 그 진심을 따라 나도 모르게 그 곳에 내가 가 있었다. 군병원이다.  병든 군인들은 젊은 간호사 의 무시 어린 시선  아래  엉덩이를 까고  주사를 맞는다.  손에 잡힌 듯 그들 젊은 군인환자들의 심정이 그대로 읽어진다. 병의 아픔도 그로 인한 삶의 고뇌도 원인이겠지만,  자신을 치료해 주고 있는 의료 당사자들의 무지와 오해가 그들로 하여금  추위를 느끼게 하여  그들의  마음을 새파렇게 얼어붙게 한 것이다.

"그땐 내가 아프다는 게 뭔지 전혀 몰랐어요..."

강사님이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세 번  강의에서 이 이야기는 벌써 두 번째이다. 그 만큼  생각이 부족했다고 후회하신다는 거겠지.


#.

그때 왜 그랬을까?

보통 스스로의 지난 일을 반성하는 그 속에는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행위보다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공감이 부족했던 점에  미안한 마음이 더 큰 듯하다.

나도 그렇다.


세 살박이 아들이

"엄마, 사랑해!" 하며

풀썩풀썩  안겨올 때

어깨가 아프다며 아서라 질겁했던 장면이,  아들에게 미안하다. 아마도 이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런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나는 과거에 비해  많이 안정되었다. 십여 년 만의  서울살이가 제법 틀이 잡혀간달지...

그런데 피로감도 한편 쌓여간다.

내가 겪는 그저 자신밖에 모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 때문에, 내가 숨이 차게 진지할수록  생채기가 많이 그어진다. 그들의 수라계, 질투, 소견좁음, 공정함을 잊은 언행, 비열힌 야합.... 아아, 나는 여기서 무엇을 굳이 의미있다 하나?


그야말로 성실하여 피로를 얻은 생이런가.


서울살이의 2년을 전진과 성과의 측면으로 평할 수도 있으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렇게 압축되는 것이니.

가끔  자문자답을 해본다.

나를 들게 하는 이 다른 측면이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서 풀어야할 수수께끼, 즉  이 세상의 비밀을 여는 문이 되어줄 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면 오히려 고마운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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