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뭇잎차를 마시다
생소하고 친근한 측백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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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동산, 친근한 산등. 하지만 몇 달만에 겨우 한 번 오른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맞아주는 풀과 나무들. 두어 계절 사이에도 새벗이 생기고 옛벗이 떠날 수 있다. 소리소문 없이, 올망졸망 낮은 가지들은 사느라 열심일 뿐. 산을 내려오며 주운 측백잎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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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뭇잎차를 마시다 >
손바닥만한 측백나뭇잎 한 장 주머니에 담아오다.
그 옛날 풍남국민학교 운동장 가으로 늘지어 서 있던 측백나무들.
집에 돌아와 여주 조각이 몇 개 가라앉은 커피포트에 그 한 장을 넣어주다.
서원 근처로 귀향한 옛 동창의 문자에 풀잎 사진을 보냈던 산길의 에피소드ㅡ 저나름의 기세로 뻗친 푸른 끝점들을 지치지 않고 거들떠 보던 나의 촘촘한 심안을 기억하며 끓어오른 측백잎차.
쌉쓰르한지 톡 쏘는지 얼른 형용할 수 없어 도리어 성글성글한 느낌은 어쩐지 유익하다.
측백나뭇잎차를 마시다.
결별의 목례도 없이 사늘하니 멀어진 죽마고우 사촌의 침묵에도 한 잎.
원고비 없는 두 개의 잡지사에 권당 다섯 권을 사겠다고 앞 자리가 허물어진 통장잔고를 보던 너의 조바심에도 한 잎.
구십을 넘기도록 지난 세월이 진물러서 말씨 고운 막내 하나쯤 당신 무릎에 이겨지는 쑥_ 돌로 받쳐 두고픈 건너 마을 뽀얀 얼굴의 내 친정엄마의 일평생에도 한 잎.
우리들의 누더기 같은 삶이 어떠하든
하늘은 오늘도 "잔기침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일 것"ㅡ 이런 꿈결 같은 깨우침에게도 한 잎이리라.
투둑투둑 빗방울 듣는 가을 아침
너는 측백잎차를 끓인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안.빈.낙.도.를 아는가.
푸른 이끼처럼 젖어드는 안회의 눈망울에
한 잎 권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