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半>
ㅡ반은 옳고 반은 틀려요.
모자에 대한 얘기다. 평소 모자 쓰기를 좋아하는데 사고 보면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라는 뜻이다.
분홍모자를 바라보며 지인이 물었다.
ㅡ 뜬 거예요?
ㅡ아뇨, 샀어요.
모자 얘기라면 몇 마디 더 덧붙이고 싶어지는 나, 모자를 습관처럼 쓰는 탓이다.
여름엔 여름대로 시원한 모자를 썼고
겨울엔 겨울대로 따뜻한 모자를 썼다.
이번 겨울엔 두 개의 털실모자를 번갈아 써 왔다. 둘 다 챙이 없이 머리를 감싸는 모양이었는데, 손뜨개질의 송송한 구멍이 내 맘에 들었다. 다만 흰색은 자줏빛 도는 분홍에 비해 훨씬 낡았다. 분홍은 아마 3년쯤 되었을 것이다.
지인은 더 이상 물어오질 않았다.
저녁에 잠들 즈음에야, 이번 지난 겨울에 사서 선반 위에 올려둔 겨울 모자 두 개가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 때는 나름 사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던 거 같은데 정작 쓰고 외출할 때는 챙이 맘에 들지 않았다. 두 개 다 챙이 문제였다.
어디 겨울모자뿐인가. 여름 모자 중에도 잘못 산 게 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고 나서 맘에 안 들어 쓰지 못한 모자는 매 해 있었다. 봄에도 있었고 여름에도 있었다.
모자를 잘 사면 한 계절 내내 산뜻하다. 반대로 잘못 사서 반품도 못하고 모셔둘 땐 가슴이 쓰라리다. 재활용 상자에 버리고 버렸다는 사실을 잊을 때까지 후회하는 맘이다.
어떻게 못 고치나...
오늘은 큰맘 먹고 직접 챙을 수선해 봤다. 그럭저럭 써 볼 생각인데 애석한 맘이 깨끗이 사라지진 않는다.
인간은 아무래도 '반의 만족'보다 '반의 불만'에 더 집착하는 동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