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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Jan 26. 2024

반半

모자帽子 유감

#.


<반半>


ㅡ반은 옳고 반은 틀려요.


모자에 대한 얘기다. 평소 모자 쓰기를 좋아하는데 사고 보면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라는 뜻이다.


분홍모자를 바라보며 지인이 물었다.

ㅡ 뜬 거예요?

ㅡ아뇨, 샀어요.

모자 얘기라면 몇 마디 더 덧붙이고 싶어지는 나, 모자를 습관처럼 쓰는 탓이다.


여름엔 여름대로 시원한 모자를 썼고

겨울엔 겨울대로 따뜻한 모자를 썼다.

이번 겨울엔 두 개의 털실모자를 번갈아 써 왔다. 둘 다 챙이 없이 머리를 감싸는 모양이었는데, 손뜨개질의 송송한 구멍이 내 맘에 들었다. 다만 흰색은 자줏빛 도는 분홍에 비해  훨씬 낡았다. 분홍은  아마 3년쯤 되었을 것이다.


지인은 더 이상 물어오질 않았다.


저녁에 잠들 즈음에야, 이번 지난 겨울에 사서 선반 위에 올려둔 겨울 모자 두 개가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 때는 나름 사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던 거 같은데 정작 쓰고 외출할 때는 챙이 맘에 들지 않았다. 두 개 다 챙이 문제였다.


어디 겨울모자뿐인가. 여름 모자 중에도 잘못 산 게 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고 나서 맘에 안 들어 쓰지 못한 모자는 매 해 있었다. 봄에도 있었고 여름에도 있었다.


모자를 잘 사면 한 계절 내내 산뜻하다. 반대로 잘못 사서 반품도 못하고 모셔둘 땐 가슴이 쓰라리다. 재활용 상자에 버리고 버렸다는 사실을 잊을 때까지 후회하는 맘이다.


어떻게 못 고치나...

오늘은 큰맘 먹고 직접 챙을 수선해 봤다. 그럭저럭 써 볼 생각인데 애석한 맘이 깨끗이 사라지진 않는다.  


인간은 아무래도  '반의 만족'보다 '반의 불만'에 더 집착하는 동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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