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호수인가 했다. 그런데 지중해라고. 나는 이 바다 이름이 맘에 든다.밥솥에 고구마를 찐다.
금세 익을 테니... 김이 모락모락 나고 따끈한 고구마를 먹을 생각에 그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렇게 앉아서, 카톡 문자판에다 복습 삼아 작문을 써내려 갔다.
무슨 복습?
무슨 작문?
사실은 2주 전부터 1주 한 번씩 중국어 교습을 받기로 했다. 지금 내 입장에서, 한 달 네 번 총 6시간에 17만 원이라는 교습비가 다소 아깝긴 했지만, 야무지게 독학하는 성격도 못 되니 이렇게나마 시도를 해 보는 게 낫다고 맘을 재우쳐 먹은 거다.
수업이라 하지만 대화가 위주이다. 원래는 회화교재를 사용해도 좋으나, 내가 주장하여 교재 없이 내가 원하는 화제를 중심으로 말하기를 하고, 그것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다음 시간까지 문자로 정리해보는 것이 숙제이다.
지난주에 주로 말한 내용은 나의 유학생활에 대해서였다.
왜 불교문학(佛教语言文献)을 전공했나, 유학 중 무엇이 인상 깊은가 등등... 할 얘기는 많고 중국어 구사력은 여전히 달리고...
감기가 다 나은 건 아니라선지, 돌아올 때는 '날씨는 추워지고 영양 보충 삼아 스무 번은 더 외식해도 될 돈을 써가면서 내가 뭔 짓인가.' 반추하는 맘도 없지도 않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약속을 미뤄온 점에 책임지고 싶다.
지나간 유학시절에 대한 최대 유감은 중국어 말하기 실력이 어설픈 채로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논문이 급했던 그때는 졸업논문만 통과하면 되짚어 회화 공부를 하고 말리라 했지만, 일상 속엔 언제나 외국어 공부보다 훨씬 중요해 보이는 일이 나타나곤 해서, 이제까지 '어쩔 수 없는 채'로 지내온 나다.
그런 탓으로,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며 앉은 그 자리에서 카톡 문자판을 열고 복습을 한다. 글자가 이어지고 문장이 만들어지고 문단으로 길어지는 사이사이로 기억에 스며든 감상들이 흘러간다. 아아, 참 신기하지. 그때 그렇게 세부적으로 쪼개진 그 많은 전공들 속에 내 맘을 끄는 것은 '불교문학' 이것밖에 없었다니. 어렵게 모든 것을 걸고 다녔던 대학 치고는 친절한 분위기도 아니었어... 그래도 도서관에 가면 좋았던 거 같아... 맞아, 소녀 시절을 끝으로, 마음 놓고 책에 열중하는 걸 스스로 금기시했던 부자유함을 그때 벗어버릴 수 있었던 거 같아.
유감도 적지 않지만 수확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복습의 의미로 하자면 좀 더 써야겠지만, 작문은 감상과 섞여 적당한 긍정 지점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이때쯤 아들의 전화.
난 지금 네가 작년 2 월에 벗어놓고 간 밤색 조끼를 걸치고 있어. 근데 생각보다 좀 얇구나...
이런 첫 시작은, 실험실 생활이 중심인 아들에게, 그 조끼가 과연 내 조끼인가, 말을 맞추어 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내 쪽에선 두 말할 것 없는 아들 조끼이지만, 조끼에 대해서 거의 잊은 채 2 년을 지낸 아들로서는, 마치 그 먼 옛날에 가 봤던 아슴푸레한 길을 생각해내는 것처럼 묘연한 일인 것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
칫솔을 보면 문득, 네가... 내가 칫솔 얘기로 바로 이은 것은 방금 전에 저녁 커피를 마시고 양치질을 했던 탓이다. 네가 입던 조끼를 입으니 네 생각나듯, 양치질을 할 때면, 칫솔 때문에 생긴 모자간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곤 한다. 가만히 두면 뭐 이런 맥락이었을 터이다. 다만 지난 일화 속에 아들은 비록 무의식이긴 했어도 실수라 할 만한 언행을 남겼다. 때문에, 아들은 엄마 말이 불쾌해진다. 오래 지난 일을 가지고, 엄마가 잊지도 않고 자신을 비난해온다. 속을 알 수 없는 엄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게 아니다.
그 뜻 아니고 뭐냐.
가볍게 하는 얘기 가볍게 들어달라.
그게 무슨 유머냐.
24살 공학도 아들.
59살 인문학도 엄마.
통화를 마치고 화면에 숫자 기록을 보니 모자 사이의 빡빡한 설왕설래가 무려 40 분여.
우리 사이엔 고양이가 필요해.
고양이가 처음 우리 모자(母子)에게 왔을 때, 나는 내 첫 아이디인 모모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모모는 엎드려서 숙제하는 아들의 등에 올라가 가만히 앉아 있기를 좋아했고, 나는 모모와 아들이 같이 있는 훈훈한 실내풍경을 아주 좋아했다. 두 번째
고양이 복이는 의사표현이 적극적이었다. 복이가 뭐라 하면 아들은 숙제를 하다가도 나에게 묻곤 했다.
엄마, 복이가 뭐래?
(*고마웠던 시절, 고양이 둘을 잊을 수 없다.)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츳. 혀를 찬다.
그리고 아들이 기억해 내지 못한 조끼를 벗어 사진 찍어 보내준다.
아들이 청두에서 사입었다는 조끼그리고 브런치 매거진에서 아들, 엄마, 모자, 통화 등등을 검색어로 넣고 주르륵 읽고 닫고를 반복한다.
내 조끼 맞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입었어.
그리곤 안 입었는데 어떻게 거기 있는 거야?
조끼 사진에 꼬리를 물고 말해오는 아들의 문자 메시지.
굿나잇 인사로 재밌다고 흰 이를 활짝 드러낸 이모콘을 날려주고난 뒤, 나는 조끼의 이동 경로를 지도라도 그리듯이 눈앞에 떠올려본다.
중국의 내륙 쓰촨 청두의 어느 길거리에서 아들을 만나 바다를 건너 서울 외갓집 옷장에 1년 반을 개켜져 있다가 엄마 어깨에 걸쳐진... 그 멀고 담담한 경로를.
모자가 이제까지, 중국과 한국 양국 사이를 오고 갈 때 이용하는 건 예외없이 비행기의 하늘길인데, 지금 내 눈 가득 물결 출렁이는 푸른 바다가 차오르는 건 왜일까.
바다 위로 조끼가 떠 흐르는 화면, 오늘은 일찍 자려했는데 또 밤이 깊어지고 있다.
이집트는 사막이 많아 사람이 이렇게 모여사느라고, 집 위에 올려 짓고 또 올려 짓고, 그래서 아파트 모양으로 높아진 거라고..지중해 쪽으로 선교활동을 하러 간 지인의 설명이다.카. 톡.
이리 늦은 시간에 누가 아직 깨어있는가.
사진.
이집트에 기독교 선교 일로 파견되어 가 있다는, 지난겨울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전도사.
그녀가 머무는 곳은 바다가 가까운 모양이다.
지중해(地中海)가 보인다.
내일은 이집트 지도를 찾아 볼 일이다.
밤 늦게 전송받은 지중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