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와 커피 그리고 엉덩이

그 속에 뭐가 있느냐

by 새벽종 종Mu

계피를 샀어요.

경동시장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지인.

날씨가 추워지니 계피에 생강에 꿀을 타서 먹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고. 그래서 계피를 사 왔다는 것이다.

나눠드리고 싶어서요.

그래요? 계피향 좋지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밝혀두건대 나는 비교적 정말만 말하는 사람이다. 지난해 봄, 겨울 방학을 마치고 중국의 학교로 돌아갈 때 계핏가루 한 봉을 사갈 정도였다.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 나중엔 구충제 삼아 여기저기 뿌려두고 떠나왔지만...)

그럼 가져다 드릴게요... 계피를 어떻게 활용하실지 제가 다 궁금하네요.

궁금? 아니, 본인은 생강에 꿀 타 먹는다면서? 나는 분명 다른 식으로 먹을 거라고 예측한단 뜻?... 계피는 그렇게 알쏭달쏭한 한 마디와 함께 내게 넘겨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별들, 조카의 흰운동화를 감싼다.

계피가 생긴 김에, 지인이 말한 것처럼 생강도 사고 꿀도 사서 겨울 찻잔에 피어오르는 김을 불면서 마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인과 통화 중에는 상상력이 순간 발동을 하면서 내가 그러고 겨울을 맞이하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결과는 역시 지인의 한 마디처럼 제멋대로다. 계피 부스러기는 침대 머리맡에 책상 위에 하사되고, 얼추 손마디 만한 것은 커피포트로 넣어져 맨숭하나 얕은 향을 지닌 계피차로 공급되고, 그러다 커피에 섞이는 것이다. 어제는 고구마 찔 때 한 조각, 밥 지을 때 한 조각.. 먹고 마시는 것마다 계피향을 묻히는 중이다. 내게 늦가을 선물로 계피를 나눠준 지인이 과연 이런 식, 생각나는 대로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넣어보는 활용방식에까지 흥미를 느낄지는 의문이다.


어쨌거나, 계피는 제 때 와준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감기 이후 기운이 없곤 하니까. 가을에서 겨울로 변할 때, 몸이 좀 힘들어한다는 걸 몇 년 전에 알았을까?

11월의 흐린 날, 감이 열린 감나무에게서 따뜻한 온기를 얻는다

내 기억에는 쩌지앙성의 항조우에서도 산둥성의 쯔보어에서도 그랬다. 환절기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감기를 앓거나 말거나 했다면, 최근에 가까워질수록 기온이 점점 내려가는 11,12월이 좀 어렵다. 감기는 나아도 기운이 안 난다. 작년에도 한 달쯤 혼자서 시들시들했다. 그래도 올핸 한국이고 내가 먹고 싶은 거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으니 걱정 없다.


다만, 그 새 통증 하나를 늘려 놓은 게 맘에 걸린다.

문제는 그 벼락치기였어.

4월 30일.

의욕에 넘친 나는 한 밤을 꼴딱 새운다. 어쩌다

밤을 새운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책상 위에 노트북을 켜놓고 7,8시간을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심지어 화장실도 한번 들락이지 않고 무슨 열 쪽쯤 되는 신청서 빈칸 채우기를 했다는 것이다. 아침 창문 빛에 놀라 일어서면서 왼쪽 허벅지가 많이 굳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래 앉아서 눌린 거니 무슨 일이야 있을라고?


그런데 11월 한기에 그 다리께 뼈들이 뭐라 한다. 여기 좀 돌봐 줘.

생각해보니 그날, 엉덩이에서 허벅지, 그리고 무릎까지 뼈도 근육도 이를 악물고 내 의욕대로 해 보라고 참아 준 것 같다. 그렇게 참아 준 걸 모르고 나는, 그날 밤 작업의 결과가 좋게 안 나왔으니 노고는 없었던 걸로 돌리고 마냥 모른 체 지난 것이다.

미완성, 6 시간째의 품을 들인 모란

나이 들면 잠깐 무리한 것으로 몸이 고장나고 그러는 것이여.

80대 아는 할머니가 내 둔한 앉음새를 보고 눈치를 챈다.


그렇구나.

다치거나 깨져서가 아닌, 무리가 무리수를 불러오는 경우. 몸 움직임이 적은 편이어서 크게 다친 경험도 거의 없던 나였던지라,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계피향 나는 커피를 마시고 나서, 침대에 엎드리기로 한다. 뭔가를 읽거나 쓰더라도 엎드려서 해 보자고. 소중한 내 골반뼈에 더 이상 무리가 가면 큰일이다 싶어서 조심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엉덩이를 하늘로 모시고 엎어져 있다.


그런데, 어제 일이 생각난다.

어제 오후, 나는 민화 그리기 반에 나갔다. 한 번에 2시간씩이니 3주째인 어제 수업으로 6 시간을 채웠다. 그 여섯 시간 동안 모란 세 송이를 그리고 있는데, 앞으로 채색과 마무리 선(线), 또 잎맥 선까지 대여섯 시간의 작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이번이 처음이라 물감 배색도 선생님이 다 맞춰주고 하라는 대로 붓질만 하는 거다. 그리고 혹시 서투른 채색이 되어도 누가 탓할 사람 없다. 그런데 취미 찾아 날아든 나 같은 신참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실이 하나 있으니, 실패해도 상관없는 그 단순한 붓질 작업이 장난 아니게 집중력을 요한다는 사실. 원래는 감기니 엉덩이니... 꾀부리며 앉았던 건데 일단 시작하면 아무 생각 안 난다. 한번 붓을 들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꼼짝을 못 하고 붓질만 하게 된다. 집에 돌아가서야, 에고, 또 내가 무리했네, 싶은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그리기가 시작되면 교실은 조ㅡ용ㅡ하다.

2 시간 수업이 끝나고, 누가 그런다. 만들어 놓은 물감색이 아까워 빈 교실에 남아 더 하고 싶어도 너무 힘들어서 짐을 싼다고. 더 이상의 붓질은 엄두가 안 난다고.


어제 따라 수업이 끝나기 전 각자 작업이 한창일 때, 누군가는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괜히 준다고 약속을 해가지고서는..."

자신이 지금 작업하는 그림을 완성하면 친구에게 주기로 미리 약속했는데, 이렇게 힘들게 그리고 있노라니 그 약속한 자체를 되돌릴 방법이 없냐는 것이다. 주기 아까워졌다고... 나야 완성작이 없어서 경험이 없지만, 모두들 그 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작업인 줄 모르니까요. 그림만 보면 달라는 사람들, 많지요.


암튼 어제는 저녁을 먹자마자 노곤해졌다. 잠을 잘까 해도 다른 건 미루겠는데, 최근에 나 스스로에게 한 1일 1편 쓰기 약속을 깨게 될까봐, 망설여졌다.


갈등이 일어난 김에, 맘에 걸리는 그것이 과연 그 만한 가치가 있는가. 편해보자는 꾀의 차원만이 아닌 신체 보호의 차원에서, '글쓰기'의 가치에 대해서 나름의 저울질을 해봤다.


그리고, 글에 의욕을 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내가 세운 일방적 주장을 굽힐 만한 나다운 답 하나를 찾아냈다. 답이란 즉, 소아(小我)적인 내용이라면 하루쯤 쉬어도 될 듯하고, 대아( 大我)적 내용이라면 꼭 .필히. 잠을 끊고서라도, 혹은 목숨을 깎아서라도 바로 써내려가야 할 것이다로 귀결되었다. (*여기서 소아적이란 자기만에 집중한 마음, 대아적이란 많건적건 이타적 마음이 깃들였다는 뜻이다.)


아프고 피곤한 채 글을 쓴다면, 나는 분명 내 그런 상태를 설명해두려고 애쓸 것이다. 즉 소아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그런 만큼 오늘 밤은 쉬자.

이게 어제의 내 식 판단.


오늘 나는 이 기준을 가지고 묻는다.

그렇다면 지난날 쓴 26편은?

글쎄...


다만 나는 희망한다.

계피향처럼이길.

계피는 한 톨 가루에서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윽한 향이 난다.

크고 장엄하지 않아도 좋다.

그 속에 위대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 무엇이 위대한가, 으음, 생각이 완전하게 정리되었다 말할 수 없지만...그것은 좁은 자기자신에서 나와 타자와의 공감을 하며 보다 향상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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