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 혼자 있어요

혼자 있는 날은 막내딸이 보고 싶은 날

by 새벽종 종Mu

오늘 엄마 보러 올 수 있냐고.

집에 엄마만 있을 거라고.

올케가 보낸 문자메시지, 보낸 시간을 보니 이른 시각, 6시 조금 넘어서다.

빈 찻잔, 공예가인 조카의 작품

아, 엄마!

어제 오후 3 시경?

엄마 전화를 받았다. 그때는 별 말 없었다. 다만, 말이 끊어지는 막간에 엄마가 외롬증을 어쩌지 못하고 있구나. 될수록 빨리 가 봐야겠다. 이런 느낌을 안은 정도? 그러나 어느 날짜라고 정할 수가 없다.


그저 엊그제 김장 도우러 온 손자며느리... 젊은 아이의 친절이 엄마에게 될수록 오래 남아있길 소망해줄 뿐.


그랬는데, 바로 다음날 이런 연락이 올 줄이야.

오늘이 엄마 보러 가는 날이다.

지난번에 다녀오고 한 달쯤 지났나?

머냐?

가까워.

가까워?...

엄마가 머냐고 묻는 맘이 뭔지 나는 안다. 가깝다는 말에 덧붙이지 못하고 참는 말이 뭔지도 나는 안다.


나는 자질구레한 거기에 따로 대꾸하지 않는다.


뭐라 대꾸를 해주기엔, 나를 제치고, 아니 제치거나 우그러뜨려야만, 뜻이 맞는 사람끼리 좋아 지낼 수 있을 거란 가설과 그 가설의 실험에 누구보다 앞장선 내 엄마의 언행과, 그렇게 얽혀 엄마가 정한 '자기네'끼리 늘붙은 뒤에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아서, 얼토당토 않게도 나를 찾아와 화만 내던 엄마, 그 표정. 다

잊은 건 아니다.


나는 마음의 일에 민감하니까.


그리고 아버지, 아무도 그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한 번은 내가 오빠에게 글로 비판했다.

엄마의 희생을 그렇게 당연시하다, 다음 세상에 입장이 바뀌어 오빠는 엄마에게 그만큼 희생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 번은 올케한테 내가 말했다.

(부모가 원하여 갖다 바쳤더라도 나머지까지 다 가져야만 직성이 풀린 오빠의 아내인) 언니는 도둑놈의 아내라고...


착한 언니에게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동생인 내 눈에, 큰 재산은 아니라도 살면서 모은 재산 기꺼이 아들 부부에게 주고, 우리 며느리가 최고라며, 며느리 맘은 믿을 수 있다며 엄마손을 끌고 아버지가 웃으며 상경했던 그 날을 기억하는 막내로서,


그 아버지가 일생 자부심으로 세운 자신의 뼈를 두고 쓸쓸히 떠나가게 둔 데에, 나는 분함을 느낀다.


물론 아버지가 과하게 믿고 과하게 자책한 장본인이니, 그 결과를 가지고 누구를 탓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분명 느끼는 건, 마음의 논리다.

마음을 받았으면 마음으로 대하라.


마음을 외면하고 사는, 일상 중의 일상인 평범한 가족을 대표하여, 올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손아래 시누이한테 별 말을 다 듣게 된 셈.


그래도 나는 열심히 올케를 찾는다.

언니, 엄마한테 전해 줘요...

언니, 남는 이불 있어요?...

노랑색이면 일단 끌리는 나. 해바라기처럼

엄마는 며느리바라기.

엄마한테 가장 소중한 존재니까.

그리고 올케가 며느리바라기인 엄마와 한 지붕 아래 같이 산 세월은, 둘이 함께 늙어가는 세월이라 할 정도로 긴 세월이니까.


세월의 무게만큼 올케를 존중하고

세월의 무게만큼 올케한테 정이 든 것이다.


그런 정, 떼어버리고 싶다고 하는 언니의 말소리도 못 듣는 바 아니나... 사람의 관계란 때때로 복합적이다. 특히 가족관계는.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수용한다.

가장 최선은 지속이다.


나는 단지 안만큼 실천할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내가 우습다.

그렇게 질려했던 일에 나서고 다가서고...


아마도 2020년이라서, 언텍트 시대가 되어서, 그 실천이 쉽고 가벼워져서, 내가 감히 풀자고 덤빈 건지도? 가족이란 그 복잡미묘하기 그지없는 이 실타래를 풀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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