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그딴 말 콧등으로도 안 들어요

싸우지 마라

by 새벽종 종Mu

우리 부모님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이상으로, 타인을 대함에 고상한 면이 있으시다.


여고시절, 방학이라 아버지의 시골집에 가 있을 때였다.

한 번은 옆집 사내아이가 울타리를 비집고 우리 집으로 달걀을 훔치러 왔다. 뒤뜰에 암탉이 알 낳는 자리가 있는데 그걸 노리고 온 것이다.


부모님은 밖에 나가시고 방에 나만 있었다. 뒤뜰에 웬 사람 발소린가 했는데, 닭 둥지의 달걀을 집어가려는 몸짓을 봐 버렸다.


어쩌다 시골집에 들르곤 해서 동네 사람을 다 익힌 건 아니지만 담장 하나를 끼고 이웃한 옆집의 열네댓 살 정도의 사내애라는 건 바로 알아봤다. 옆집 아이가 감히! 그런 배반감 같은 것을 느꼈었나 보다, 내 입에서 생전 해 본 적 없는 욕이 나왔다.

"ㅅㅂ."

큰 소리는 아니었어도, 그 애는 이 말에 멈칫 물러났다.


도시에서 귀농하여 뭐든 나눠주기 좋아하는 우리 집 어머니 아버지인 걸 알고, 우리 집 달걀을 훔쳐 먹는 것쯤은 예사로 여겼던 모양이다. 나 때문에 허탕치고 돌아간 그 애의 부모들도.

그날 저녁인가 그다음 날인가, 아버지가 날 나무랐다.

"욕을 하면 쓰나."

엷은 햇살, 꼭 끌어안고 싶다. 광화문에서

오늘은 엄마방.

좁은 엄마 방에선 장롱에 기대어 나란히 앉는 게 젤 편한 자세다.


"니가 사탕 사다 줬잖아."

언제적 얘긴지... 모르겠지만 사탕 사다 준 적 있었다. 입안이 자꾸 마른다고 해서, 사탕 중에 당도가 비교적 은은한 것으로 골라서.

"니 올케가 그걸 보더니, 이런 걸 뭐하러 사 오냐고, 청심환이나 사다 주지... 그러더라. 손주며느리 손녀 듣는데서..."


그 순간 내 엄마가 내가 쓰촨 청두에 있을 때 거기 특산물을 가져다주었을 때 보여준 언행이 선연히 떠올랐다. 비슷한 일련의 장면들.


거의 항상 반복되었다. 내가 가져간 것을 펼쳐보지도 않고 잔뜩 무시하며, 이런 걸 뭐하러 사 오냐고... 번듯한 게 아니라 당신 낯만 깎인다고, 화난 목소리로 선물을 밀치던 엄마의 볼멘 소리와 얼굴...세트로 말이다. 그런 엄마답지 않은 발언들의 중요한 발단이 올케의 입이었단 말이야?


그제서야, 내 머리 속에서 늦어도 많이 늦은 촉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면전에서 화내고 못마땅해하고 무시하고, 그리고는 자신이 가해자인 사실도 잊고 뒤돌아 눈물 바람이고, 이렇게나 종잡을 수 없는 내 엄마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실망보다도 혼란이 더 컸다. 그러나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엄마가 일으킨 혼란의 직접적 원인 속에 올케의 언어가 크게 작용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올케 언니의 말씨는 상냥함 그 자체니까. 그러니, 언니가 무슨 말인가로 엄마의 심사를 긁고, 심사가 긁힌 엄마가 막내인 내게 화풀이를 하는 과정을 내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난, 농촌에서의 겸허한 표정을 버리고 완전히 낯빛을 바꾸어서, 진심의 언어 같은 건 아예 모른다는 듯이, 입만 열면 체면 타령인 내 엄마를 두고, "서울에 와 살더니 허영심만 많아진 할머니"라고 혀를 내둘렀을 뿐이었다.


니가 창피하다.

온통 그런 말 뿐인 엄마였는데... 또 그 타령인가, 가슴에서 염증이 바짝 일어나는 동시에 내가 되물었다.

그래서? 엄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내가 이렇게 반문할 줄은 몰랐던지... 어물 버물, 손주들 듣는 데서 뭔 소린가, 무안도 하고 그랬지만, 참아야지ㅡ 했다고.


무슨 말에 무안함을 느꼈으면 말을 한 당사자랑 해결했어야지ㅡ내 귀엔 이렇게 들렸는데, 그 말 무슨 뜻이냐고ㅡ폐결핵을 앓으며 낮에는 직장, 밤에는 대학원 공부를 하는 딸에게 달려와서 끝없이 생채기를 내던 엄마. 아파서 어떡하냐고 걱정도 안 했다. 오히려 병이 든 것을 무슨 칼자루라도 잡은 양, 내게 없는 죄라도 나서서 씌우겠다고 설친 엄마. 스스로도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당신이 한 일들...


그저,오빠네 가게만 다녀오면 표정이 굳어서는, 니가 시집을 안 가 창피하다. 니가 병이 들어 창피하다. 니가 콧대가 높다더란다. 그게 창피하다. 공부나 하고 있는 니가, 신앙 수행을 중시하는 니가 다 창피하다.. 이런 구구한 얘기, 엄마의 입을 통해 퍼지니, 좋아라 떠들고 나선 건 오히려 가까운 이들...


청력이 약한 엄마라 긴 말을 해 줄 수도 없다, 아니 듣는 귀가 정상이라도 그런 지리한 얘기 내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나는 엄마를 마주 보며,

엄마 바보야?라고 한 마디.

늙으면 값어치가 없다.

엄마가 풀이 죽어서 대답한다. 내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자리에서 올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엄마가 유머를 모르는 거 알면서 꼭 그렇게 시누이를 깎아내리는 언니도 이상하네요. 엄마는 언니 평가가 다여서, 칭찬이 아니면 다 문제 있는 걸로 아는데... 우황청심환이 필요해요? 사다 드려요?

너를 반영하는 나, 나를 반영하는 너...광화문에서

나는 근면한 어머니로 족했지만,

현명한 어머니를 못 가져서 마음고생을 오래 했다.


지혜가 부족한 엄마로 인해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전혀 모르고 사시는 내 엄마는 어느 면에서 바보일 것이다.


세상에 어떤 올케가 칭찬 기계도 아니고...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 제 자식 생각만도 바빠 죽겠는데, 시어머니 귀에 들리라고 시어머니만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시누이 칭찬을 늘어놓을 며느리가 어디 있겠는가. 시어머니가 제 흥에 겨워 자식 칭찬을 시작하니 마지못해 장단 정도 맞추는 거라면 몰라도.


그런데 엄마는 자기는 아무 표현력이 없으면서, 올케의 입은 만능일 거라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올케가 농담이든 말 습관이든 생각 없이 비아냥거린 그것에 꽂혀서, 저 입에서 좋은 말이 안 나오니 네가 문제라고, 자신이 낳아 키운 친딸을 문젯거리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바보 엄마.

우리 관계, 서로에게 성장의 원동력이길. ㅡ교보문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 핸드백 안에서 벨소리가 난다. 엄마.


버스에서 내려 통화를 했다.

니가 언니(올케)한테 뭐라고 했냐?

왜?

아니, 저녁에 와서는 뭐라고 하길래... 싸우면 안 된다. 뭐든 참고 지내는 것이여.


쳇!

내가 그 말 들을 줄 알고! 난 엄마의 설교를 안 들은 셈 친다.

왜냐하면, 당신은 참았다고 주장하지만, 내 기억에는 딴 데서 참은 것을 막내인 나한테 다 풀었다. 말하자면 아들 며느리 집은 "종로"이고 막내딸 집은 "한강"인 셈이어서, 나는 엄마가 던지는 돌덩이에 영문도 모른 채로 맞곤 했다. 그건 엄연한 비굴 혹은 차별이죠, 절대 참은 거라고 할 수 없죠....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타협해준 댓가로, 당신 며느리는 자기가 한 일 외엔 뭐든 깎아내리는 걸 능사로 알고 지내잖아요.


... 싸우면 못 써.

아무것도 싸운 거 없어요. 저녁은 드셨어요?

응. 니가 사다준 거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고 맛있더라. 고맙다.


간식으로 사간 과일젤리와 떠먹는 요구르트가 맛있었단 얘기 같다. 아마 그 말을 해 주고 싶어 전화했던 모양. 이 자잘한 먹을거리를 방바닥에 늘어놓을 때, 사탕 얘기며 우황청심환 얘기를 꺼냈으니, 당신 생각에 조금 미안해진 것이리라.

가만히 있는 건 엄마식!ㅡ벽에 오려붙인 싯구

이젠 좀 입맛이 돌아.

뛸 듯이 기뻤다.


밥맛을 다 잃고 속 쓰림만 방지하겠다고 식은 "풀죽"을 방 한 구석에 놓고, 하루 종일 그걸로 견디는 걸 보기도 했다. 스스로 가둔 벽, 아무도 치워주지 않는 벽 안에 홀로 들어앉아서. 헤아려보면 80대 고령이 되고, 가끔 위안이 되는 손주조차 독립한 뒤 풀죽을 생각해낸 게 아니었을까. (*풀죽이란, 밀가루나 쌀가루와 물을 섞어 풀처럼 끓인 죽. )


2015년 가을이던가... 그 고비에선 엄마의 삶이 이렇게 자발적 굶주림으로 끝나는가, 엄마 방 안을 둘러본 것만으로 말을 걸었다.

아니 마주 보고 말할 기회마저 앗겨 버려서, 지방의 한 우체국에서 들고 다니던 공책 여백에 급히 편지를 써 보냈다.

편지라면 가겠지.

내가 엄마 옆에서 하룻밤 머물게 될까 봐, 오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던 걸 애써 기억에서 몰아내면서.

집을 지어올리느라 얼마나 노심초사했을지... 덕분에 마음의 일을 돌보지 못했어도 그만큼 바빴을 형제자매. 이해를 못할 것도 없다.

엄마. 그렇게 굶어서 곱게 죽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병이 나서 움직이지도 못하면? 그러면서 명까지 길면? 그때는 어쩌려고 그래요?...


그 뒤에 들렀을 땐 천만다행으로, 풀죽 그릇 있었던 그 자리에 검은콩 두유가 박스채 놓여 있었다.

너도 하나 먹어라. (며느리가) 지극 정성으로 사다 날라. 떨어질만하면 사 오고 사 오고...

엄마가 하는 자랑이었다.


그렇게 위기는 넘겼지만, 언제나 봐도 밥 먹는 건 영 즐겁지 않은 듯. 마지못해 몇 술 뜨는 것 같았다. 치아도 소화력도 운동량도... 고루 문제라고... 나이 이기는 장사가 어딨냐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 엄마가 엊그제 식사량은, 감기 걸려 평소의 반만 먹은 나 만큼이었다. 내가 퍼준 반 공기를 깨끗이 비워냈다. 어! 오늘은 좀 드셨네. 밥그릇을 치우며 속으로 생각했는데. 드시는 속도도 적당했어. 옆눈질로 기뻤했더랬는데.


오늘 내게 직접 해주는 말.

요즘 밥맛이 좀 돌아왔다.


걸음을 멈추고 통화하느라,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서 있는데, 담벽으로 노랗게 환한 미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닐까! 내가 그렇게나 바라마지 않던 엄마로부터의 희소식인데!

우리 함께 오래오래 살아요. 건강하고 행복하게ㅡ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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