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가 틀리더라도
"건강의 지혜"를 빠트리면 안 되지
모순일 것이다.
93세 엄마를 생각하며 브런치 매거진 귀퉁이에 자리 잡은 건 아마도.
한 남자가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ㅡ회현역 근처일단 나의 엄마는 읽는 걸 피하신다. 글씨는 알아도 읽는 훈련이 거의 안 되신 분.
게다가 휴대폰으로 전화 거는 일조차, 아직도 장님 문고리 잡듯, 내가 그냥 한번 눌렀는데, 걸어지긴 했냐? 되물을 정도이니, 카톡도 스스로 열려면 아직 멀었는데, 브런치는 무슨... 요원한 일이다. 더구나 이 작은 글씨를 읽자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엄마를 생각하며 쓰기로 한 내 맘은 그대로다.
그렇다면 다른 고령자라도 읽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그런 확신도 없다. 엄마보다 깨우쳤다는 군산 이모도 카톡을 한 달 전에 겨우 깔아놓은 정도, 아직 쓸 엄두가 안 닌다고 한다.
일단 어느 정도의 연령에 도달하면, 스마트폰 기능이 늘어나는 것이 안 반갑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호기심보다는 이런 것 때문에 젊은것들에게 또 한 발 밀리겠구나, 가만있어도 퇴보하는 게 왠지 억울하다. 그래서 더 의기소침하다.
근심,성당 앞을 지나며ㅡ중곡역 근처그럼 나이가 엇비슷한 중년 이상의 부인들이라면? 딸로서 며느리로서 또 머지않은 앞날에 노년을 살아야 할 입장에서, 뭔가 공감하며 읽고 토론하지 않을까? 첨엔 이점을 기대했다. 한국 현대사로 보아 대략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평균 학력이 높아졌으니, 글을 통해 생각을 교류하면 그 파장이 윗세대 아랫세대로 퍼지지 않겠나... 그러나 이런 예상이 들어맞지 않는다.
브런치를 떠나, 직업이나 전문성을 떠나, 일상에서 내 시야에 잡히는 5,60대 여성들 (남자는 그다지 관찰할 기회가 없어서)을 보면, 언제든 어떤 화제도 솔직 담백하게 토론을 할만한 마음 기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혹시 말을 나눠도 시선도 어딘지 산만하고 태도가 감정적이며, 공정하지 않다. 알고 싶지 않은 화제가 너무 많다. 그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화제란 당장 오늘 내가 중시하는 것, 그게 자식 자랑일 수도 있지만 시어머니나 아는 사람 흉일 수도 있다. ㅡ이런 식의 자기본위의 대화를 하자고 한다. 이건 모두에게 소모일 뿐이다.
그럼 모든 연령을 통틀어서? 불가능한 얘기일 것. 혹시 동화나 소설이라면 본래 목적과 주제도 잃지 않으면서 모두가 함께 읽어볼 만하게 써질 수도? 펀뜻 스치는 아이디어. 어쨌든 앞으로 어떤 식으로라도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오늘 두 가지 엄마에 관한 생각을 했다. 어지럼증과 잘 삐짐.
요 며칠 기운이 없어선가, 어제 저녁엔 설거지를 하면서 빙그르르한 느낌. 이러다가 쓰러질지도 모르겠는 걸, 조심스러운 순간. 인스턴트 전복죽을 데워 먹고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전복죽을 비운 플라스틱 용기를 씻으면서, 엄마한테 그때 사다준 죽은 다 먹었는가, 어지럼증은 어떤지 더 심한지 덜한지 물어봐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다행히 오후가 지나며 내 컨디션이 좋아졌다.
엄마하고 통화를 쉰지도 5, 6일.
시험 삼아 눌렀다며 간혹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는 엄마인데, 요 며칠 전화를 일부러 안 걸은 건지, 걸지 못한 건지 혹은 삼간 건지 알 수가 없다.
내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엄마가 걸어오면 받을 생각으로 하루 이틀 지내다가 내가 기운 없어서 또 하루 이틀 전화를 안 걸고 지냈다. 그리고 혹시 딸과 통화 못한 날짜로 하여 안 해도 좋을 추측을 할까 봐, 올케한테 엊그제 문자를 보냈다. 내가 기력이 없어서 며칠 전화 안 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줘요.
나무와 붉은 벽돌 건물 ㅡ대학로그런데
기운이 난 김에 모처럼 전화를 걸어보니 무응답. 마침 주방이나 화장실에 있어서 방안에 있는 휴대폰 소리를 못 들었다면 그건 그럴 수 있다. 그냥 다음에 통화해도 된다. 문제는 이런 모호한 침묵상태가 엄마의 삐짐이거나 혹은 전화를 정말 받을 수 없는 불시의 사고 상황이라고 할 때, 이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또, 아무 일도 아닌데 지레 크게 떠벌여도 이상하게 되니... 의문을 해결할 길은 올케와 문자이다. 퇴근하여 귀가하면 물어봐 달라고. 그렇게 문자를 전송하고 났는데, 또르르ㅡ 군산 이모 전화.
이모의 용건이란, 아까 밖에서 엄마 전화를 받았는데 시끄럽긴 하고 엄마도 잘 못 알아듣고 그래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고. 그 일로 엄마가 혹시 노염 탔을까 봐. 나더러 잘 말해달라고.
문자도 못 해, 전화 걸기도 들쑥날쑥, 또 받는 일도 자신 없어 해. 통화가 막상 되면 으레 동문서답, 그러면서 전화 때문에 상처까지 받으면 어쩌나? ...하필 바쁜 날인지 올케도 무응답.
사람은 고립되면 안 된다.
만약 삐져서 전화를 안 받은 거라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건 어린애 같은 짓이다. 엄마가 왜 그걸 모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난번에 설명하길,
엄마 입장에서 전화받기가 복잡해서 그냥 놔둘 때가 았다고. 이 복잡하다는 게 말하자면 화면에 동그라미를 눌러줘야 하는데 눈이 침침하다든지 다시 안경 쓰고 보기엔 기운이 없다든지... 결국은 기본 건강이 나빠진 원인이 크다.
그렇다면 삐짐도 걱정이지만 이렇게나 나빠진 신체는 더욱 걱정이다.
어디서부터 개선해나갈지, 아무도 협조를 안 하면 결국 엄마 당신이라도 의지를 세워야 하는데...
네이버밴드 독학캘리그라피에서 가져옴책, "건강의 지혜"를 꺼내놓는다.
많은 조언이 있다. 허리 스트레칭 법은 그림으로도 보여준다. 짜르르 요점을 정리해서 전해줄까? 하지만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많은 만큼 엄마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책을 읽고 미리 고령의 일상을 준비해야 할 나이에, 나의 엄마는 뭘 했을까. 몸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했던 엄마. 그러나 갱년기 이후의 히스테리, 혹은 아집 같은 것,ㅡ한 자식을 예뻐하기 위해 한 자식을 미워하고... 당신 하시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다는 거칠고 억센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렇게라도 사시겠지 했는데...
뭔지 모르게 답답한 기분.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인생의 최대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노만 커즌즈 박사의 말이다.(*인용, 이케다 다이사쿠 "건강의 지혜", 화광신문사, 17-18쪽)
단 하루를 살더라도!
희망이란 공을 주고받으면서, 자기자신에게도 주위사람에게도 좋은 자극을 주는 일에 좀더 마음을 쓰기로 하자. 왜냐하면, 희망이야말로 어떤 무채색의 삶도 제 빛깔을 내는 진정한 삶으로 회복시키는 비장의 무기라니까.
그 이튿날, 덧붙이는 글:
오늘 엄마와 전화.
손주며느리랑 집에 모여 김장을 하고 있다고.
오늘은 엄마 맘이 좋겠구나. 정말 다행이다.
한 시름 푹 놓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나라는 작가가 엄마한테 신경을 꽤 많이 쓰네... 하면서 나를 일부러 좋게 보아줄 필요가 없다.